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세이·최성주>진영과 당파를 넘어 대한민국 미래 위해 공동 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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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에세이·최성주>진영과 당파를 넘어 대한민국 미래 위해 공동 노력을
74>화합의 정치인 넬슨 만델라와 김대중
최성주 고려대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 입력 : 2023. 04.03(월) 12:45
최성주 특임교수
우리가 기억하는 정치인 중,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경우도 드물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유럽 제국주의의 유산인 인종차별(소위 ‘Apartheid’) 정책에 온몸으로 저항하다가 약 30년간 투옥되는 등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김대중 대통령도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투옥되고 고문 및 납치된 데 이어,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마침내 자유와 인권을 쟁취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평등선거로 선출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그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지도자로서 남아공 백인 정권의 Apartheid 정책에 맞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한다. 1962년 반역죄로 체포되어 1964년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장기간 복역한 후, 1990년 2월에야 출소한다. 1993년 데클레르크(De Klerk) 대통령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1994년 실시된 선거에서 ANC가 62%를 득표함에 따라,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 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는 ‘진실과 화합 위원회(TRC)’를 설치하여 용서와 화해를 기본원칙으로 하며 과거사 청산을 주도한다. 화형 또는 총살 등으로 흑인들의 인종차별 반대투쟁을 잔혹하게 진압한 백인 가해자라도 진심으로 참회하는 경우에는 그를 사면한다. 또한, 피해자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피해자 묘지에 비석을 세워줌으로써, 인종차별 정책이라는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망각되지 않도록 조치한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군부의 위협으로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오랜 기간 민주진영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군사독재에 항거한다.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나 여섯 차례 국회의원을 역임한 이후, 1998년 2월 제1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는 군사정권으로부터 납치와 가택연금, 투옥, 고문 등 숱한 탄압을 받았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에는 통일민주당의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며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구성하여 민주진영을 지휘한다. 인권 향상과 남북관계 진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에 한국 역사상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그 외에, 국제인권연맹 인권상과 미국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 및 노르웨이 라프토(Rafto) 인권상 등을 수상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 군부 일당을 용서한다. 그의 삶은 추운 겨울에도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뎌내는 인동초(忍冬草)에 비유되기도 한다. 독서광인 그는 교도소에서 엄청난 양의 서적을 읽었고,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한 결과 외국인과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자신을 고문하고 투옥하며 사형선고한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5·18 광주학살의 원흉인 전두환을 포용한 김대중 대통령의 큰 도량이 새삼 돋보이는 이유다. 좌우로 나뉘어 소모적인 진영 싸움에 골몰하는 오늘날의 여야 정치인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대상이다. 소위 ‘내로남불’과 보복의 악순환을 속히 끊어야 한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즐겨쓰던 표현은 우분투(Ubuntu)인데, 이는 “그대가 있음에 내가 있다”라는 의미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다. 타인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한 사회에서는 관용과 배려의 문화가 자리 잡기 어렵다. 우리나라처럼 내부갈등이 첨예화되고 고질적인 국가도 드물다. 이념과 지역, 젠더(gender)는 물론, 노사, 종교 등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분열과 갈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에 따른 비용이 국민총생산량(GDP)의 27% 수준에 달한다니 그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그 이유야 어쨌든, 전직 대통령을 두 명씩이나 줄줄이 감옥에 보낸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던가.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면서 BTS를 배출한 문화강국이기에, 더욱더 창피스러운 일이다.

현 시점에서, 만델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을 비교 조명해 보는 이유는 과거보다 미래를 향해 합심하자는 취지에서다. 과거를 캐면 캘수록 미래는 더욱 깊게 묻히는 법이다. 지나간 시간을 끊임없이 소환하면서 국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소모적인 진영 싸움을 중단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합심할 때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하에서 평화롭게 번영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기후위기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진영과 당파를 넘어서는 공동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올해로 국토가 남북으로 나뉜 지 78년이니, 분단 100년도 아주 멀지 않다. 길어지는 분단 상황 속에서 내부분열마저 계속 심화될 경우, 우리에게 더 이상의 밝은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