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玆山魚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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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자산어보(玆山魚譜)
  • 입력 : 2021. 08.23(월) 14:49
  • 박간재 기자
박간재 전남취재부장
 두 형제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한양에서 출발해 광주를 거쳐 해가 어둑해질 무렵 나주 한 주막에 도착했다. 여장을 푼 곳은 율정점(栗亭店). 지금의 나주 동신대 정문 근처. 두 형제는 이날 밤 시를 지어 바치며 밤을 새웠다. 형은 동생에 시 한수를 건냈다.

 '남으로 오던 길 아직도 사랑하는 것은/율정의 갈래길로 이어지기 때문/열흘을 나란히 갈기 늘어진 말 타고 올 때/우린 참으로 한 송이 꽃이었지'

 이튿날 형은 흑산도로, 동생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났다. 이 날 이후 두 형제는 더이상 이승에서는 만나지 못했다. 두형제의 이름은 정약전(1758~1816)과 정약용(1762~1836). 1801년 신유박해 때 종교탄압이자 당시 집권 보수세력 노론이 진보적 사상가와 반대 세력인 남인을 탄압한 권력다툼으로 희생됐다.

 최근 정약전의 삶을 담은 흑백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주연 설경구·변요한)'를 감상했다. 사대부의 성리학적 관점보다 백성의 생활 속으로 녹아든 정약전의 삶과 '창대'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탐관오리 등에 피폐해진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담고 있다. 정약전과 창대가 신분과 나이 차이를 넘어 벗이 돼가는 과정을 그렸다. 고통스런 귀양생활 속에서도 '백성들이 바다에서 만나는 평범한 어류를 기록해 후세에 남기겠다'는 자세로 자산어보를 출간한 그의 의지가 눈물겹다. 영화 속에서 정약전은 창대와 거친 말을 주고 받으며 투닥거리는 모습이 나온다.

 자산어보 서문에도 그와 관련된 언급이 눈에 띈다. "섬에 덕순 장창대라는 사람이 있어… 한 집에 머물면서 함께 연구해 책을 완성했다". 창대는 섬 주민들 사이에서는 박학다식한 인물로 흑산도 대표 '먹물'이 아니었을까. 두 남자의 티격태격 브로맨스에 영화 내내 웃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최근 영화 '자산어보' 촬영지 신안 도초도에 힐링도 할 겸 직접 찾아가 하룻밤 쉬고 왔다. 압해도~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를 자동차로 이동한 뒤 암태 남강항~비금 가산항까지 40분 철부선을, 다시 자동차로 비금도~도초도에 당도했다. 수국공원을 지나 발매리에 다다르니 산 위 초가집과 사랑채가 정겹다. 정약전과 창대, 가거댁이 생활하던 곳이다. 산너머 풍경도 압도적이다. 산아래 바닷가와 왼쪽 멀리 수직바위 절벽이 웅장하다. 툇마루에 뒤돌아 앉아 기념사진 한장을 남겼다.

 내려오는 길 내내 정약전의 대사가 귓가에 맴돈다.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않는 자산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 박간재 전남취재부장

박간재 기자 kanjae.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