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박현일의 ‘색채 인문학’>신을 상징하는 하양, 이슬람 사람들에게 슬픔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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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전남일보]박현일의 ‘색채 인문학’>신을 상징하는 하양, 이슬람 사람들에게 슬픔의 색
(218) 색채와 시대
박현일 문화예술 기획자/철학박사·미학전공
  • 입력 : 2023. 10.10(화) 13:47
●색채와 종교

이슬람 세계에서 하얀색은 신에 대한 충성을 상징한다. 그 대표적인 예는 천사 가브릴(Jibril)이고, 성서에서는 가브리엘(Gabriel)로 불린다. 신을 상징하는 하양은 이슬람 세계의 사람들에게 슬픔의 색이다. 왜냐하면, 이슬람 신봉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하얀 목면 3장으로 몸을 감싼다. 다시 말해서, 하양은 수의(壽衣)의 색이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 미술가들은 하나님이 옷을 입은 것으로 표현했고, 부활 후 예수님도 하얀색 옷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특히 <원죄 없는 잉태(the Immaculate Conception)>의 그림 속에서는 동정녀 마리아도 역시 하얀색 옷을 입고 있으며, 처녀의 순결성을 나타내기 위해 성 수태고지의 그림들 속에는 흰 백합꽃이 그려져 있다.

하양은 기독교 미술에서 은이나 다이아몬드 색으로 표현되었다. 하얀색의 주된 종교적 정서의 표현은 구약성서 시편 51편 “나를 씻기소서, 그러면 내가 눈보다 희리다.”처럼 순결을 상징한다. 하얀색은 1854년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제2의 색이 되었다. 성녀 세실리아(St. Cecilia)는 때때로 빨간색과 하얀색의 장미꽃 화관을 쓴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서 하얀색 장미는 순결을 대표한다.

이교도의 색 상징은 기독교인들의 상징과 다르다. 드루이드(고대 갈리아 및 브리튼 제도에 살던 켈트족의 종교) 교인들은 하얀색을 태양과 빛의 상징으로 여겼다. 드루이드교 승려들은 하얀색 옷을 입고, 태양신에게 하얀색 황소를 제물로 바쳤다. 한때 극동지방에서 태양신을 상징했던 황금색이 중국 황제를 나타낸다. 황제는 금색 예복을 입었다.

기독교에서 검은색은 죽음에 대한 슬픔을 상징하지만, 하얀색은 부활을 상징한다. 죽은 자를 애도하는 사람은 검은 상복을 입지만, 죽은 자에게는 부활을 위해 하얀색 수의를 입힌다. 죄인을 데려가기 위해 지옥에서 온 죽음(저승사자)은 검은색 외투를 두르고 있지만, 신이 보낸 죽음은 하얀색 옷을 입고 있다.

상복의 색이 검정인가 하양인가는 종교적 관념에 따라 달라진다. 불교처럼 죽음을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로 이해하는 종교에서도 상복은 검은색이 아니라 하얀색이었다. 하양은 부활의 색이며, 부활한 그리스도는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고, 최후의 날에 부활한 자들도 하얀색 옷을 입고 신 앞에 간다.

하얀색 상복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환생을 의미한다. 환생에 대한 믿음이 있는 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하얀색 상복을 입었다. 예전 유럽에서는 하얀색 상복을 많이 입었으며, 장례식 때에는 여자들이 커다란 하얀색 천으로 머리와 상체를 가리는 지역도 있었다. 마리아도 슬픔에 잠긴 성모로 그려질 때는 하얀색 망토를 두르고 있다.

‘하얀 일요일’은 부활절 뒤의 첫 번째 일요일로,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날 아이들에게 첫영성체를 준다.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성체는 하얀색이다. 아이들은 세례를 받을 때 하얀색 옷을 입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하얀색 달걀은 시작을 의미하고, 시작을 상징하는 달걀은 기독교에서 부활을 상징한다. 부활절의 달걀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뜻한다. 연말연시에 팬케이크를 먹으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 나라도 있다. 팬케이크(pen cake)에는 달걀과 밀가루 그리고 우유의 하얀 재료들만으로 만든다.

갓 태어난 아기가 제일 먼저 먹는 음식인 젖도 하얀색이다. 힌두교의 창조 설화에 따르면, 세상은 우유의 바다에서 만들어졌다. 체스 게임을 할 때도 하얀색이 먼저 시작한다.

성경에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 희생된 제물로 가장 많이 바치는 동물은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색 양이다. 인류의 죄를 대신 씻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예수도 하얀색 양이다. 순결한 양은 늘 희지만, 죄를 짊어진 염소는 검은색이다. 성경에는 ‘눈처럼 희다’의 표현 대신 ‘우유처럼 희다’와 ‘순수한 리넨(linen)처럼 희다’ 그리고 ‘빛처럼 희다’의 표현이 있다.

하양은 구약성서 시편 23편 ‘푸른 목초지(green pastures)’에서 서구사회의 순수를 가리킨다. 또한 극동지방에서는 이 색을 슬픔과 애도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