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허경의 사진으로 보는 미술이야기> 각계 성금 시위 근원지 광주일고에 설립, 공공 기억 공유하고 기념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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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허경의 사진으로 보는 미술이야기> 각계 성금 시위 근원지 광주일고에 설립, 공공 기억 공유하고 기념 공간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당시 정부 제막식 중계방송 애국심 고취||광주농고, 전남여고, 광주교대 등서도 별도 건립||계몽적 형식 획일화로 차별성 부각시키지 못해||사회적 상징물, 예술적 작품화 화두 던져
  • 입력 : 2022. 11.06(일) 14:57
  • 편집에디터

차근호,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 1954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들이 주도한 항일시위로 3·1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전국에 확대된 항일운동이다. 올해로 93주년을 맞은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사업은 1953년 '학생의 날' 제정을 시작으로 2006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 입법화 과정을 거쳐 오랫동안 기념탑,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 왔다. 기념사업이란 역사적 사건에 근거하여 인물, 장소에 대한 '기억'을 기록하고 저장하려는 일련의 작업 방식들을 일컫는다. 특히 공공장소 또는 특정 위치에 기념물을 세운다는 것은 시대의 위인, 위대한 영웅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 함의된 희생, 실천, 신념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공공의 조형물을 건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속감, 유대감을 갖는 공동체가 공통된 기억을 공유하고 기념할 수 있는 가장 예술적인 방식은 무엇일까. 공공의 기억을 기념한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집단 기억을 현재라는 시간 속에 불러내어 물질적인 표식을 통해 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념조형물을 지칭하는 용어를 '모뉴먼트(Monument)'라 부르는 것도 "추모하기 위한(to memorialize) 목적의 조각, 구조물"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Alois Reigl)은 "모뉴먼트란 특정한 인간의 행위나 사건을 미래 세대를 위해 생생하게 남기려는 의도로 세워진 인간의 창작물"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으로 조성된 모뉴먼트는 1954년 제작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1954)이 대표적이다. 해방 이후 항일 지사들의 동상과 독립운동기념물 건립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1953년 5월 탑의 건립 제안과 함께 모금이 시작되었고, 이듬해인 1954년 6월 학생독립 운동 시위의 근원지인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설립되었다. '대한뉴스' 보도 영상(1954.6.18.) 자료는 애국심을 고무하는 문교부 장관의 기념사, 전국 각지의 남녀 학생대표들의 헌화 모습, 기념탑 제막식 중계상황 등 당시 현장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학생독립운동 제막식 중계방송 모습.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은 '성장을지문덕상'(1953) 제작을 주도했던 차근호에 의해 완성되었다. 기단부터 살펴보면 일제에 대항했던 남녀 학생들의 울분, 의기를 묘사한 장면과 이은상이 지은 비문을 새긴 청동 부조가 전‧후면에 부착되었다. 화강암을 쌓아 이은 2층 기단은 "우리는 피 끓은 학생이다. 오직 바른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라는 문장을 음각으로 새겼고, 기단 위로 솟아오른 탑신 전면은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휘호, '光州學生獨立 運動記念塔'을 중앙에 배치하였다. 여기다 상륜부 맨 꼭대기는 찰주(刹柱)가 회오리치는 횃불 모양의 청동 장식이 덧붙여져 전통적인 기념물 특성을 강조하였다. 기단·탑신·상륜부라는 탑의 형태와 청동 부조의 사실적인 표현기법에서 초기 기념탑의 전형을 엿볼 수 있다.

기단 뒷면의 기념탑 건립기

기단 전면의 학생독립운동 모습을 부조한 청동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이 세워지자 동일한 이름의 탑이 특정 장소에 제작되었다. 1959년 광주농업학교와 전남여고에서도 기성회를 구성하여 기념비를 각각 건립하였다. 전남 공립사범학교의 경우는 1931년 문을 닫은 연유로 광주교육대학 개교(1955) 이후 참여 학생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탑(2008)을 설립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 형태는 동일 사건, 유사한 성격의 기념물을 한데 모아 추모하고 전시하는 메모리얼(Memorial)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독립운동여학도기념역사관(전남여자고등학교),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학생독립운동기념물은 모뉴먼트와 메모리얼을 통한 역사의 기록, 재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획일적이고 동일한 형태를 지닌 상징물의 성격을 지닌다. 계몽성이 강한 과거의 전통적인 기념 공간, 기념비라는 재현의 수사법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

요컨대 이제는 '공공미술(new genreofpublicart)'의 새로운 형태, 역사를 기억하는 창의적인 예술 방식을 구현해야 한다. 집단 기억의 기념물은 공적인 장소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를 나타내는 사회적 상징물이지만 대중이 그 대상을 감상한다는 차원에서 명백히 '예술작품'이기 때문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