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빛나는 영웅이 보여주는 통쾌한 추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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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빛나는 영웅이 보여주는 통쾌한 추적극
박영주 감독 ‘시민 덕희’
  • 입력 : 2024. 01.28(일) 15:33
박영주 감독 ‘시민 덕희’. ㈜쇼박스 제공
영화 ‘시민 덕희’는 젊은 여성감독의 상업영화 입봉작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감독은 이 영화의 소재인 보이스피싱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새롭게 접근했다. 관객으로서는 데뷔 작품을 보는 감회가 있다. 응당 서투름이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러는 한편 순수한 신선함이 매끄러운 노련함을 대체할 만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좀 달랐다. 여성 감독이라고? 그것도 모델급 미모를 갖춘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영화 곳곳에서는 입을 틀어막을 만큼 잔인하게 몽둥이와 칼자루, 폭력이 난무했다. 어둠의 세계를 여느 느와르 영화 못지않게 음침하게 그려냈고,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을 명분 없이 움직이지 않고 수사에 공권력을 앞세워 답답하게끔 표현해냈다. 객석은 어느덧 스크린에 동참하여 범죄에 진저리를 치고 경찰의 대응에 답답함을 곱하게 된다.

세탁소 화재로 인해 대출상품을 알아보던 평범한 시민 덕희(배우 라미란). 그녀에게 답답함은 피해 당사자로서의 억울함을 능가한다. 주소가 빠진 손부장(배우 공명)의 제보에 관심을 두지 않는 박 형사(배우 박병은). 그녀는 제보의 관건인 주소를 찾기 위해 칭다오로 날아간다. 세탁공장 동료 봉림(배우 염혜란), 숙자(배우 장윤주)가 동행을 하고 칭다오에 살고 있는 봉림의 여동생 애림(배우 안은진)이 모는 택시도 한몫을 한다. 이들 네 여인의 역할, 판단과 활약은 가히 어벤저스 급이다. 총책(배우 이무생)을 놓칠 수 없어 온몸을 내던지는 덕희에게는 이미 잃은 돈 찾기가 중요하지 않다. 나쁜 놈은 꼭 잡아야 한다는 집념, 잃은 돈보다 몇 배의 합의금을 제시하는 변호사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는 그녀의 신념은 퍽이나 정의롭다.

무모하리만큼 총책에게 달려들며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네 눈에는 피눈물 나는 법이야!”를 외치는 덕희는 이미 빛나는 영웅이었다. 우리 소시민에게는.

이 영화의 스토리는 실화다. 2016년 보이스피싱으로 3200만 원을 잃은 40대 주부 김성자 씨가 겪었던 일이었다. 김 씨의 3200만 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세탁 및 옷수선을 통해 피땀으로 얻은 소중함이자 미래의 꿈을 향해 현재의 고난을 딛고 일어설 희망이라 화폐가치로 매길 수 없는 귀중한 삶의 의미였다.

그녀에게 보이스피싱 피해를 주었던 가해자로부터의 제보를 경찰이 묵살하자 직접 총책 잡기에 이른 그녀의 활약은 다시 경찰에 의해 묻혔다 한다. 감독은 이 대목도 영화에 반영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제보자에게 현상금 1억 원을 내세웠던 경찰청에서 지금까지 지급한 바가 없었다는 자막이 엔딩이었다. 이에 대한 의아함+분노는 이제 관객의 몫이다. 실제로 보이스피싱 범죄 발생은 2000% 증가 중인데, 검거율은 몇 년째 20%에 불과하다 한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인 보이스피싱 범죄는 그리 만만치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진화를 해서, 누구에게든 위협이 되고 있다. 심지어 은행원도 당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죄질이 나쁘다 못해 분노를 유발하는 것은, 멀쩡한 청년들을 유인해서 범죄에 사용하고 선량한 시민 개개인의 가슴 아픈 돈을 노려서다.

요즘 가장 가슴 아픈 돈은 무엇일까. 깊은 한숨으로 부담하는 주담대(주택담보대출) 이자이지 않을까 싶다. 보이스피싱은 이런 것을 잘 포착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중인 ‘온라인 원스톱 대환대출’(주담대 갈아타기)을 활용해 사기를 친다 한다. 대환대출 관련 전화나 정부를 사칭하는 문자에 유의하라는 안전안내 문자 메시지가 뜨는 걸 보면 앞으로 어느 만큼 진화할지 걱정이 된다. 1월 24일 개봉.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