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앗아간 만취운전자, 2심서 형량 3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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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가장 앗아간 만취운전자, 2심서 형량 3년 추가
광주지법, 1심 징역 4년→2심 7년
죄책 무겁고, 유족 탄원 등 참작
국회 “한국, 벤틀리법 도입해야”
법조계 "현실성 낮아 신중해야"
  • 입력 : 2023. 04.02(일) 17:52
  •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지난해 11월 대리운전을 하던 40대 남성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광주 광산구 흑석사거리 보행섬. 강주비 기자
자녀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대리운전을 뛰던 가장을 치어 숨지게 한 30대 만취 운전자가 항소심에서 원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지역 법조계에서는 미국의 ‘벤틀리법’을 도입해 음주운전 사망자 유가족의 실질적인 피해회복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일 광주지법에 따르면 최근 제1형사부(항소부·재판장 김평호 부장판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사),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A(37)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8일 오전 3시 36분께 광주 광산구 흑석사거리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74%(운전면허 취소 수치)인 만취 상태로 졸음 운전하다 40대 남성 B씨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직진을 하던 중 도로 오른편에 있는 보행섬으로 돌진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B씨를 들이 받았다. A씨는 지인과 과음한 뒤 전북 자택까지 가려고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조사됐다.

초등학생 두 딸을 둔 B씨는 낮에는 신차 판매원, 밤에는 대리기사로 일하던 성실한 가장이었다.

B씨는 두 딸의 학원비를 벌고자 대리운전 장소로 이동하려고 보행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이런 참변을 당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범행을 반성하고 있고 종합보험을 통해 피해자 측에 보험금이 지급됐다. 초범인 점도 유리한 정상”이라며 “다만 A씨가 만취 상태에서 졸음운전을 하다 사망 사고를 일으켜 죄책이 무거운 점, 음주운전을 엄벌할 사회적 필요성이 큰 점, 피해자 유족의 엄벌 탄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은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특히, 해당 사고 이후 피해자 유가족이 생계난에 시달린 점 등이 이번 항소심 판결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B씨 처럼 가장이 음주운전으로 사망했을시 미성년 자녀들이 생계문제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에서 관련 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지난 2018년 한국교통연구원이 교통사고 유자녀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유자녀 가정의 월평균 소득은 가장을 잃기 전 219.9만원에서 사고 이후 100만원으로 절반 넘게 줄었고,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가정이 전체의 55.4%에 달했다.

반면 보상금 액수는 턱없이 작은 데다가 그마저도 단기간에 다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교통사고 사망 유자녀 지원 제도가 있지만, 이를 활용하는 이가 적은데다 지원 범위도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좁아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미국에서 올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든·헤일리·벤틀리법(Ethan’s, Hailey’s, and Bentley’s law·벤틀리법)’을 한국에서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벤틀리법은 음주운전 교통사고 사망 피해자에게 미성년 유자녀가 있을 경우, 가해자가 자녀들의 양육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양육비의 액수는 아동의 경제적 필요와 자원, 생활 수준 등 성장환경을 고려해 법원이 정한다.

음주운전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만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시급히 ‘벤틀리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지난 1월1일 미국 테네시주에서 벤틀리법이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20여개 주 이상에서 입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음주운전 예방 노력이 운전자 처벌에 집중되어 있는 가운데, 교통사고 유자녀에 대한 지원 제도는 매우 제한적이다. 음주운전 가해자에 대한 처벌 못지않게 피해 유자녀에 대한 적절한 배상과 책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행‘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1에 피해 유자녀에 대한 양육비 지급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이나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을 통해 법원의 직권 내지 상속인 신청에 따른 양육비 배상 명령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해당 법이 한국 현실과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지역 법조계 관계자는 “벤틀리법의 취지는 좋지만, 민사로 진행할 사안을 형사로 처리하는 것이라 현실 가능성이 크진 않아 보인다”며 “‘가해자가 양육비를 미지급 할 경우엔 일반 벌금처럼 노역장에 유치한다’ 같은 구체적인 내용들이 없다면 이중처벌논란도 생길 것 같다. 현재로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