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156명이 목숨을 잃은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국가재난안전시스템에 '대규모 인파 관리'가 새롭게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우리는 출퇴근때 지하철,축제· 콘서트·스포츠경기장·집회 등 일상 생활에서 인파의 위험성을 체험하고 있다.신체 압박으로 숨을 제대로 못쉬게 되고 자기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순간 '죽을 수 있겠구나'를 직감하면서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 경험이 한 번은 있을 것이다.경찰과 지자체, 행사 주최측이 혼잡 경비 인력을 배치해 운영하는 이유다. 정부는 이번 이태원 참사 사고 이후 '(가칭)범정부 재난안전관리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초기 대응 시스템 개선, 예방 중심과 과학 기반의 재난 관리, 신종·대형·복합재난 대응 역량 강화 방안 등을 담은 종합대책을 올해말까지 수립하겠다고 밝혔다.정부는 국가재난안전시스템의 패러다임을 바꿔가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도 이태원 참사와 관련 "조례 개정 등을 통해 향후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뉴얼 재정비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실국장 정책회의에서 지시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이처럼 대책 마련에 부산을 떨고 행정력을 낭비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경찰 지휘부의 오판탓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집회·시위 현장 등에는 경력이 과잉 배치돼 있으면서 정작 혼잡 경비가 필요한 지역에는 경비 경찰이 하나도 배치되지 않은 점 말이다. 핼러윈 축제장에 10만명 이상이 운집할 것이 예상돼 대처가 필요하다는 관할 경찰서 정보관의 판단을 무시했고 주최측이 없는 행사로 협조 요청이 없었다는 점에서 책임 의식이 실종됐다. 특히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한 정부 방침에 맞춰 사복 경찰을 집중 배치한 것은 경찰 지휘부의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입신을 위한 실적 내기에 급급해 시민의 안전이 도외시됐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야광조끼를 입고 신호봉을 든 정복 차림을 한 경찰들이 거리를 활보할 경우 마약 사범들이 축제장에서 활개를 칠 수 없게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정복을 입은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이자 군중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사고 발생 4시간 전에 위험 신고 전화를 받고 사고 현장에 정복 경찰 10여명만 배치했더라면 비극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서 안타까움을 지울 수가 없다. 정부와 지자체의 종합·특단의 대책이란 경찰이 현장에서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기본 임무를 충실히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자치 경찰 역할 강화가 재발 방지 대책의 하나로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경찰법에는 생활 안전과 교통 분야 사무는 자치 경찰이 맡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없는 구조다. 안전 관리에 해당하는 경비 업무는 경찰 기동대와 지구대 등 국가경찰이 맡고 있어서다. 국가경찰 신분이 유지되고 인사권과 예산권이 빠진 자치 경찰은 분명 한계가 있지만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자치 경찰의 제도 개선을 통해 주민밀착형 생활 안전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 치안서비스가 제공될 때 안전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기수 수석논설위원
이기수 기자 kisoo.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