‘가을이면 감송을 잡아 배를 가른 뒤 멥쌀을 넣고 밥을 짓는다. 작은 항아리에 이 밥을 깔고 감송이 조각을 겹겹이 채운 뒤 익기를 기다렸다 꺼내 먹는다. 달고 맛있어 생선 식혜 중 으뜸이다’. 1803년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에 나오는 감성돔 식혜에 관한 이야기다. 경남 진해로 귀양살이를 온 김려는 어민들과 바다에 나가 감성돔을 비롯한 다양한 물고기와 어패류 등을 관찰한 뒤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정약전도 자산어보에서 ‘참돔은 강항어, 감성돔은 흑어, 혹돔은 유어’라고 썼다.
감성돔은 한반도 인근 바다를 대표하는 물고기다. 종류도 다양하다. 세계적으로 1백30여 종, 우리 연근해에만 20여 종이 서식한다. 금눈돔, 도화돔, 열동가리돔, 독돔, 자리돔, 벵에돔, 호박돔, 실꼬리돔, 황줄돔, 어름돔 등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몸체가 회흑색이면 감성돔, 세로 줄무늬가 있는 것은 돌돔, 붉은 색이 나면 붉돔, 푸른 빛이 돌면 청돔으로 불리고 제주연안이 주산지인 옥돔도 유명하다. 비드락, 남정바리, 살감싱이 등 크기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달라진다.
감성돔은 또 제사상의 구이나 건어포에서 잔칫상이나 술자리의 횟감, 서민들의 해장국에 이르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생선이다. 돔이 없으면 제사나 잔치를 못 치르는 줄 알았고, 식단의 부족한 단백질을 채울 길이 막막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지금도 감성돔은 횟감이나 구이, 매운탕으로 한국인의 밥상에 많이 오른다. 새끼를 염장한 비드락젓이나 간장으로 양념한 감성돔 찜, 머리와 뼈를 삶아낸 지리까지 요리법도 열 손가락을 꼽고도 남는다.
감성돔의 계절이 시작됐다. 4~6월 깊은 바다에 살다가 산란을 마치고 낮은 바다로 올라오는 감성돔은 가을이 시작되는 지금이 제철이다. 국내 최대 감성돔 서식지인 전남 서·남해안도 이맘때가 되면 감성돔이 주는 손 맛과 입 맛을 즐기려는 낚시꾼들로 북적인다. 시인 송수권은 감성돔 낚시를 두고 ‘한 밤 칠현금 소리를 내고 튀어오르는 감성돔의 손 맛은 기생보다 낫다’고 했다. 감성돔의 찰진 손 맛에 쫄깃하고 달달한 회까지 맛볼 수 있는 감성돔의 계절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