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유가족 “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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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극단적 선택’ 유가족 “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
●광주서 ‘말할 수 있는 죽음’ 특강
매년 10만명 넘는 ‘사별자’ 발생
유가족 ‘상실감·분노·죄책감’ 커
자살예방강사로 직접 나서기도
“일상회복 위한 인식개선 중요"
  • 입력 : 2023. 09.03(일) 18:14
  •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
조선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심리전문가이자 유가족단체 대표인 김정호씨가 ‘자살, 말할 수 있는 죽음’을 주제로 지난 2일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김혜인 기자
“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 당신을 탓하거나 손가락질 하지 않습니다.”

LifeHope기독교자살예방센터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주최하는 3차 순회포럼이 지난 2일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렸다. 조선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심리전문가이자 유가족단체 ‘미.고.사’(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대표인 김정호씨가 ‘자살, 말할 수 있는 죽음’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강기정 광주시장과 강은미 국회의원, 조성돈 LifeHope기독교자살예방센터 대표의 인사말로 시작한 포럼은 김정호씨의 특강에 이어 사별자들의 대담과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지난 2021년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하루 평균 극단적 선택자는 37명으로, 이로인한 그해 사망자는 1만3352명으로 집계됐다. 보통 극단적 선택자의 가족, 친구, 지인 등을 가리켜 ‘사별자’(혹은 생존자)라 칭하는데 보통 사망자 1명에게서 5~10명의 사별자가 발생한다. 때문에 김씨는 매년 10만명의 사별자가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생각보다 주변에 사별자가 많지만 온갖 편견과 시선때문에 이를 숨기고 살아간다”며 “매년 10만명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지만 쉬쉬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통 사망 소식을 접한 사별자들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겪는다. ‘왜 그랬을까’, ‘꼭 그래야만 했을까’, ‘내가 그 전화를 받았더라면…’ 등 상실감, 분노, 죄책감과 무기력감 등이 겹치면서 사별자들 또한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이 8배가 높아진다.

이러한 비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김씨는 “대체로 사별자들은 ‘왜 죽었을까?’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게 된다. 당장 이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그 이유를 찾으려한다. 하지만 극단적 선택은 한 가지 이유만으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때문에 사별자가 전적으로 책임져야하거나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그 어떤 죽음보다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하는 사별자들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 있다.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일상을 회복하려해도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날 유가족 대담자로 나선 강명수씨는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해 새내기였던 42년 전, 어머니가 극단적 선택으로 돌아가셨다. 그 당시 충격이 컸지만 주변에 말을 꺼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며 “그렇게 오랫동안 어머니의 사인을 함구했다가 상담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비로소 최근에서야 스스로 사별자라고 고백했다. 오히려 그렇게 털어놓으니 마음이 더 나아졌다. 말하지 못하는 죽음에서 오는 답답함이 컸다”고 토로했다.

강연 강사이자 또 다른 유가족인 김정호씨는 “현재 이끌고 있는 ‘미.고.사’ 카페를 열게 된 것도 익명성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시선때문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일을 온라인에서라면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작했다. 유가족들이 한 발이라도 수면 위로 올라와 건강하게 애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누구보다 그 고통을 알기에 유가족들이 직접 자살예방과 후속대책을 지원하는데 앞장서자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실제 이날 유가족 대담자로 나온 이들 대부분이 강사, 상담사 등 자살예방을 위한 최전방 전문가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유가족이자 자살예방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심소영씨는 “12년 전 아버지의 극단적 선택으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손가락질이 두려워 장례식장 조문객들에게 차마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했다고 에둘러 말했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아버지 이야기는 금기시되고 마음놓고 울 수조차 없었다”며 “극단적 선택을 옆에서 경험한 것만으로도 유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되지만 사회의 낙인과 편견 등의 안 좋은 인식들이 더욱 유가족들을 사회적으로 고립되게 만든다. 이들이 상처를 딛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강사로 여러 직장과 학교를 돌며 강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가족들끼리 자조모임을 가지며 서로 감정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함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자조모임이 약물치료 효과와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만큼 유가족들의 적극적 활동이 자살예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광주시는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시 유족들을 지원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환경·경제 지원 서비스로는 △일시주거비 △특수청소비 △법률 및 사후 행정처리 △학자금 △정신건강 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심리·정서적으로는 △애도 전문상담 △심리부검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자세한 문의는 062-600-1919로 전화하면 된다.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