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선사시대 사람들 만나며 봄마중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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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선사시대 사람들 만나며 봄마중 해볼까
화순 지동마을
10여가구 30여명 사는 산골
마을 곳곳 고인돌 지천 널려
2500~2800년전에 제조 추정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보물급 감태바위 채석장 눈길
  • 입력 : 2023. 02.16(목) 11:17
감태바위 고인돌군. 앉은뱅이 책상만한 높이의 탁자식 고인돌을 비롯 바둑판식, 개석식 등 여러 가지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선사시대의 흔적을 찾아간다.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지동마을이다. 지동마을은 만지산과 조봉산, 안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10여 가구 30여 명이 살고 있는 산골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다. 마을 주변에 지동제 등 큰 저수지가 있어 물 걱정도 없다.

아주 오랜 옛날, 마을 앞에 큰 연못이 있었다고 전한다. 한자로 연못 지(池)를 써서 ‘지동(池洞)’이다.

“괸돌바위 앞에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연못에서 물놀이를 하고, 괸돌바위에 앉아 낚시질도 즐겼겠죠. 연못이 있는 마을이라고 ‘못골’로 불렸답니다. 그 자리에 주막도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갔다고 합니다.” 최종채 화순군문화관광해설사의 말이다.

화순고인돌 가운데 가장 큰 핑매바위. 덮개돌의 폭이 7m, 무게가 자그마치 280톤이다.
연못은 오래 전에 메워졌다. 지금은 모두 논밭으로 변했다. 논밭은 마을사람들이 일구고 있다. 삶의 터전이다.

산골이지만, 지동마을은 중요한 길목이었다. 능주를 거치지 않고도 남평과 보성을 오갈 수 있었다. 마을에 고인돌도 많았다. 사람들은 고인돌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고인돌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자연의 상태 그대로 받아들였다.

고인돌의 가치는 1995년 목포대 박물관팀의 발굴로 학계에 보고됐다. 지금은 고인돌을 애지중지하며 산다. 마을회관 앞에 있는 고인돌 발굴지 보호각이 그 증표다.

“박물관팀에서 발굴 조사를 한 곳입니다. 고인돌의 생김새와 용도를 연구하기 위해서였죠. 여기서 유물이 다량으로 나왔습니다. 그 발굴지를 원형대로 복원해 놓은 게 보호각입니다. 지금은 체험과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최종채 해설사의 설명이다.

목포대 박물관팀의 발굴 조사 결과, 다양한 크기의 무덤이 확인됐다. 작은 돌을 쌓아 만든 고인돌, 판석을 이용해 만든 고인돌, 기둥 모양의 돌을 사용한 널무덤까지 보였다. 2500∼28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시신의 뼈와 함께 돌칼, 화살촉, 토기 등 유물도 나왔다. 타다 남은 목탄도 발견됐다. 선사인들의 생활과 장례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됐다.

지동마을은 무등산 위에 형성된 마을이다. 무등산은 8700만 년 전, 세 번의 화산폭발로 생겨났다고 알려져 있다. 백악기층인 장동응회암과 화산재가 굳어진 용결응회암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용결응회암은 널빤지처럼 판상으로 쪼개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선조들은 이를 활용해 생활도구와 그릇을 만들었다. 고인돌도 매한가지다.

청동기 시대의 무덤 양식인 고인돌은 지동마을에서 도곡면 효산리 모산마을을 잇는 4㎞ 구간에 흩어져 있다. 보검재(해발 188m) 일대다. 대신리에 319기, 효산리에 277기가 모여 있다. 형태도 여러 가지다. 무게도 수십 톤에서 수백 톤까지 다양하다. 가장 큰 덮개돌의 폭이 7m, 높이 4m, 무게가 자그마치 28만㎏(280톤)이나 됐다.

지동마을에 있는 감태바위 채석장도 보물급에 속한다. 덮개돌을 떼어낸 흔적이 뚜렷하다. 돌을 떼어내려고 판 홈이 보이고, 떼어낸 덮개돌도 있다. 아래 바위가 사람을, 위쪽의 바위가 감투를 닮았다고 ‘감태바위’로 이름 붙여졌다. 감태는 갓의 옛말이다.

감태바위 주변에도 고인돌이 지천이다. 앉은뱅이 책상만한 높이의 탁자식 고인돌이 있다. 고임돌이 고여진 바둑판식 고인돌, 땅속에 만든 무덤방에 뚜껑을 덮은 개석식 고인돌도 많다. 고인돌 전시장이라 할만하다. 옛날에 지동마을 어린이들이 숨바꼭질하고 전쟁놀이하며 뛰놀던 공간이다.

고인돌 발굴지 보호각 내부. 발굴조사를 거친 고인돌을 원형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화순의 고인돌 유적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보존도 잘 됐다. 덮개돌을 떼어 낸 채석장도 여러 군데다. 돌을 떼어내고, 떼어내려 한 흔적도 남아있다.

덮개돌을 캐내려면, 먼저 바위에 홈을 판다. 홈에 나무를 끼워 넣어 벌어지도록 한 다음, 물을 부어 떼어냈다. 채석장에서는 당시 석재를 다루는 기술, 덮개돌 운반 방법, 고인돌 축조 과정 등을 짐작할 수 있다.

고인돌을 옮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테다. 덮개돌을 끌고 가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됐고 또 다치고, 죽었을지….

화순 고인돌유적은 1998년 사적지로 지정됐다. 2000년 12월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고인돌유적은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중간중간에 내려 돌아보는 게 일반적인 여행법이다. 사부작사부작 걸으면서 보면 더 좋다. 차를 타고 가면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화순군은 고인돌 탐방열차 운행을 검토하고 있다. 우선 오는 4월 열릴 고인돌축제 기간에 운행할 예정이다.

지동마을 입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순 고인돌유적을 내세우고 있다.
지동마을에 민속자료 전시관도 있다. 마을에서 쓰던 옛 생활용품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다. 낡고 녹이 슨 물건들이지만, 마을사람들의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물건마다 수많은 사연도 배어있다. 하지만 지금은 쓸모가 없어진 것들이다. 버려졌으면 고물이었을 텐데, 가지런히 모아서 보물로 만들었다. 고물과 보물은 ‘한끝’ 차이라는 걸 실감한다.

마을에서 마시는 맷돌커피도 별난 맛을 선사한다. 맷돌을 이용해 커피콩을 갈아 커피를 내린다. 커피 맛도 좋지만, 향도 매혹적이다. 고인돌 발굴지 보호각 뒤편에 있는 전통한옥에서, 새봄부터 다시 맛볼 수 있다.

두 볼을 스치는 바람결이 기분좋게 간질이는 요즘, 봄마중을 겸해 선사시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지동마을이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