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교육의 창·조재호>내가 교사라고 당당히 말하는 이유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교육의 창·조재호>내가 교사라고 당당히 말하는 이유
조재호 무등초 교사
  • 입력 : 2024. 01.28(일) 14:35
조재호 교사
어린이와 초등교사 삶을 드러내보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왜 교사로서 자격이 있는지 자랑하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얼마 전 일본 학자인 우치다 다쓰루의 ‘하류지향’이란 책을 읽고 용기를 냈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교사의 조건은 단 하나랍니다. 그것은 교사가 “스승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거예요. 우치다 선생은 자신을 선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고베여대 불어불문과 교수라는 직함 때문이 아니랍니다, 일본사회 여러 문제들-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괴물학부모’, ‘공부에서 도피하는 어린이와 청소년’, ‘적극적으로(?) 고립해 하류를 지향하는 학생들’-에 대해 예리하지만 쉽게 쓴 문체로 베스트 셀러작가로 존경받는 학자이기 때문도 아니랍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본질은 그를 늘 앞으로 이끌어 주는 ‘오인’된 스승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혈기왕성한 청년이던 우치다를 느긋한 미소로 기다려준 합기도 스승, 그리고 타자의 얼굴에 대한 벼락같은 관점을 심어준 레비나스같은 철학자가 자기의 스승이었기에 ‘선생’ 노릇을 계속 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선생의 유일한 조건은 “그에게 스승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하는 거랍니다. 그런데 나는 망설이지 않고 “네”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자랑할 만한 스승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 사정으로 중학교 2학년에 중퇴를 했습니다. 26살에 대학에 입학했고, 스승을 만났습니다. 내가 초등교사로서 어린이를 만나며 마음에 담는 그의 모습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첫째, 탈권위적 태도. 그는 사회학 전공 교수였습니다. 다른 학과 학생들이 학기 말에 교수님들에게 ‘인사’를 한다는 말을 우리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우리 과는 교수님과 밥을 먹으면 당연히 선생님이 계산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거든요. 내 선생님은 당대 존경받는 권위에 대해 의문을 표해야 함을 몸으로 보여줬습니다. 1996년 캠퍼스에 비판이론의 최고 권위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방문했습니다. 중앙언론 및 학계는 일제히 주목했습니다. 비판이론과 5·18의 조명과 같은 알듯 모를 듯한 말들이 넘쳐났습니다 수업도 ‘하버마스 강연’으로 대체되는 분위기 였습니다. 그런데 내 선생님은 평소 출석으로 점수를 주는 것은 천박하시다 해놓고 하버마스가 방문한 날만큼은 출석을 불렀습니다. 고약하신거 아니냐고 했더니 유명하다고 졸졸 뒤따라가는 짓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둘째, 성실한 직업인으로서의 태도. 선생님의 별명은 “사드주네”였습니다. 학계에서는 입에 올리기도 고약한 ‘도둑’ 주네와 사드백작의 이름을 합친 것입니다. 선생님은 주류 학계가 다루지 않던 사상가를 소개했습니다. 그가 소개한 사상가들은 대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는 일일이 번역작업을 했습니다. “윤샘 영어교실”이란 이름으로 밤마다 수업이 열렸습니다. 대학원생은 물론, 학부생들도 참여가 가능했지요. 나는 영어가 어려워 보여서 한 번 참석했는데 포기했습니다. 한 줄 번역하고, 그걸 다시 적합한 언어가 뭘까 토론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정이 넘어갑니다. 그때 나는 ‘학자’의 길을 할 팔자는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다만, 선생님의 그 성실한 태도가 내 삶의 어떤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셋째, 소수자에 대한 애정. 선생님은 주류사회학 뿐 아니라, 비주류사회학에서도 가장 비주류에 속하는 걸인, 성소수자, 광인, 성노동자, 장애인, 어린이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오셨습니다. 마르크스주의가 한참인 80년대에도 그는 조직된 노동자들보다 어두운 골목에서 자기를 숨기면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에 관심이 더 갔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의 수업에는 온갖 소수자들이 모였던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은 이론과 털어놓기 힘든 사정들을 이야기 하며 이를 지지 받는 나눔의 장, 해방의 공간 그 자체였습니다.

서이초 사건 때문에 많은 교사들은 좌절했습니다. 배움에서 도망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 그리고 교사를 과거 억압자의 표상으로 투사하는 학부모들, 늘봄정책과 같은 정책 동원 대상으로 교사를 대하는 정권들. 그럼에도 교사들을 버티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나는 소수자인 어린이들을 대할 때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수업연구에 나태해질 때 선생님의 영어교실을 생각해냅니다. 어린이들 중에서도 ‘어려운’ 어린이들을 더 관찰하고자 합니다. 그게 바로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매순간 차가운 겨울, 꽁꽁 언 듯한 강가에 아슬아슬 서 있는 듯 느껴지지만, “나는 교사다” 당당히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