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음유시인이자 연주자였다. 그가 숲의 요정 에우리디케와 결혼해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을 때였다. 풀숲에서 놀던 에우리디케가 그만 독사에 물려 즉사하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절망했다. 울면서도 내내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만을 생각했다. 결국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로 가서 아내를 찾아오기로 결심한다. 수소문 끝에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를 알아낸 그는, 그리스 최고의 연주자답게 리라연주로 죽음의 신 하데스의 마음을 녹이는데 성공했다. 오르페우스의 구슬픈 연주와 노래에 깊은 감동을 받은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도록 허락했으나, 한가지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지하세계의 문턱을 통과할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오르페우스가 앞장서고 에우리디케가 그의 뒤를 따르는 지하세계 대탈출이 시작됐다. 길고 긴 대장정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오르페우스는 순간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죽음의 동굴 끝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는 생명의 빛을 확인하자 그만 하데스의 당부를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의 뒤를 따라오던 아내 에우리디케는 비명을 지르며 엄청난 속도로 다시 지하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이후 오르페우스는 더이상 에우리디케를 볼 수 없었다.
오르페우스가 왜 뒤를 돌아보았는지에 대한 해석은 집착, 상실감, 두려움, 의심 등 다양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망각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르페우스의 망각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사실 망각이란게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인간이 고통스러운 경험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망각' 때문이니. 그렇다하더라도 우리는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 말이다. 예식장 주차장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수많은 자동차들, 가슴가득 봄바람을 안고 흩날리는 꽃비에 흠뻑 취해있는 상춘객들, 빈자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커피전문점의 내부 풍경들을 목격하니 '코로나가 끝났구나'라는 안도감보단 '큰일났다'는 우려와 두려움이 밀려온다. 망각의 대가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한번 더 목격해야만 했던 오르페우스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껏 공들여왔던 인내와 연대가 한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