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판화는 민중미술의 투사회보 등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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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오월판화는 민중미술의 투사회보 등사기”
이준석 오월시·판화전 ‘검은방’
5·18센터 전시실 6월30일까지
김준태 등 대표 민중시 모티브
80·90년대 작부터 30점 선봬
‘오월의 한’ 응집한 작품 ‘눈길’
  • 입력 : 2023. 05.02(화) 18:01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지하1층 전시실에서 오월시·판화전 ‘검은 방’을 열고 있는 이준석 작가. 도선인 기자
예순 다섯, 어느덧 깊은 주름이 새겨진 얼굴이 마치 지난 43년의 세월동안 광주의 오월을 생각하며 일피휘지로 새겨 내려간 목판의 칼 자국과 닮아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아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지하1층 전시실에서 오월시·판화전 ‘검은 방’을 열고 있는 이준석 작가의 인상 (人相)이다.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5·18민주화운동을 목도한 이후, 작품을 통해 그날의 진실을 말해왔다. 특히 1984년부터 2002년까지 ‘민중문화연구회 미술분과’, ‘광주목판화연구회’,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로 이어지는 미술운동 조직 활동을 주도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에는 판화, 걸개그림 등 대중적이고 현장성 있는 작품들을 다수 제작했다. 홍성담, 허달용, 이상호, 정희승 등과 함께 광주의 민중미술 거목으로 꼽힌다.

이 작가는 5·18을 주제로 작성된 여러 시에서 모티브를 얻어 판화와 회화 작품 30여점을 선보였다. 문병란, 김준태, 박노식, 곽재구 등의 광주의 대시인들이 작성한 시들이다. 특히 작품과 함께 목판, 모티브를 얻은 해당 시까지 함께 내걸어 보다 깊은 감상을 이끈다.

이 작가는 1980년 5월 당시 조선대 미술대학 4학년 신분으로 교생실습을 하고 있던 중에 당시 충격적이고 참혹한 현장을 두 눈으로 봤다. 항쟁기간에는 시위대와 합류해 계엄군에 맞섰으며 총탄이 날아다니는 살육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젊은이는 1983년 군 전역 후 망월묘역의 느낌을 형상화한 판화 작품 ‘묘지 가는 길’을 제작하면서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민중미술’ 그림들을 그려 오고 있다. 1986년 ‘광주목판화연구회’를 창립해 ‘오월시 판화집’ 등을 출간하는 등 지역 목판화 운동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다수의 미술인들이 구속됐을 때, 석방운동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작가의 대표작 ‘인산’의 목판화 작품과 더불어 이 그림을 캔버스에 그대로 옮긴 대형 회화 작품도 선보인다. 이 그림은 ‘5·18 희생자의 시신을 산처럼 쌓아둔 모습’을 판화로 옮긴 것이다. 판화 ‘인산’은 제작 당시 엄혹한 사회적 분위기로 외부로 공개할 수 없었던 작품이라 한다. 회화작 ‘인산’은 네개의 정사각형 캔버스를 붙여 수백 배 크기의 대작으로 확대한 것이다. 무덤 옆 초승달,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상의 또다른 표현이다. ‘인산’은 민중미술가의 길로 들어선 이준석 작가의 첫번째 목판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의미있는 작품으로는 황지우 시인의 ‘성 오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을 꼽았다. 찬란한 계절 오월을 묘사한 이 시를 통해 광주 오월의 아픔이 더 극대화 된다. 이 작가는 시를 읽고 해골 얼굴에 핀 붉은 모란꽃을 새긴 판화로 재해석했다.

이 작가는 광주의 오월을 새긴 목판은 민중미술의 투사회보 등사기라고 설명한다. 그는 “어떻게 하면 미술을 통해 그날의 진실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가 ‘판화’였다”며 “한번 새긴 목판을 통해 빠르고 다량의 작품을 유포할 수 있다. 서양화를 전공했음에도 불구, 한동안 판화를 그렸던 이유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시와 판화는 80, 90년대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지형을 바꿀 만큼 강력한 매체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것은 광주 5·18민중항쟁이 있어 가능했다”며 “전시를 통해 광주정신이 지금도 유효한가, 점검해 보고자 했다. 그 시절 목숨만큼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키고자 했던 가치들이 지금 그리고 이 시대에 아직 유효한 것인지 내 스스로의 삶 속에서 점검해 보고, 내 마음의 거울을 닦아보는 심정으로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편 오월시·판화전 ‘검은 방’은 오는 6월30일까지 계속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관람 가능하다. 이 작가는 오월미술관에서 오월시·판화전 ‘칼과 꽃’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이 작가는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84년부터 2002년까지 ‘민중문화연구회 미술분과’, ‘광주목판화연구회’,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등 미술운동 조직 활동을 주도했다. 1999년 광주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광주미술인공동체 회장·사무국장을 역임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