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공천권과 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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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공천권과 독선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 입력 : 2024. 03.03(일) 14:32
김선욱 부국장
정당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공천(公薦 )이다. 공천은 공직선거에서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을 말한다. “이 후보는 우리 정당 사람”이라고 인증을 해주는 것이다. 정당이 공천권을 갖는 것은 정당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유권자가 후보자의 도덕성과 능력, 공약을 검증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든다. 정당은 이를 대신해 검증된 후보를 낸다. 유권자는 정당과 후보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고 투표한다. 따라서 정당의 공천은 선거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핵심이다.

우리 정당 공천의 역사는 이승만 정부때인 1954년, 3대 총선(민의원 의원 선거)부터다. 처음으로 공천제가 등장했다. 당시 자유당은 지역구(총 203석)에서 114석을 가져갔다. 1963년 김종필 전 총리가 창당을 주도한 민주공화당은 ‘공천권은 당 총재에게 있다’는 내용의 당헌을 만들었다. 이후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시대’에는 공천 과정에 총재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정치가 계파, 보스라는 구도로 흘러간 이유였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당정분리’ 필요성이 제기돼 원칙적으로 당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정치의 후진성은 여전히 무소불위의 공천권에 있다.

‘공천 학살’은 우리 정치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2008년 4월, 18대 총선이다. 당시 한나라당의 주류 세력이었던 친이(친이명박)계는 홍사덕·김무성·서청원 등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크게 반발하며,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한 발언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공천을 받지 못한 친박계 의원들은 탈당해 ‘친박연대’를 만들기도 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당 주류는 단수공천, 비주류는 경선 혹은 탈락이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모양새다. 세대교체, 혁신공천은 공염불이다. 희생도 헌신도 감동도 없다. ‘비명횡사, 친명횡재’란 오명만 초라하게 남았다. “다름은 배제나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역할분담을 통한 시너지의 자산”이다. 2년 전, 전당대회 지역순회 경선 합동연설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한 발언이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면 독선이 된다. 무소불위의 공천권이 독선을 만나면 ‘자멸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