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흑산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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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흑산홍어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3. 05.01(월) 16:53
최도철 국장
 흑산도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노래를 즐겨 부르는 사람들은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으로 시작하는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를 자동 재생할 것 같다.

 또 역사 덕후들은 영화로도 제작됐던 정약전의 ‘자산어보’, 그리고 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기 ‘표해시말’을 금세 소환할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흑산도하면 ‘코가 뻥 뚫리는 알싸한 맛’이 일품인 남도 대표음식 홍어가 먼저다.

 홍어는 우리나라 서남해 이곳 저곳서 잡히지만, 겨울 지나 흑산도 인근 바다에서 잡히는 흑산홍어를 최고로 친다. 이 곳이 수심이 깊고 뻘이 많아 알을 낳고 서식하기에 가장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도의 진미 홍어를 즐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개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게 홍탁삼합이다. 홍어와 막걸리가 잘 어울린다 해서 홍탁(洪濁)에 홍어, 묵은김치, 돼지수육을 합쳐 먹는다 해서 삼합(三合)이다.

 홍어 내장과 파릇한 보리순을 집된장에 풀어 진하게 끓인 홍어앳국도 속풀이 해장으로 단연 ‘엄지척’이다. 그 외에도 누구나 즐기는 홍어튀김, 홍어전, 홍어회무침 등 ‘홍린이’들을 위한 음식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고수(?)들은 홍어에 이것 저것 섞지 않고 본연의 식감과 맛을 제대로 즐긴다. 미식가들이 꼽는 홍어 별미 등급은 ‘1코’, ‘2애’, ‘3날개’ 순이다. 이정도는 돼야 홍어9단이라 할 수 있다.

 같은 홍어라도 수치는 푸대접을 받는다. 잡히자마자 거시기부터 뎅강 잘린다. 암치가 더 맛이 좋아 수치는 싸게 팔리는데다, 두 개나 되는 생식기에 가시도 있어 손에 찔리기 십상이라 어부들에게 사정없이 난도질 당하는 것이다. ‘만만한 게 홍어X’이라는 속어가 이렇게 생겼다.

 웅숭깊은 전라도의 정서와 언어로 ‘징소리’, ‘백제의 미소’, ‘타오르는 강’ 등을 펴낸 문순태 작가가 최근 홍어를 매개로 다양한 삶의 통찰이 돋보이는 시집을 냈다. 시집 ‘홍어(문학들 시인선 19)’는 문 작가가 홍어를 소재로 3년 전부터 써 온 시들이 담겼다. 홍어라는 제한된 글감으로만 100여 편의 시를 쓴 것도 경이로운데, 한 구절, 한 구절 언어를 부리는 솜씨에 찬탄이 나온다. 가히 음식시학의 절창이라 할 만하다.

 문화부 기자가 내 책상위에 시집 ‘홍어’를 올려 놓았다. 닷새 후부터 흑산도 예리항에서 열리는 ‘흑산홍어축제’ 소식도 들린다. 홍탁삼합에 막걸리 한 잔이 급 땡기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