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도철 미디어국장 |
소금은 사람을 포함해 모든 포유류가 반드시 먹어야 하는 유일한 암석이다. 소금은 우리 몸에 필요한 만큼 섭취하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혈액의 0.9%가 염분인 탓이다.
소금은 체액의 산과 알칼리의 평형을 유지시키고, 쓸개즙 이자액 장액 등 소화액을 만든다. 따라서 염분이 부족하면 밥맛이 떨어지고, 소화가 안되거나 쉽게 피로를 느끼고 정서불안으로 이어져 급기야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소금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해 왔다. 이는 옛 문헌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미이라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소금을 얻기 위해 먼 곳까지 교역을 했으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425년에 리비아 사막에 있는 소금광산을 방문했다는 기록도 있다.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이집트, 황하 등 인류 4대 문명 발생지들은 한결같이 소금 생산이 용이한 곳과 밀접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국가 간에도 소금은 매우 중요한 무역상품이었다. 사하라 사막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소금은 상인들에 의해 이웃 나라에서 황금, 노예, 상아 등으로 교환했으며, 유럽으로 직접 공급하기도 했다.
소금은 천일염, 암염, 정제염, 재제염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은 소금이고, 암염은 돌덩이처럼 땅속에 묻혀 있는 소금을 말한다. 정제염은 바닷물의 염화나트륨 성분을 추출해 말린 것이며, 꽃소금이라 불리는 재제염은 기존 소금을 녹여 다시 가열해 결정화시킨 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금은 국제품평회에서 프랑스 게랑드소금보다 더 우수한 성분을 지닌 것으로 인정받은 천일염이다.
국내 최대 천일염 생산지는 신안이다. 그 역사도 길다. '증도 태평염전'과 '비금도 대동염전', 그리고 증도의 석조 소금창고는 문화재로 등록됐다.
1948년 조성된 대동염전은 비금도 주민 450여 세대가 나물로 끼니를 이어가며 100헥타르가 넘는 갯벌을 개척해 조성했다고 한다. 태평염전은 한국전쟁때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의 살길을 열어주고자 작은 섬 두 개를 연결해 1953년 만들었다. 이후 신안의 염부들은 군산, 부안 등지로 나가 숱한 염전을 개발한다.
신안의 염전은 단순히 물을 가두어 소금을 얻는 생산적인 의미만의 염전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소금 부족이 극심했던 시기에 조성돼 부족한 음식의 맛을 채우고, 염전 기술자를 본격 배출해 국내 염전의 발전을 이끈 우리 염전과 소금의 산 역사이다.
최도철 기자 docheol.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