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엔 모욕’에도 꿋꿋이… “사죄·배상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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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99엔 모욕’에도 꿋꿋이… “사죄·배상 기다리겠다”
●日 강제동원 정신영 할머니 변론현장
원고 87명 중 생존자는 3명 불과
15살 일본서 온갖 고초·수난 겪고
미쓰비시 상대 손배소송 제기 후
일본서 후생연금 99엔 지급 ‘분노’
  • 입력 : 2023. 11.09(목) 17:52
  •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정신영 할머니가 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본인 신문 재판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일제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정신영 할머니가 미쓰비시중공업(미쓰비시)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당사자 신문에 출석해 “미쓰비시가 얼른 사죄하길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9일 광주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임태혁 부장판사)는 오후 3시께 303호 법정에서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 따른 최종 변론기일을 열었다.

정 할머니는 이날 당사자 신문에 참석하기 위해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법정 안으로 이동했다.

정 할머니는 지난 2020년 1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본에서 강제 노역으로 인한 피해보상을 받기위해 시민사회의 도움을 받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미쓰비시중공업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소장이 송달되지 않아 2년 가까이 미뤄졌다.

이날 신신문에 나선 정 할머니는 소송대리인의 질문에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서 알루미늄 판을 배열하는 등 노역에 동원됐던 일 △1944년 12월에 발생한 도난카이 지진으로 광주·전남 출신 동료 7명이 사망한 일 △미군 정찰기가 기숙사를 폭격해 불이 난 일 △노역기간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먹은 일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시민모임)에 따르면 정 할머니는 나주초등학교를 졸업 후 숙식을 제공받으며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는 선전을 보고 일본행을 결심했다. 1994년 당시 초등학교 선후배 25명과 함께 향한 나고야에서는 공부는 커녕 비행기 부품 페인트칠과 알루미늄판을 나란히 배열하고 뒤집는 노역에 동원됐다.

징용된 해 12월 7일 도난카이 대지진이 일어나 6~7명의 친구들이 사망했으며, 지진 당시 정 할머니는 간신히 소나무 밑으로 피신했다.

그 때 정 할머니는 땅이 갈라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또 공장에 미군 폭격이 너무 심해서 몇 번이나 방공호로 대피했으며, 한 번은 폭탄 때문에 지붕에 불이 붙어서 끈 적이 있을 정도로 전쟁과 지진 속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 10월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당시 일본에서 일을 하다왔다고 하면 위안부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만연해 징용 사실을 수 십년간 숨겨왔다.

정 할머니처럼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본에 강제동원됐다가 온갖 고초를 겪은 수 많은 피해자들은 가해기업 11곳을 상대로 지난 2019년과 2020년에 집단소송을 제기해 현재 광주지법에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총 87명의 원고(15건)들 중 대부분은 유족들로, 생존해있는 피해자는 정 할머니를 포함해 3명 뿐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을 비롯한 가해기업은 대부분 노역 사실을 부정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해 7월6일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일본연금기구’에서 정 할머니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 931원(99엔)을 입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30여분간의 변론을 마친 정 할머니는 법정을 나와 “할 말을 다하지 못했다”며 아쉬움 섞인 목소리를 냈다.

정 할머니는 “한 해 한 해 미쓰비시가 사죄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말을 하고 싶어도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려서 힘들다”며 “하지만 아직도 지진에 7명이나 죽었던 일이 생각이 난다. 저녁이면 강가에 가서 집에 가고싶다고 울었던 것도 여전히 생생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 할머니는 “분명 기업에서 사죄나 배상을 하려는 마음이 있는데도 일본 정부에서 그것을 막는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었다. 얼마나 한국 사람을 무시하면 그렇겠느냐”고 울분을 토하면서 “죽기전에 꼭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한편 광주지법 재판부는 이날로 정 할머니를 포함한 4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변론을 마치고, 오는 1월18일 오전 9시50분에 선고 공판을 열 예정이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정신영 할머니가 9일 신문 재판을 앞두고 김정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처장의 부축을 받으며 광주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