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환 문화체육부장. |
"시끄러워, 제발 좀 닥쳐. 지금 정신없이 바쁜 거 몰라." 1912년 4월 14일, 뉴펀들랜드 남쪽을 지나던 여객선 타이타닉 호에 전보 한통이 도착했다. 타이타닉 호 인근 바다가 빙산에 둘러 싸여 더 이상 운항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타이타닉 호 전신 담당자였던 존 필립스는 바쁘다는 핑계로 이를 외면했다. 앞서 출항한 메사바 호가 보낸 경보마저 무시했다. 결국 타이타닉 호는 폭 150㎞에 이르는 거대한 빙산과 충돌하면서 침몰했고 1515명이 사망했다. 안일함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참사였다. (제임스 차일스 著 인간이 초대한 대형참사)
지난 2010년 11월 22일 ,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사고도 인간이 초대한 예견된 비극이다. 이날 프놈펜에서는 수천 명의 관광객이 '물 축제'에 참가했지만 제대로 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349명이 사망하고 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도 인재(人災)였다. 캄보디아는 200만 명이 몰릴 것으로 예견된 대규모 축제에 안전조치를 소홀히 했고 섬과 육지를 잇는 출구도 다리 하나뿐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릴 줄 몰랐다'는 해명도 안일함의 극치다.
최근 인류가 겪었던 재난과 사고는 대부분 부주의나 안일한 생각, 작은 실수 등이 원인이다. 차일스도 저서 '인간이 초대한 대형 참사'에서 모든 참사는 인재(人災)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고도 누적된 요인이 더해져서 일어나고 사소한 시스템의 균열이 참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습관이나 종이 한 장 차이의 부주의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실수나 탐욕, 반성하지 않는 오만, 실수를 감추려는 거짓도 참사의 요인이다. '설마 괜찮겠지'라며 고장의 전조를 무시하고, 관료적 사고로 기술적 경고를 묵살한 것도 비극을 불러온다.
지난 달 29일 서울 이태원 일대에서 발생한 참사로 2일 오전까지 156명이 숨지고 172명이 다쳤다. 이번 사고는 부주의와 방심, 실수와 안일한 생각, 시스템의 균열 등이 만든 복합적인 인재(人災)다. 우리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수없이 안전을 다짐했다. 하지만 불과 8년 만에 세월호에 버금가는 또 다른 참사를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도 사라졌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무한책임을 갖는 정부 대신 이제 스스로 살아 날 방도를 꾀해야 하나. 원통하고 비통한 대한민국이 원망스럽다. 문화체육부장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