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은 대개 특정 용도에 맞게 지어진다.시간이 흘러 시설이 노후되거나 산업구조 변화와 도시 팽창,이용자 욕구 변화 등과 같은 요인으로 인해 당초 쓰임새를 다하게 되면 헐리거나 리모델링을 통해 다른 용도로 재활용되기도 한다. 광주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옛 신양파크호텔도 이런 운명에 처해 있다.1981년 무등산 장원봉 인근 1만6000㎡에 3성급 호텔로 들어선 신양파크호텔은 국내·외 귀빈들이 주로 묵거나 시민들의 결혼식과 특별한 날 외식 장소 등으로 인기를 끈 광주의 대표 호텔이었다.하지만 시설 노후화와 수익 악화로 2019년 말 영업이 중단됐고, 건설 자본이 호텔 부지를 포함해 2만5800㎡에 고급 빌라를 세우려하자 광주시민단체들이 강력 반발했고, 이용섭 시장 재임시절인 민선7기 광주시는 시민사회단체, 시의회,전문가 등이 참여해 꾸려진 '무등산 난개발방지 및 신양파크호텔 공유화를 위한 민관정 위원회(이하 민관정위원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해 10월 369억원을 들여 호텔 건물 및 부지를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민관정위원회는 광주시와 함께 30여 차례(민관정 소위 기준 )논의와 토론 끝에 마련한 옛 신양파크호텔 건물 및 부지 활용에 대한 3대 원칙과 방안을 지난해 11월 호텔 현장에서 발표했다. 3대 원칙은 △시민 중심의 무등산 공유화 거점△무등산권 생태 보전과 기후 위기 대응 구심점△유네스코에 등재(세계지질공원 인증)된 무등산 가치의 세계화 등이다.또 활용 방안의 골자는 4만 여㎡에 달하는 호텔 부지는 시민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생태정원으로 조성해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고, 시민의 추억이 깃든 호텔 건축물은 보존하되 '무등산 생태 시민 호텔(가칭)'등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1∼2층은 문화·정보 교류가 가능한 다목적 복합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민관정위원회는 해당 부지가 자연녹지지역으로 호텔 용도가 아닐 경우 2개층 이상을 철거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를 고려해 기존 호텔 성격을 유지키로 결론을 내렸다. 이런 활용 방안을 고려해 광주시가 건물값 77억1700만원을 포함해 호텔 부지를 매입했다. 한데 민선8기 강기정 시장은 취임이후 지난 25일 열린 민관정위원회에 처음으로 참석해 숙박 시설 활용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표명했다.이유는 리모델링에 300억원 이상 소요되고 향후 연간 운영비 부담 등으로 재정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관정위원회의 1년6개월간 논의의 결과가 백지화되는 국면이 됐다.시는 호텔 활용은 접고 생태공원,캠핑, 타워, 문화공간 등이 어우러진 복합 공간 조성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는 호텔 철거를 전제로 한 것이다. 한 도시의 공공성을 띤 건축물이 한 번 철거되면 돌이킬 수 없고 역사성도 사라진다. 하여 프랑스, 독일 , 스페인 등 세계 각국은 도시 전통 보존과 재생차원에서 건물을 재활용하고 있는 중이다.120년 사용된 시립장례식장을 예술가와 시민창작공간을 만들어 연간 60만명이 방문하는 프랑스 파리 19구에 있는' 르 샹카트르', 90년된 도살장과 가축시장이 기능을 상실하자 복합예술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스페인 '마타데로 마드리드' 등 도시 재생 성공 사례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옛 것'의 역사성을 살리고 '새 것' 의 실용성을 더해 도시에 활력을 불러 넣고 있는 것이다. 기존에 민간기업이 운영하던 호텔이 수지 타산을 맞추지 못했다고 '시립호텔'이 꼭 그러하리라는 법은 없다.내년 1월 시행될 고향사랑기부제와 연계해 숙박 시설을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기부자에게 답례품으로 호텔 숙박권을 제공하는 안을 검토해볼 수 있어서다. 기부자들은 애향 정신을 실천한 이들로서 광주 방문시 경제적인 부담없이 호텔에 묵을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이다. 고향은 곧 광주이고 광주는 무등산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무등산 사랑 정신이 살아있는 호텔을 이용토록 해 특별한 경험,자긍심,명예로 여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기부금중 일부는 호텔 운영비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으니 광주시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을 수 있다. 무등산 사랑 40년이란 소중한 경험을 가진 광주시민과 광주시는 건설자본에 의해 개발되려는 무등산 자락을 지켜내는 유례가 없는 큰 일을 해냈다. 속도를 행정 기조로 내세운 민선 8기 광주시가 섣부른 판단으로 최적의 활용 방안을 강구하는데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활용 방안에 대한 전문적이고 충분한 검토도 없이 가만 앉아서 77억원(건물 매입비)의 혈세를 '날리는' 행정을 해서는 안된다. 이기수 수석논설위원
이기수 기자 kisoo.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