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나라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가깝고도 먼나라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 입력 : 2023. 03.13(월) 12:47
김선욱 부국장
‘유치원’이란 단어는 일제 잔재 가운데 하나다. 이 명칭이 사용된 건 지난 1897년이다.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 세운 ‘부산유치원’이 유래다. 독일의 유아교육기관을 ‘킨더가르텐’이라고 부른다. 독일어로 ‘어린이들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이를 일본식 한자(요치엔)로 바꾼 것이다. 정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 통합을 논의 중인데, 이번에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는 광복 78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안에는 친일 잔재가 남아 있다. 주로 언어로 구조화 된 면이 강한 것 같다. 일제 강점기 35년을 거치면서, 무의식적으로 스며들다 보니 지금까지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짬뽕(초마면), 우동(가락국수), 망년회(송년회), 가라(가짜), 기스(흠집), 사라(접시), 익일(다음 날), 가불(선지급), 유도리(융통성), 만땅(가득) 등 셀수 없을 정도다.

학교 현장에는 일제의 군국주의 문화가 남아있다. 반장, 부반장은 일제강점기 때의 급장의 호칭이다. 그 시절, 담임교사는 성적이 뛰어난 학생을 반장으로 지명해 자신의 대리자로 활용했다. 위계에 의한 질서를 강조하는 일본 군국주의 문화의 소산이었다. 차렷이나 경례 등의 행위도 같은 맥락이다. 어두운 시대의 그림자인 일제의 잔재는 씻기지 않고 있고, 일본은 과거의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오는 16~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지난 6일 정부가 일본 전범기업이 참여하지 않는 ‘제3자 변제’를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으로 발표한 뒤, 국내의 거센 반발을 안고 이뤄진 회담이어서 어느때 보다 일본의 태도가 주목된다.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딛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일본의 성의있는 호응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강제동원을 포함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 가해자의 몫이다. 이번 회담은 이를 정상회담문에 담아내느냐 여부가 성과를 평가하는 잣대다. ‘제3자 변제’를 한·일관계 회복을 위한 현정부의 선제적 조치로 본다면, 이제 공은 온전히 일본에게 돌아갔다. 올바른 역사 인식 없이 미래로만 가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가깝고도 먼나라로 남을지, 협력적 동반자의 길을 열지는 일본의 선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