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에세이·김효비아>성냥불을 켜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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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작가에세이·김효비아>성냥불을 켜는 여자
김효비아 인문학 강사·광주문인협회 부회장
  • 입력 : 2024. 03.07(목) 10:45
김효비아 인문학 강사
도시에서의 경칩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겨울이 선사하는 내면의 침묵을 깨고 싶지 않은 어떤 미련처럼 꽃샘바람과 성미 급한 봄바람이 힘겨루기를 하는 중이다. 지난 주말, 산책을 할 겸 동네 뒷골목을 어슬렁어슬렁 배회를 했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최근에 신축 아파트가 점령군처럼 들이닥치면서 오래된 주택들이 빚쟁이 신세처럼 쫓겨나면서 뒤숭숭하고 을씨년스러운 광경을 목격해야만 한다. 어차피 필자도 도시개발과 노후주택환경사업자들의 후광을 입은 점령군으로써 황금알 같은 전리품에 영혼을 판 야만인인 셈이다.

무거워지는 발걸음으로 비좁은 비탈길을 오르내리면서 가끔 등이 기역자로 굽은 어르신들과 마주치기도 하지만 담벼락에는 지난 세월 서민의 희로애락이 온기를 품고 있어서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고는 한다. 그러나 허물어지는 지붕엔 잡초로 뒤덮이고 마당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가재도구를 바라보는 일은 외면하고 싶은 광경이다. 어느 날인가는 찌그러진 양철 대문 입구에 반려견이 묶여 있다가 필자를 발견하고는 사력을 대해 몸부림을 치면서 울음소리를 보냈다. 잠시 당황하다가 목줄을 풀어주면서 주변에 도움을 청하려고 했지만 ‘철거 예정, 접근 금지’라는 지자체의 경고문들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듯 으스스했다. 그러다 동네 경로당을 찾아갔더니, 원래 개 주인은 이 동네 사람인데 정신이 좀 이상해지고 노숙자 신세가 되어서, 가끔 돌아와서 키우다, 사라졌다 한다며 혀를 찼다. 개를 그대로 놓아두었다면 굶어죽을 뻔 했다며 연신 고맙다며 손을 부여잡고 흔들었다.

오늘은 TV채널을 돌리다가 ‘파리의 별빛 아래’라는 다소 낭만적인 제목에 끌려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파리 탄생 15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치고는 꽤나 어둡고 침침한 색조로 화면을 채우며 파리의 감추어진 이면을 폭로하는 줄거리였다. 화려한 에펠탑의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세느강에는 유유히 유람선이 떠다니고 있지만,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옆으로 지하 터널과 대피소들이 있었다. 파리의 밤하늘을 수놓는 별 만큼이나 허다한 슬픈 존재들이 생존의 벼랑에서 비상구도 없는 그 음습한 곳에서 마치 꼬물꼬물 벌레들처럼 엉키어서 살아가고 있었다. 운치 있는 센강의 낭만을 즐기는 파리지엔느들도 모르는 파리의 노숙자들 이야기이다.

역시 홈리스인 여주인공도 다리 밑에서 노숙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리카 난민인 흑인 꼬마가 나타나고 둘 사이에 소통할 언어 대신 희망의 불씨를 나누어 갖는다. 영화 후반부에서 파리 정부에서 추위를 이기도록 노숙자들에게 배급한 은박지비닐을 벗어버리고 아침 태양을 맞이하면서 파리 시내로 나아가는 마지막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문득, 파리의 가로등 아래 신음하는 캄캄한 지하 대피소로 모여드는 노숙자들에게 성냥불로 촛불을 켜주고 안락한 공간으로 꾸며주는 여주인공의 얼굴에서는 노숙자들에게 드리운 먹장구름 같은 어둠을 몰아내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영혼이 퍼져나갔다. 그녀가 켜주는 성냥불은 파리의 밤하늘을 수놓는 별빛보다 훨씬 더 따사로운 아침햇살이었던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내 마음에도 천천히 사랑의 불빛으로 번지는 아우라에 휩싸여서 양팔로 어깨를 감싸며 시를 끄적거렸다. 사회현상과 휴머니즘에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는 도시사회에 가려진 소외계층의 약자 입장에서 현실고발적인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바치는 오마주(hommage)라고나 할까.

“치렁치렁한 넝마를 질질 끌고 센강변 비밀 아지트에 사는 여자/그녀가 하는 일은 무료배급소에서 타온 빵을/길고양이들과 떠돌이 개들과 콜록거리는 노숙자들과 나누어 먹고/휘파람을 불어주는 것뿐이다/밤에는 붉은 심장처럼 붉은 눈자위가 개똥벌레처럼 깜빡거리는 여자/성냥불로 켠 촛불 하나로 모닥불을 피우고/고드름처럼 꽁꽁 언 몸들을 녹여주는 그 여자/장미꽃을 파는 거리의 여자처럼/천애고아 같은 존재들에게 성냥불을 켜줄 때/돛대도 삿대도 없는 조난자들에게 등대 같은 몸짓언어를/나는 거짓 없는 침묵으로 수화처럼 흉내를 내보고 싶다.” (김효비아 작 ‘성냥불을 켜는 여자’)

사회복지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노숙자들에게 반려견을 분양하는 서비스까지 펼치는 프랑스의 실용주의적인 복지정책에 고민이 깊어지고 근심이 오래 머물렀다. 심신이 온전하지 못한 대상에게 보살핌의 영역으로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로써, 성냥불을 켜면서 공허한 이상주의자가 아닌 실천적인 행동주의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