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곡미술관 ‘어느 수집가의 인연’에 전시된 작품 속 오지호 서명(왼쪽)과 유족이 제공한 오지호 화백의 서명. 오수경 작가 제공 |
![]() 동곡미술관 문웅 박사 컬렉션 ‘어느 수집가의 인연’에서 오지호 화백의 미공개 작품이라 소개된 그림이 위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도선인 기자 |
동곡미술관은 지난 9일부터 문웅 박사 컬렉션 ‘어느 수집가의 인연’을 진행하고 있다. 전시에는 여러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오 화백의 1956년 작 20여점이 소개됐다. 그림은 스케치북에 펜과 목탄을 이용해 그린 해변가 풍경 수채화, 인물 스케치 등이다. 이는 개인 소장품이 전시에 최초 공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이목을 끌었다.
화폭에는 미국 성조기와 외국인으로 보이는 유색인종, 라디오나 가죽가방과 같은 소품, 원피스 등 서양 옷을 입고 있는 아낙네, 개화기에 접어든 당시 풍경 등이 주로 그려져 있다. 지역 미술업계 관계자들은 민족적인 색채가 강한 오지호 화백이 보통 그리지 않는 소재라고 설명한다. 습작한 형태로 보이는 인물 스케치, 기차 안 풍경 스케치 또한 즉석에서 순간을 그린 것 같은 가벼움이 특징인데, 한국적 인상주의를 완성한 오 화백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한자로 쓰인 ‘오지호(吳之湖)’ 세글자가 오 화백 서명 필체와 달라 위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예를 들어 이름에서 가운데 한자인 ‘갈지’자를 비교했을 때, 작품의 경우 마지막 획이 전체 글자에 비해 짧게 끊어진다. 반면 유족이 공개한 오지호의 실체 필체는 ‘갈지’자의 마지막 획이 길게 이어지면서 위쪽으로 꺾여있다.
오 화백의 손녀인 오수경 작가는 “할아버지는 교단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정통 아카데미를 추구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전시된 그림은 화풍이 삽화처럼 가볍다. 할아버지 그림이라고 하기에 너무 생소한 화풍이었다”며 “할아버지는 또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에 정황상 라디오를 그린다거나 서구적 풍경을 묘사했을 리가 없다. 오지호 화집을 뒤져봐도 이런 화풍의 그림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특히 몇몇 그림에 한자로 쓰여진 ‘오지호’ 필체가 강력한 증거라는 입장이다. 오수경 작가는 “집에 남아있는 할아버지의 연도별 필체와 대조했는데 일치하는 필체가 하나도 없었다”며 “몇몇 전시 작품에 1956년이라 표시된 흔적이 있어 할아버지가 남기신 1956년 강의노트와 비교했는데 ‘1956’의 필체도 다르다”고 말했다.
지역 화가들이나 미술계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이다. 오 화백의 문하생 출신인 오건탁 화백은 “이번 동곡미술관 전시 작품은 딱 봐도 선생님 그림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선생님은 스케치 선 하나를 그리더라도 정식으로 4B연필을 가지고 성심껏 세심하게 작업했다. 전시작처럼 값싼 스케치북 갱지에 펜으로 그릴 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성향 자체도 민족정신이 강해 한복의 아름다움에 대해 고집하곤 했는데, 외국풍 소품이나 의상들을 그렸다는 것이 이상하다. 외국 풍경을 그리더라도 특유의 한국적 채색이 특징인데, 이번 전시작은 그 느낌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지역의 한 미술 전문가는 “1956년이면, 한국전쟁이 끝나고 3년이 안 된 시점이다. 오지호 화백은 전쟁 시기 빨치산에 납치돼 군법재판에 회부되는 등 고생을 겪었다”며 “작품이 1956년 작이라 하는데, 1956년에 유원지 같은 느낌의 서양 풍경을 그렸다는 게 좀 어색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유족을 통해 항의를 받은 동곡미술관 측은 지난 24일 작품의 주인인 문웅 박사를 통해 작품의 감정을 요청했다는 입장이다. 문웅 박사는 “위작 의견이 있어 정식으로 감정을 맡겼다. 감정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 어렵다. 감정 결과에 따라 미술관과 추후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이번 전시를 위해 나 또한 작품의 원래 주인인 지인을 통해 작품을 산거라 당황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