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희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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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희망가
노병하 사회부장
  • 입력 : 2023. 10.15(일) 14:18
노병하 부장
날씨가 쌀쌀해졌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 술 한잔 생각에 삼삼오오 술집에 들린다.

음주가무의 나라니만큼 한잔 뒤에는 노래가 한곡조 떠오르기 마련이다.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최근 몇 년간 기억도 안나던 노래가 요즘 들어 뜬금없이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제목하야 ‘희망가’다. 찬란한 이름이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역사는 거의 민요급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가로질러온다. 젊은층에서는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겠지만 우리 연배에서는 안치환이나 장사익 버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원곡은 영국 춤곡을 바탕으로 미국인 제레미아 인갈스의 1805년 찬송 모음집에 수록된 ‘Love Divine’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동네마다 제목이 바뀌어 ‘Garden Hymn’ 또는 ‘The Lord into His Garden Comes’로 불리기도 했다.

그 시절이 그렇듯 전파는 일본으로 됐다. 1910년 일본 미스미 스즈코라는 여교사가 인근 남자 중학교 학생 12명이 보트 전복 사고로 죽자 본인의 자작시를 이 곡에 붙여서 ‘새하얀 후지산의 뿌리’라는 진혼가로 명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해당 노래는 그들의 추모식 때 그 학교 학생 4명이 불렀다고 한다.

한국은 바로 이 즈음에 들어온다. 같은 해 기독교 신자 임학천이 해당 노래에 반해 ‘이 풍진 세상을’이란 제목으로 번안했고 이리 저리 세상을 떠돌며 입으로 알려지다. 11년 뒤인 1921년 박채선, 이류색 두 민요 가수가 공식 발표를 했다. 가사는 이때부터 변형없이 굳어졌다.

제목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에 들어온 후 구전되다 보니 당시 여러 악사나 창가 가수, 민요 가수들이 불렀고 주로 ‘탕자자탄가’(蕩子自歎歌-탕자의 신세한탄)이라거나 아니면 비탄조의 제목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어느새 ‘희망가’로 안착이 됐다.

첫 소절도 묵직하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라는 귀절의 울림이 상당하다.

불교 대종교 서품 16에 보면 ‘풍진 세상’이란 ‘바람에 티끌이 날리 듯 어지러운 세상’을 말한다. 힘든 속세란 뜻이겠지.

직역하자면 ‘이렇게 힘들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네가 바라는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노래 첫 소절에 말이다.

가사마저도 마음을 묵직하게 하는데, 제목은 희망이다. 현실이 얼마나 비탄스러우면 자탄가에 희망을 명명할까 싶은데, 실제로 이 노래는 엄혹한 시절 아무것도 할수 없는 자신을 처지를 한탄할 때 민초들 사이에서 많이 불리워졌다. 일제시대, 군부독재시절 등

뜬금없는 희망가 타령이냐고? 앞서 말했 듯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안떠오르던 이 노래가 요즘에 입에 붙어 떨어지지가 않는다. 조만간 전남대 담벼락에 대자보 붙는 광경도 데쟈뷰처럼 발생하지 않을까? 내가 사는 세상이 갑자기 많이 변해버린 모양이다. 이 와중에 날도 추워진다. 한잔 해야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