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출산전 아들·딸 확인… 옷·선물 미리 살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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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전남일보]“출산전 아들·딸 확인… 옷·선물 미리 살수 있어요”
●헌재, 태아 성별 미공개 위헌 판결… 병원·매장 현장 가보니
임신 주수 관계없이 성별 확인
“사전 인지 출산준비에 도움돼”
“성별고지 금지는 과거 잔재물”
  • 입력 : 2024. 03.24(일) 18:15
  • 나다운 박찬 윤준명 수습기자
지난 22일 광주 서구 치평동 한 산부인과에서 환자와 임산부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나다운 수습기자
“태어날 아기에게 미리 선물을 준비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이미 이름도 미리 지어놨어요.”

임신 30주 차인 부인과 함께 산부인과를 찾은 김모(43)씨는 아이의 성별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여자아이다. 아이를 위한 선물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태아 성별 미공개 위헌 결정에 대해 “아이의 성별을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서 출산 준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임신 32주 이전까지 태아 성별을 비공개하는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해당 조항이 무효가 되면서 임산부는 임신 주수와 관계없이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게 됐다.

기존 의료법 제20조 제2항은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감별하거나 고지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6대3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과거에는 “아빠를 닮았다”, “분홍색을 좋아하겠다” 등 간접적으로 아이의 성별을 알려주기도 했으나 이제는 의사가 직접 부모에게 태아 성별을 바로 알려줄 수 있게 됐다.

최기영 변호사는 “태아 성별 공개 금지는 성별을 이유로 한 임신중절을 막기 위해서였다”며 “과거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고 양성평등에 대한 의식 수준도 높아져 해당 법안이 실효를 갖지 못하고 부모의 정보 접근을 제한한다면서 무효화 됐다”고 말했다.

둘째 딸을 임신 중이라는 32주 차 임산부 나경민(32)씨는 헌재 결정에 대해 “아이 용품을 사두거나 이름을 미리 지어두기 좋을 것 같다”며 “지금 임신 중인 딸도 성별을 알게 되자마자 옷이랑 손수건을 구매했고 이름도 바로 지었다”고 말했다.

결혼 1년 만에 첫 아이가 생겼다는 최수정(32), 신승룡(35)씨 부부는 “오늘 임신 사실을 알게 됐는데 벌써 5주 차”라며 “부모는 아이 성별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성별을 빨리 알게 된 것은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남아선호사상이 심하지 않아 성별을 이유로 낙태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정보 접근 측면에서 위헌 판정은 합당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신씨는 “주변에도 딸 셋을 낳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가지겠다며 임신하는 경우가 있다. 첫 아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아이를 많이 낳은 상황에서 특정 성별을 원해 임신을 한 것이라면, 성별을 이유로 아이를 포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오후 광주 서구 광천동의 한 유아 매장에 유아 의류를 구매하기 위한 사람들이 몰려있다. 박찬 수습기자
유아용품 매장의 풍경도 변했다. 임신한 친구 선물을 사기 위해 유아 의류점을 방문했다는 김모(32)씨는 “친구가 임신한 지 32주가 안 됐는데 딸인 걸 알았다”며 “친구로서 미리 여자아이를 위한 아기자기하면서 예쁜 선물을 고를 수 있어 편하다”고 했다. 김씨는 “남녀는 살아가면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겪게 된다”며 “성별을 알고 난 후 자녀가 태어나기 전 부모로서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키워나갈지 더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아동 매장을 운영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고 밝힌 서모(56)씨는 “헌재 결정이 매출이나 매장 이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남아, 여아는 옷의 색상과 모양이 다른데 미리 성별을 알면 부모나 지인들이 선물을 준비하기 용이하다“고 말했다.

손녀의 선물을 구매하기 위해 아동 코너를 찾은 최모(65)씨는 “과거엔 남아선호사상이 강했지만 요즘엔 딸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성별 고지 금지법은 과거의 잔재이기 때문에 없어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입장문을 통해 “부모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규정으로 실효성이 없어 태아 성감별 금지법은 폐지돼야 한다”며 “남아선호사상의 감소로 인해 2010년대 중반부터는 출산 순위와 관계없이 자녀의 성별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거의 없어졌다”고 헌재 결정을 반겼다.

한편 KOSIS 국가통계포털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평균 합계출산율은 0.72명, 광주는 0.71명이다. 전남도는 0.97명으로 세종시와 함께 전국 출산율 1위다. 서울시 평균 출산율은 0.55명으로 전국 최하위를 달리고 있다.
나다운 박찬 윤준명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