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 더 이상 없었으면… ” 아버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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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산재사망 더 이상 없었으면… ” 아버지의 눈물
●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3년 전 산재로 자식 보낸 김선양씨
아들 김재순씨 파쇄기 끼어 숨져
안전지킴이로 노동환경 개선 힘써
“현장 똑같아… 중재법 효과 미미”
  • 입력 : 2023. 04.27(목) 18:26
  • 강주비 기자·전해연 인턴기자
산업재해로 사망한 김재순씨의 아버지 김선양씨가 광주 광산구 한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산업재해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우리 재순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항상 든든했던 아들을 산업재해로 떠나보낸 지 3년. 김선양씨는 조악한 화질 속에 담긴 아들 재순씨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CCTV 속 재순씨는 분주히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것이 2명이 해야 할 수준의 업무량을 주야간 교대 근무로 혼자 담당했기 때문이다.

재순씨는 혼자 굴착기로 작업장을 정리하고, 파쇄기를 가동하며 숨돌릴 틈 없이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다 파쇄기에 걸린 이물질을 발견한 듯 위태롭게 기계에 올라섰고, 중심을 잃고 미끄러져 파쇄기에 빨려 들어갔다. 2인 1조 작업이 원칙이지만 당시 재순씨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씨는 “비상정지 스위치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설치돼 있었고, 비상 리모컨도 없었다”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혼자 일하지 않았다면’, ‘안전장치나 설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그날 출근을 하지 않았다면…’

재순씨의 죽음에 수백 가지의 가정을 늘어놓으며 김씨가 깨달은 것은 그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또 다른 재순씨가 없도록, 현재 광주전남노동안전보건지킴이(노안지킴이)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노동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다.

●‘처벌’ 대신 남은 ‘처벌불원서’

김씨는 노안지킴이 활동을 하며 수많은 산업재해 유족을 만났다. 김씨가 접한 산업재해 사례 대부분은 회사 측에서 합의를 종용했다.

김씨는 “회사 측은 산재가 발생하면 유족에게 먼저 장례지원금, 고용·산재보험, 위로금 등을 말하며 합의서를 건넨다. 이와 함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처벌불원서’도 작성하라고 설득한다”며 “처벌불원서가 생소한 유족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부터 이런 일이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고 말했다.

처벌이 미미하다 보니, 현장에서 안전 수칙이 지켜지는 일도 드물다. 일용직 노동자이기도 한 김씨 역시 매일 산업재해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다.

김씨는 “지게차 운전기사로 주야간 근무를 했었는데, 지게차가 들어가는 입구에 여러 물품이 적재돼 있었다. 한번은 지게차를 진입하다 입구에 있던 냉장고를 쳐 쓰러뜨렸다. 만약 근처에 사람이 있었으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고 회상했다.

자칫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한 상황이었으나, 회사 측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김씨는 “회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나에게 ‘왜 기사님만 유독 불만이냐’는 말을 하더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의 긴장감은 길지 않았다. 현장은 크게 달리진 것이 없다”고 허탈해했다.

산업재해 사망 김재순씨의 아버지 김선양씨가 광주 광산구 한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양형기준 높이고 작업 거부권 보장해야”

김씨는 산업재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고, 현장 작업자가 위험 요소 발견 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에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지난 26일 징역 1년을 선고받은 한국제강 대표 사례가 유일하다. 처음으로 징역형이 나왔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하한선에 맞춰져 있고, 벌금 또한 기업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되지 않은 수준이라 처벌 효과가 크지 않다고 김씨는 지적한다.

김씨는 “내년 1월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예정돼 있지만, 하루빨리 모든 사업장으로 적용 범위를 높여야 한다. 또, 양형 기준을 기업이 충분히 책임을 통감할 수 있을 정도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현장 작업자에 대한 ‘작업 거부권’도 조속히 이행돼야 한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건설 및 산업현장에서 위험 요소가 있다고 판단될 때 노동자가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작업 거부권이 부여된다면 중대재해 발생률은 50% 감소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오는 5월22일 작업장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한 김재순씨의 사망 3주기를 맞는다. 사업주는 당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강주비 기자·전해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