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주기… 언론은 공적 애도를 다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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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1주기… 언론은 공적 애도를 다했는가?
고통 구경하는 사회
김인정 | 웨일북 | 1만7500원
  • 입력 : 2023. 10.26(목) 15:19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기자회견에서 유가족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1년 전 어느날 늦은 밤부터 시작된 뉴스 속보는 새벽까지 계속됐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믿을 수 없는 압사 참사. 모든 방송 뉴스는 특보체재로 전환됐으며 모든 신문 지면에도 일제히 관련 보도가 실렸다. 그날에 대한 보도가 반복되고 쏟아지던 시기였다. 마치 전시품처럼. 특히 초기에는 뉴스에 SNS까지 합세해 그날의 상황이 담긴 영상과 글이 가감없이 생중계 됐다. 물론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반성과 학습을 경험한 한국 언론은 그때의 과오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았다. 정부의 발표를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 써 ‘전원 구조’와 같이 중대한 오보를 내지 않았고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나 피해자를 ‘사망자’로 표기할 것을 지침하고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는 식의 정부의 입장을 따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피해자 가족을 상대로 한 강압적인 인터뷰 시도, 오열 등 과도한 감정 표현, 사생활 보도를 자제했다. 하지만 참사 초기,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이나 사진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관성적인 보도는 문제로 지적됐다. 이는 대중으로 하여금 손 쉽게 고통을 구경하게 만들고 이 고통은 나와 상관없는 제3자의 불행이라고 인식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로 하여금 사회적 애도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결국 재난은 사회적 갈등과 분열, 무력감이라는 제2의 참사로 이어졌다.

광주MBC 보도국에서 저널리스트의 삶을 시작했던 김인정 기자가 최근 책을 출간해 타자화된 채 전시된 재난을 관전하는 우리 사회를 향해 뼈 아픈 질문과 예리한 화두를 던진다. 책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타인의 고통이 단순히 연민과 대상화를 넘어 더 많은 구독과 좋아요, 알림설정을 위해 경쟁하는 ‘고자극 콘텐츠’가 된 지금, ‘공적 애도’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실제 2023년 8월, ‘칼부림’, ‘살인 예고’, ‘무차별 범죄’와 같은 키워드가 뉴스를 뒤덮었고, 충격적인 현장을 담은 영상과 이미지가 끝없이 유포되고 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의 이미지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목격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와 범죄를 실시간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출퇴근길 지하철도 두렵다고 호소하고, 작은 소동을 흉기 난동으로 오인하여 대피하다 부상을 입기도 했다.

뉴스와 소셜미디어가 합세해 지금 전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생중계하는 시대, 저자는 수전 손택 이후 20년 ‘타인의 고통’을 다시 시대적 화두로 가져온다. 너무 많은 죽음을 지켜보는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 죄책감과 무력감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스마트폰이 희생자가 심폐소생술을 받는 모습을 담을 때, CCTV 화면이 범죄자가 흉기를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드론 카메라가 지하차도에 시내버스가 잠겨 있는 모습을 비출 때. 이러한 장면들의 효용은 무엇일까? 고통을 보는 일은 그저 사회적으로 불안감과 공포심을 가중하며, 전 국민을 트라우마에 빠지게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고통을 구경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아닌, 목격한 뒤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는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 공동체가 슬퍼하기로 결정한 죽음을 들여다보면 그 사회가 욕망하는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생각하도록 주어의 영역을 확장해 준다. ‘무엇을 애도하는 사회인가’, ‘이 죽음은 애도할 만한가’라고 질문을 던지고 답변하는 과정은, 적어도 그 사회에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정도는 눈치챌 수 있게끔 한다. 기저에 깔려있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불만 위에 죽음과 상실이 하나의 예시로써 얹힌다. 단편적이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충분히 제시하는 그 사례로 인해, 어렴풋했던 문제는 사람들이 이입하고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가 된다.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게 한다. 우리의 ‘응시’는 어떻게 변화의 동력이 되는가. 이 책과 함께, 연민과 공감, 대상화라는 한계를 끌어안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차근차근 모색할 수 있다.

저자 김인정은 광주MBC 보도국에서 주로 사회부 기자로 일하며 10년 동안 사건 사고, 범죄, 재해 등을 취재했다. 이후 전 세계를 연결하는 저널리즘을 꿈꾸며 UC버클리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UC버클리 탐사보도센터에서 사회 양극화와 인종 차별 문제를 취재하고, 소셜미디어와 마약 문제, 시민 운동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The Nation, CNN 등 외신을 통해 한국의 참사와 학살을 보도하기도 했다. 지금은 미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다양한 언론사와 협력하여 취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