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규 논설실장 |
함평은 우시장으로 옛날부터 유명한 지역이다. 함평 우시장은 1903년 개장해 한 때는 전국 소값을 주도했다. 1923년 전남함평군축산조합 통계에 따르면 우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하루에 소 700~800두가 거래됐다. 정읍, 영산포 등과 함께 전국 3대 우시장으로 꼽혔고, 함평우시장에서는 암소 거래가 활발했다. 함평우시장에서 남도의 소값을 좌우한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다. 우시장이 열린 날에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상인과 거간꾼으로 북새통이었다. 우시장 주변으로 포장을 치고 국수와 비빔밥을 파는 좌판들이 즐비했다. 특히 함평은 철도가 발달한 관계로 도축이 발달했다. 인근의 도축장에서 당일 해체한 싱싱한 소고기를 비빔밥에 고명으로 올려 내놓았다. 생고기 비빔밥의 정착설이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생고기는 우둔, 엉덩이살로 지방질이 없고 살코기로 차지다. 놋쇠 그릇에 싱싱한 푸성귀와 푸짐하게 담아 내놓는 비빔밥은 아름다운 색깔과 고소한 향으로 식욕을 자극한다. 곁들어 나오는 맑은 선짓국과 채를 썬 돼지 비계가 특징이다. 동아일보 1938년 10월4일자 '잠간 함평에 와서 일을 보고 오후에 가는 이가 점심을 먹게 되면 대개는 만히 잇는 비빔밥집이니 그 곳에 들어가 십오전짜리 비빔밥 한그릇에 보통 주량을 가진 이면 소주 두잔만 마시면 바로 목에 넘겨 버리기도 아가울만한 싼듯하고 깊은 맛있는 비빔밥과 그 구수하고 향기난 소주'라고 했다. 목포의 삼학소주와 경쟁했던 함평소주를 소환해낸다. 함평소주 공장은 현재 내교리 광주은행 부근에 있었다. 함평 비빔밥은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한 김구 선생과의 인연도 있다. 김구 선생이 1946년 9월24일 함평초등학교에서 시국 강연회를 마치고 해동식당에서 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한 것이다. 이날 김구 선생이 함평을 찾은 것은 해방 전 인천 감옥을 탈옥하고 호남 잠행 때 비밀통로가 있었던 육모정에서 보름간 몸을 피하게 해준 함평의 은인 이동범 진사를 만나러 온 것에서 비롯된다. 김구 선생은 "함평 비빔밥처럼 정성으로 빚은 특유의 손맛과 모든 것을 합하고 더한 것처럼 민족 통일의 염원까지 담아서 먹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함평군청 부근에 있던 해동식당 자리는 정자로 바뀌었다. 일제 말기에 문을 연 해동식당은 1970년대까지 영업을 해온 함평 비빔밥의 원조다. 전주에서 유명한 비빔밥 식당 찬모가 해동식당에서 비법을 배워갔다고 할 정도로 맛이 일품이었다고 한다. 함평 생고기 비빔밥집 상차림은 새로 짠 참기름을 쓰며 무채 썰 듯 가날피 썬 돼지 비곗살, 시큼하면서 감칠맛 도는 묵은 김치로, 해동식당 레시피와 흡사하다. 생고기 비빔밥은 함평군의 먹거리 산업으로서 집중 육성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함평 비빔밥을 음식 관광상품으로 선정,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났다. 오일장과 함평천 사이에 조성된 함평천지 한우비빔밥 거리 식당에서는 점심시간에 번호표를 들고 대기하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소리없이 잠깐 꽃소식 전하고 떠나는 가을이 아쉽다. 이 가을이 가기전, 함평천지에 들려 국화향기 만발하는 들국화 길도 걸어보고, 엑스포공원 광장의 호남가 노래비 앞에서 호남가를 흥얼거려보고 생고기 비빔밥 한 그릇에 가을날의 멋진 추억을 만드시길 권한다. 국향대전은 당초 11월6일까지 예정됐으나 축제 기간 이태원 참사로 인해 행사는 모두 취소되고 행사장만 개방됐다. 엑스포공원 식물원, 조금만 발걸음을 하면 들판에서 들국화의 잔잔한 향기에 치유를 받는 느낌이었다. 꽃길을 걸으며 참사 희생자들에게 마음으로라도 국화 꽃 한송이를 바쳤으면 좋겠다. 오는 13일까지 무료 개방된다.
이용규 논설실장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