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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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히잡 투쟁
이용규 논설실장
  • 입력 : 2022. 11.15(화) 15:15
  • 이용규 기자
이용규 논설실장
이란의 유명 영화배우 타라네 알리두스티가 지난 9일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을 히잡을 쓰지 않은 것으로 바꿨다고 최근 외신이 보도했다. 지난 9월 쿠르드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도덕 경찰에 끌려가 3일만에 사망한 사건에 저항하는 반정부 시위로 체포된 사람과 사망자 유가족을 돕기 위한 차원의 게시물이었다. 10대때부터 두각을 보이며 이란 영화계 간판 스타이자 780만명에 달하는 인스타그램 팔로어인 그는 사진속에서 머리카락을 드러낸 채 쿠르드 언어로 '여자, 삶, 자유'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인스타 프로그램 프로필에 자신을 배우, 통역사, 페미니스트, 엄마라고 소개했고, 그동안 여성의 권리와 보편적 인권을 옹호하는 소신 행보를 해와 주목을 받았다.

 히잡은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와 목 등을 가리기 위해 쓰는 두건의 일종이다. 이슬람 국가마다 다른 형태의 히잡을 쓰지만 착용을 강제하는 나라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뿐이다. 이란에서 여성은 히잡을 쓰지 않으면 외출도 못한다. 도덕 경찰로 통하는 지도 순찰대가 도시 곳곳에서 여성의 복장 등을 암행 감시와 처벌로 많은 지탄을 받아왔다. 지난 9월 도덕 경찰에 끌려가 사망한 아미니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분노가 전세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배경이다.

 이란에서 히잡은 전통 의상을 넘어 권력자의 통치 수단으로 작용했다. 1936년 1월8일 이란 팔라비 왕조 초대 국왕 레자칸은 카슈프에 히잡 법령을 선포한다. 페르시아어로 베일벗기인데,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히잡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이슬람 복장 착용은 일체 금지됐다. 시민들은 서양식 의복을 입도록 강요받았고, 경찰은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적발하면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지금 이란의 상황과는 정반대인데, 강요된 히잡 벗기는 오히려 여성을 집안에 가뒀다. 레자칸 왕의 히잡벗기 정책은 1941년 아들 레자 팔레비에 의해 일단락된다. 그러나 아들 팔레비 정책도 친 서구 일변도인 레자칸 왕과는 거의 차별이 없어 국내에서 반발이 심했다. 이때까지 히잡은 여성에게 선택의 문제였다. 팔레비 왕조의 급격한 서구화에 반대하는 여성들은 히잡을 쓰고 다녔다. 심지어 온 몸을 가리는 차도르를 입기도 했다. 히잡은 반서구화를 상징했다. 1979년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하는 이란 혁명으로 인해 팔레비 왕조가 축출된다. 서구화에 반대하며 지지를 얻은 호메이니는 1979년 3월7일 직장내 히잡 착용 의무화법을 전격, 발표했다. 테헤란 거리에는 연일 10만명이 넘은 여성이 쏟아져 나와 시위를 하고 저항했다. 정치적으로 히잡을 강요받은 여성들은 이를 정치적 표현의 수단으로 삼았다. 2009년 이 해에 치러진 대선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낙선한 개혁파 후보 상징색인 녹색을 온몸을 두르며 지지를 표시한 것이다. 녹색혁명에 이어 2017년 히잡 의무화 반대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이 매주 수요일 흰색 히잡을 착용하는 것으로 정권에 저항했다. 흰색 수요일 운동이다.

 국제사회에서 히잡 착용 저항 연대는 종교에 대한 반대가 아니다. 단순한 전통 의상이던 히잡이 정치적 도구화로 반문명적인 감옥을 상징하고 있어서다. 국가 권력의 힘으로 의식주에서 개인의 결정 사항인 의복 문제까지 지배하는 일이 문명사회에서 과연 맞느냐의 저항이다. 이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자유를 꿈꾸고 있는 이들의 투쟁을 상징한다. 자유를 향한 갈망에 깊은 연대를 보낸다.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