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획시리즈> 지역 대학생 항쟁 희생자 더 세밀하게 연구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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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기획시리즈> 지역 대학생 항쟁 희생자 더 세밀하게 연구돼야
●5·18 43주년-학교 내 기념공간 조성하자
<7>지역대학
지역대, 5·18 불쏘시개 역할했지만
관련 기록 통일화 연구진행 안돼
민족민주대성회 조차 기록 달라
전남대·조선대 열사들 공간 조성
타 대학 추모사업 명맥만 이어가
  • 입력 : 2023. 05.17(수) 18:35
  •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
전남대 정문에서 전경과 대치하고 있는 전남대생. 5·18기념재단.
지난 13일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대학생진보연합이 ‘제43주년 5·18정신계승 전국대학생대회’를 연 가운데 대학생들이 깃발을 흔들고 있다. 송민섭 기자.
1980년 5월18일 아침, 전남대 정문 앞에서 전개된 학생시위는 5·17조치로 인해 시작된 국가폭력에 처음으로 저항하며 항쟁에 불길을 지폈다.

특히 지역 대학생들은 5·18민주화운동의 불쏘시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덕에 5·18민주화운동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민주화운동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됐다.

최정기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화프레임과 학생운동네트웍, 그리고 5·18민중항쟁 - 1980년 전남대 학생운동 사례를 중심으로’ 논문에서 “전남대 학생운동은 5·17조치 후의 상황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거기에 저항했고, 그 저항이 결국 5·18민중항쟁으로 발전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43년이 흘렀음에도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에 대한 신원파악, 연구 등은 제자리걸음이다.

가장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다고 알려진 민족민주대성회조차 기록마다 참여자 규모가 다르게 쓰여 있다. 민족민주대성회는 1980년 5월14~16일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서 열린 범시민대회로 황석영 기록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서는 1만명, 김영택의 ‘실록 5·18 광주민중항쟁’에는 6000명, 임낙평의 ‘광주의 넋-박관현’에는 7000명으로 표기돼 있다.

연구 또한 전남대와 조선대 중심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항쟁에서 두 대학이 주축으로 활동한 것은 맞지만, 다른 대학의 학생들도 적극 참가했다. 그럼에도 희생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광주지역 17개 대학 중 모교 출신 열사를 파악하고 있는 학교는 전남대와 조선대 두 곳뿐이다.

전남대 등에 따르면 5·18 관련 총 55명의 전남대생이 사망·징역형 등으로 희생당했다. 이중 △윤상원 △유영선 △서호빈 △김광석 △이정연 열사 등 5명이 사망했다. 50명은 징역과 집행유예, 제적, 무기정학 등의 처분을 받았다.

조선대의 경우 5·18 당시 희생된 김동수 열사, 2005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김학수 열사와 류재을 열사, 1994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지만 아직도 진상규명되지 못한 이철규 열사 등 17명의 열사들에 대한 현황파악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두 대학은 기념비, 민중항쟁기념행사, 민주문화 운동 기념공간 조성 사업 등을 통해 선배 열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전남대는 교내에 ‘5·18 광장’, ‘민주길’, ‘정의의 길’, ‘윤상원 숲’ 등, 조선대는 김동수 열사 추모비, 조선대학교 민주화운동 기념탑 등을 교내에 세웠다.

1980년 5월 민족민주화대성회 참석을 위해 교문을 벗어나 대형태극기를 앞세우고 금남로로 향하는 전남대 교수들과 학생들. 5·18기념재단.
그렇다면 타 대학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이들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그래서 최근 광주교육대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열사 파악에 나선 것은 의미가 크다.

광주교대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초등학교 교사로 시민군 ‘민원부장’을 맡았던 정해직(73)씨와 시집 ‘광주시편’(1983)을 발간해 광주의 진실을 알리려 애썼던 김시종 시인, 총학생회부활추진위원회를 결성해 광주교대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송희상 열사 등을 ‘광주교대 100인 평전’에 담아냈다.

여타 대학들은 추모사업회 중심의 위령제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광주대는 김준배 열사, 호남대는 표정두 열사 등을 중심으로 그들의 가치관을 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교내 추모비나 추모공간 설치는 요원한 상태다.

김형중 조선대 민주평화연구원장은 “대학생 열사들에 대한 학술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관련 연구는 극히 일부고, 산발적으로 진행됐을 뿐”이라며 “이는 대학생 열사들의 현황 등 파악은 당사자나 유가족들의 증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열사는 학술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추모사업회 중심의 계승사업이 일반적이다”며 “그럼에도 조선대는 모교 열사들의 행적과 연보, 활동 등은 다 파악하고 있다. 현황 파악은 대학 자체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학교 자체적으로 당시 희생자들을 찾지 않는 한 열사들은 자신들의 모교에서 조차 기억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1980년 당시 전남대, 조선대생들만 싸웠겠나.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나섰지만 회자되는 것은 두 학교 출신들 뿐”이라며 “이건 솔직히 타 대학들이 희생자들의 숭고한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