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민주·인권·평화 ‘통찰력’…대한민국 획기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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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전남일보]민주·인권·평화 ‘통찰력’…대한민국 획기적 전환
●김대중 전 대통령 업적
대한민국 획기적 전환점 이뤄
선진정책 통해 IMF 사태 극복
최첨단 과학기술산업 적극 육성
글로벌 선도국가·복지국가 도약
숱한 죽음의 위기 딛고 통합정치
  • 입력 : 2024. 01.04(목) 18:13
  • 노병하 기자 byeongha.no@jnilbo.com
6일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DJ)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다. 많은 이들이 김 전 대통령을 알고 있지만, 그가 이뤄놓은 위대한 업적을 상세히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지금은 우리의 일상이 된 ‘지방자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통한 4대 보험 적용’. ‘인터넷의 빠른 보급’ 등이 바로 김 전 대통령의 남다른 통찰력과 구상, 추진력에 힘입어 현실화됐다.

김 전 대통령 전문가들은 그를 평가하려면 마치 항공 사진을 찍듯 높은 곳에서 내려다 봐야만 그가 그렸던 큰 그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대한민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으며 ‘통합의 상징’이었던 그의 여정을 간추려 본다.

● ‘민주주의·인권·평화’이끌어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김대중 대통령 이전과 이후로 명확히 구분된다”고 규정했다.

김 상임이사는 “김 전 대통령 이전에는 지금 우리 국민이 누리고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 인권, 평화가 없었다”면서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치와 국정으로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우리 국민들의 일상이 되게 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과 같이한다. 1970~1980년대 독재정권 때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매진했다. 4시간 동안 연설하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김 전 대통평의 철학과 소신으로 대중들을 설득했다. 그는 폭력이나 강압 혹은 달콤한 말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그것을 이루는 길에 대해 명확한 설계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중들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과도 철저한 거리두기를 했다. 헛된 선심정책도 없었다. 모든 것은 철저한 고민과 계획 끝에 나온 것이었다.

아울러 김 전 대통령은 반공주의뿐 아니라 반일주의도 이용하지 않은 정치인이었다.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 뿐만 아니라 일본 등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꾀했다.

대한민국의 경제·사회발전도 앞장서 이끌었다.

김 상임이사는 “흔히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업화 주역,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주역으로 대비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틀린 것”이라고 말한다.

김 상임이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가 가난의 상황에서 먹거리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지만, 이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하는 불의한 독재개발의 산물이었다. 이 같은 개발독재 산업화 정책은 1997년 김영삼 정부 말기에 IMF 국가부도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 김 상임이사의 생각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대통령에 당선돼 선진적인 정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세계경제환경의 변화에 맞게 차관경제를 투자경제로 전환했고, 지식정보사회 도래를 예견하고 IT를 중심으로 한 최첨단 과학기술집약 산업화를 추진했다. IT 정보화를 주축으로 BT(생명공학), NT(나노공학), CT(문화산업), ET(환경공학), ST(항공우주산업) 등 ‘6T 과학기술 산업화’를 촉진시킨 것도 그였다.

특히 청년들이 창의적 도전정신을 갖고 6T 과학기술에 기반한 벤처기업을 창업할 수 있도록 한 대담한 지원정책인 ‘앤젤 캐피털’은 지금도 다른 형태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다가올 우주시대를 대비해 항공우주산업을 적극 육성했다. 1999년 현대우주항공, 삼성항공우주산업, 대우중공업 등 3개 대기업의 항공기 사업 부문을 구조조정하고 통합해 경남 사천에 공기업 성격의 한국항공우주산업 주식회사(KAI)를 설립했다. KAI는 KT-1 기본훈련기, T-50 고등훈련기, 수리온 기동헬기, 송골매 무인기 등을 개발하고, 미국 공군의 F-16 정비 사업을 수주하는 등 해외사업도 진행했다. 2022년에는 KF-21 초음속 제트기를 생산하기도 했다.

대전에 있는 한국우주항공연구원(1989년 한국우주연구소로 설립)을 적극 지원해 1998년 6월 2단계 과학로켓 발사 성공, 1999년 12월 다목적 실용위성(아리랑) 1호 발사 성공, 2002년 11월에 한국 최초 액체추진 과학로켓 발사 성공, 2022년 KSLV II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에 이어 현재는 ‘다누리호’가 달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투자경제 정책과 최첨단 과학기술산업 추진은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추격국가에서 글로벌 선도국가로 도약시켰다.

복지도 향상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고 4대 보험을 보편적으로 적용해 한국을 복지국가 반열에 오르게 했다. 야당 때부터 가족법 개정으로 여성 인권신장을 이끌었고, 재임 시절 남녀평등을 국가적 과제로 제시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여기에 분단체제하에서 북한과 최초로 양국 정상회담을 열었다. 그야말로 매 순간이 대한민국 역사의 새로운 갱신이었다.

● 숱한 죽을 고비 넘겨…모두 용서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격동 그 자체였다.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갖은 탄압은 받았고, 때론 목숨도 위협받았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노골적으로 그의 목숨을 노리고 정치적 생명을 끊으려고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타협하지 않고 ‘행동하는 양심’의 길을 걸어왔다.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평생의 후유증을 남긴 의문의 교통사고 △1973년 중앙정보부가 자행한 납치 살인 미수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조작된 ‘내란음모 사건’과 사형 선고 등 숱한 죽음의 고비를 맞았다. 이어 6년간의 옥살이와 3년간의 미국 망명, 1987년 6월 항쟁 전까지 투옥과 망명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 대부분 가택 연금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에 오른 뒤 자신을 해하려 했던 이들을 모두 용서하며 통합의 정치를 실천했다. 김 전 대통령은 5·16 군사쿠테타의 주역이었던 김종필과 연합정부를 구성하는 결단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나아가 자신의 생명을 빼앗으려 했던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을 용서했다.

북한 역시 보듬어 안았다. 그의 비전은 민족통합이었다. 남북 무력통일에 반대하고, 미·중·소와 한반도를 묶는 ‘4대국 안전보장론’을 주창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동의 이익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남북한 평화통일의 해법을 제시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 결과 지난 2000년 ‘한국과 동아시아 전반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국인이 받은 최초이자 현재까지 대한민국 유일의 노벨상 수상이다. 더욱이 노벨상 100년 역사상 최초로 위원회에서 반대 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됐다. 당시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김대중 대통령 수상의 유일한 결정요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수년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김 대통령의 투쟁노력을 추적해 왔다”고 언급했다.

2009년 8월18일,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애도했다.

미국, 독일,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전·현직 대통령과 수상 그리고 베네딕토 교황과 세계교회협의회 사무엘 코비아 총무와 종교지도자들, 각 나라의 유력 정치지도자들과 주요 대학총장 및 교수들을 포함한 300여명의 인사들이 애도와 위로의 전문을 보내왔다. 국장(國葬) 때는 외국의 정상들과 주요 인사들이 직접 참석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조문사절단을 보내 이희호 여사에게 예를 갖추어 애도의 뜻을 정중히 전했을 정도였다.

미국의 뉴스위크지는 김 전 대통령 서거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나라와 사회를 변화시킨 11인의 세계적 트랜스포머의 한 사람’으로 선정하고 세 가지 업적을 들어 그를 칭송했다. “민주주의를 이룩하여 정권교체를 했고,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화해 협력의 햇볕정책으로 남북 간에 평화를 이룩했다”는 것이다. 뉴스위크지는 또 김 전 대통령을 ‘인류에게 영원히 기억될 명사 36명의 한 사람’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김성재 상임이사는 “김 전 대통령이 세계적으로 존경과 추앙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 곧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일생을 헌신했고, 특히 자신을 죽이려했던 정적까지 모두 용서하고 화해한 큰 정치인이기 때문”이라면서 “떠난지 오래지만 여전히 그가 그립고 보고싶다”고 말했다.
노병하 기자 byeongha.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