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광주는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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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주는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했을까
  • 입력 : 2022. 08.11(목) 17:32
  • 이용환 기자

1940년대 계림동 경양방죽 전경. 조선 세종 때 축조했던 경양방죽은 1967년 광주시가 태봉산을 헐어 메운 뒤 광주시 청사와 주택지로 조성했다. 광주시 제공

광주의 근대 풍경. 문학들 제공

광주의 근대 풍경

정경운 | 문학들 | 1만5000원

광주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양동시장은 200년도 더 된 1800년 이전에 생겨났다. 광주천을 중심으로 큰장과 작은장으로 나뉘었던 이 시장은 1925년부터 진행된 하천정리사업으로 하나로 병합되고 1931년 지금의 사직공원인 광주신사 앞으로 이전한다. 이후 광주신사가 국폐소사로 승격되면서 1940년대 초, 다시 지금의 양동으로 옮겨가고 한국전쟁 후부터는 완전한 상설시장으로 발전한다.

양동시장의 역사가 단순하게 시장 공간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조선총독부의 '시장규칙'과 관련된 시장 통제와 관리제도의 변화, 광주의 도시계획과 시장사용료 정책, 광주신사 부지와 관련된 종교 경관의 정치까지가 맞물린 결과인 셈이다. 1936년 국내 최초로 광주에서 진행됐던 학강정 갱생이주사업도 실상은 일제의 빈민정책과 한국인의 지난한 투쟁 속에 벌어진 천정(町) '궁민가 철거사건'이 만들어낸 집단이주 사업이었다.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정경운 교수가 일제강점기 광주를 안내하는 책 '광주의 근대 풍경'을 펴냈다. 광주라는 공간에서 식민지배 계급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추적하고, 그 식민지배의 시간을 견뎌냈던 궁민(窮民), 상인, 권번 기생 등 피지배 계급이 근대적 시민주체로 등장하는 과정을 정리 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가 광주의 근대 연구에 뛰어든 것은 그동안의 연구가 사료의 한계로 인해 오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오류를 후진 연구자들이 아무런 검토 없이 반복해서 인용하는 상황도 그의 연구열을 부추겼다.

책은 크게 제2부로 구분된다. 1부는 일제강점기 광주에서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단체였던 '광주번영회'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에서 식민지배계급이 어떻게 성장해 나갔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광주번영회는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들도 가입되어 있던 단체로, 그 구성원들은 지역사회의 정치·경제적 권력을 장악했던 지배계급으로 풀뿌리 식민구조를 완성시키는 데 일조했던 자들이었다.

2부는 그 식민지배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던 피지배계급과 함께 당시 식민정책의 문제를 정리했다.

그렇다고 1부와 2부가 별개의 사건은 아니다.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글은 서로 독립적이면서 내용으로도 연결돼 있다. 천정의 궁민가옥 철거사건과 광주 오일장의 변화과정은 1925년부터 광주면이 진행했던 '대광주건설계획' 중 하나였던 하천정리사업의 결과 발생한 사안들이다.

광주천이 직강화되면서 2개의 오일장이 사정(社町)으로 이전하게 되고, 주택지로 불하할 계획이었던 천변부지에 궁민들이 모여들면서 빈민부락을 형성했던 것이다. 이후 대광주건설계획과 같은 식민도시건설에 앞장서면서 대규모 토목사업에 적극 개입해 이권을 얻어냈던 자들이 바로 광주번영회 구성원들이었던 지역 유지 집단이었다. 그들 중 일부 한국인들은 '광주예기조합'을 만드는 과정에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다.

특히 각 장에 등장하는 일본인과 한국인 지역 유지 집단, 궁민, 상인, 기생 등 다양한 주체들의 행적을 살피는 작업은 광주 근대기의 복합적 풍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글 몇 편으로 광주의 근대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저자도 "내 글의 일부가 오류를 담고 있을 수 있다"면서 " 독자들을 광주 근대로 초대하는 정도의 역할만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책을 읽다보면 일제강점기 광주의 성장과정이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그리고 외면했던 광주의 근대 풍경을 보여준 저자의 열정에 감사한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