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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어두운 홀 같은 그날의 기억
홀 김홍모 | 창비 | 1만7000원 김동수씨에게 여전히 세월호의 기억은 '홀', 깊고 어두운 구멍과도 같다. 시간이 지나도 구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은 떨쳐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7주기를 앞두었지만, 그에게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홀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씨의 이야기' 중-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아 세월호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가 출간됐다. 세월호에서 학생 20여명을 구해 '파란 바지 의인'이라 불리는 김동수씨의 증언을 기반으로 세월호 생존자의 트라우마와 참사 이후의 삶을 그렸다. 용산참사, 제주 강정마을 투쟁, 제주 4·3 등 한국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그려온 만화가 김홍모가 3년에 걸친 작업 끝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4·16재단 공모 '모두의 왼손'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에 수익금이 기부되는 『홀』 북펀딩은 목표 금액을 하루 만에 달성하며 화제를 모았으며, 시민 총 1000여명이 힘을 보탰다. 작품은 생존자 '민용'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제주 화물차 기사인 민용은 육지에서 일을 마치고 동료 기사들과 함께 인천항에서 제주행 세월호에 트럭을 싣는다. 안개가 짙게 껴 출항이 늦어지자 차를 빼서 목포로 향할까 고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출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세월호에 탑승한다. 다음 날인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아침식사를 마치고 쉬던 중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배가 기울어진다. 동료들과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으로 올라가려던 차, "아저씨, 여기 좀 도와주세요!" 하는 외침이 들린다. 세월호 선내 중앙의 홀은 배가 직각으로 기울어지면서 낭떠러지가 됐다. 민용은 소방호스를 이용해 홀에서 학생들을 끌어올렸고, 구조된 학생들이 그가 입고 있던 파란 바지를 기억하면서 이후 '파란 바지 의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스무명이 넘는 학생을 구하고 본인도 구조되었지만 그날 이후, 민용은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다. 시간이 지나도 구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은 떨쳐지지 않았다. 수차례 자해를 시도할 정도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그에게 여전히 세월호의 기억은 '홀', 깊고 어두운 구멍과도 같다.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게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홀'은 세월호 생존피해자의 사연을 다루지만, 상당 분량을 피해자 개인이 아닌 가족의 시점과 이야기에 할애한다. 작품의 1부가 민용의 시점에서 세월호참사 당시의 상황을 그린다면 2, 3부는 참사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둘째, 응급구조학과를 졸업한 첫째, 그리고 민용의 아내 시점으로 진행된다. 책은 재난의 피해가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과 공동체로까지 연장된다는 점, 그리고 그 피해의 복구를 위해서는 가족과 공동체, 더 나아가 사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미류는 "진상규명은 사건의 조각들을 이어붙여 함께 기억할 말들을 만드는 일이다. 구하지 않은 국가에 책임을 물을 때, 죄책감과 분노와 슬픔을 떠도는 마음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며 참사의 진상과 책임소재 규명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생존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는다.
브레이크가 필요한 불량한 법원에 날리는 사이다 일침
불량 판결문 최정규 | 블랙피쉬 | 1만6000원 오늘도 뉴스에서는 대다수의 국민이 주목했던 사건의 판결 기사가 쏟아진다. 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이 많지 않다. 피해자보단 가해자 편인 법 해석, 말도 안 되는 선처, 어쩐지 초범이기만 하면 집행유예가 내려지는 듯한 판결까지. 그뿐인가. 패소한 이유가 생략되었거나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버젓이 기록된 판결문, 판례를 기계처럼 복사 붙여넣기 하고 권고 기준보다 낮은 양형을 내린 판결문까지, 믿을 수 없지만 지금도 법정에서는 이렇게 분노할 수밖에 없는 판결이 꽤 자주 탄생하고 있다. 신간 '불량 판결문'은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최정규 변호사가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인 법정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사회 고발서다. 불의를 보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움을 거는 탓에 검경 블랙리스트에 오른 저자는 이번엔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마지막 특권, 재판부에 거침없이 반기를 든다. 입 꾹 닫은 법조계를 대신해 사법부의 부끄러운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고, 악한 법과 불량한 판결에 함께 맞서는 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변호사이자 활동가로서 수많은 '비상식적인' 일을 겪어왔다. 그중 가장 화가 났을 때는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가 불량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오히려 국민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라고 한다. 한 예로 염전 노예 사건 재판부는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만 쓸 수 있는 지적장애인 명의의 조작된 처벌불원서를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인정해버려 가해자에게 유리한 양형 참작 사유를 만들어줬다. 또 10년 치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8000만 원을 공탁했다고 집행유예 선처를 내렸던 판결은 이후 비슷한 다른 사건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아직 판결문이 공개되는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인 탓에 법조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판결문 모니터링 작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저자는 어려운 법원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국민이 직접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대표적인 대처방안으로 '재판 녹음·속기 신청'을 소개하고 있다. 이에 더해 불량 판결을 가장 현실적으로 A/S 받을 수 있는 3심제의 활용, 법관 임용에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제도 등 명품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러 현실적인 경로를 모색한다.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판례에 기대는 대신 상식에 맞는 법을 위해 함께 투쟁하자는 것. 우리가 목소리를 높일 때 비로소 법원의 문턱은 낮아질 수 있다.
비극적인 역사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위안부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 한국 편 방지원 | 생각비행 | 1만3000원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처음으로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증언했다. 바로 김학순이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조사도 함께 이루어졌다. 고노 담화나 무로야마 담화 등 의미 있는 일본 정부의 발표도 있었다. 또한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된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를 통해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 동안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위안부 제도를 국제사회에 알려 충격을 주었다. 이 보고서에서 라디카 쿠마라스와미는 '위안부'가 아니라 '전쟁 중 군대 성노예제'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끝난 세상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사회는 빠르게 변화했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대로다"라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의 말처럼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1991년 8월 14일 김학순의 증언이 있기 전까지 그 어느 나라 정부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김학순의 증언 이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시민운동이 활발해지고 국경을 넘어선 연대활동도 꾸준히 전개됐다. 이러한 노력은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 법정'에서 꽃을 피웠다. 이 법정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전후 재판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일본군'위안부' 제도의 책임자를 처벌하고, 정의를 실현하며 평화와 여성의 관점에서 21세기를 새롭게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와 만나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역사 수업의 중요한 점은 역사와 학생들의 삶이 만나는 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수업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주제이다. 전쟁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어떤 가해와 피해가 있었는지 전쟁의 모든 면을 살펴야 비로소 진실이 보인다. '위안부 문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한국 편)은 아이들에게 전쟁의 가장 비참한 피해자였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각종 사료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누구든 이 책을 읽는다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왜 해결되지 않는지, 누가 방해하는지, 감춰진 진실이 무엇인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의 힘이 왜 중요한지, 평화를 지키는 노력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하게 된다.
그대 영혼을 보려거든 예술을 만나라
그대 영혼을 보려거든 예술을 만나라 주민아 | 판미동 | 1만5000원 비평의 문법이 아닌 일상 속 영성의 관점에서 영화의 의미를 발견하는 감성 에세이 '그대 영혼을 보려거든 예술을 만나라'가 판미동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높은 의식 수준을 가졌다고 평가한 '그랑블루', '포레스트 검프', '간디', '금발이 너무해' 등 19편의 영화와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 타고르, 모차르트, 고흐 등의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우리 삶 속에서 마주하는 신성함에 대해서 풀어낸다. 장르적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들보다는 깨달음, 평화, 기쁨, 사랑 등 높은 의식 수준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인간의 삶을 성찰하고 의식을 고양시키는 예술의 본질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는 책이다.
유시민 스토리
유시민 스토리 이경식 | 일송북 | 1만6800원 '유시민 스토리'는 지난 60년의 한국 현대사를 유시민이라는 인물에 투영해서 정리했다. 단순한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쾌하고 삐딱하고 불우하고 열정이 넘치는 유시민이라는 '문제적 개인'이 가지는 사회적·역사적인 긍정·부정의 의미를 방대한 자료 수집과 분석으로 입체적으로 추적한다. 저자의 이 역량은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모두 호평을 받은 또 다른 평전인 '이건희 스토리'를 통해서 입증된 바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유시민과 관련된 그 어떤 책보다도 더 유시민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장자의 비밀정원
장자의 비밀정원 김호운 | 도화 | 1만5000원 '장자의 비밀정원'은 요·순시대, 춘추전국시대 등 이곳저곳을 비행하는 나비를 화자로 내세워 '사람답게 세상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장자의 철학을 재조명하고 있다. 화자인 나비가 네 곳의 비밀정원을 드나들며 욕심을 버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본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장자의 길'을 통해, 장자가 꿈꾸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그 비밀정원에는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행복과 불행, 작은 것과 큰 것, 길고 짧은 것, 귀함과 천함, 쓸모 있고 없고,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상대적 개념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인물들의 기발한 비유와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채혜원 | 마티 | 1만5500원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지난 5년간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에서 일하며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온 저자가 관찰한 베를린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한 사람의 경험이 베를린의 전부처럼 읽히지 않도록 자신의 감상은 살짝 걷어내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더한다. '베를린 국제주의 페미니스트 연합'과 '국제여성공간'에서 활동한 이야기를 서두로, 책은 27꼭지의 젠더 이슈의 현재를 전해준다. 이 책은 저자가 전 세계 곳곳에서 베를린으로 모여든 수많은 여성들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이자, 이주자로 독일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사과집 | 상상출판 | 1만3500원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당도한다. 작가가 10개월간의 긴 해외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 것처럼. 장례는 단 3일, 죽음을 실감하기엔 지나치게 짧고, 한 인간이 눈앞의 죽음을 버텨내기엔 긴 시간이다. 죽음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오로지 개인적인 일은 아니다. 다만 모두의 삶이 공평하지 않은 듯이 애도도 마찬가지다. 작가와 아버지의 관계는 애증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온전한 슬픔'이 가능할까. 우리에게 정말 애도의 자격이 있을까. 많은 이들이 겪고 있을 불안을 작가 사과집이 말한다.
우화적 SF가 던지는 인간성과 그 고유함에 대한 질문들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 민음사 | 1만7000원 지난 201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로 꼽힌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상 수상 이후 최초로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신작 '클라라와 태양'이다. 지난 3월 영국에서 가장 먼저 출간된 이 책은 현재 30개국에 판권이 팔려 미국·캐나다·호주·일본 등에서 연달아 출간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민음사를 통해 출간됐다. '클라라와 태양'은 인공지능 로봇과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미래의 미국. AI 제조기술과 유전공학이 발전하고, 사회는 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계급 시스템을 재구성한다. 아이들의 지능은 유전적으로 '향상'되고, 학교에 갈 필요 없이 집에서 원격 교육을 받는다. AF(Artificial Friend)라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이 이런 아이들의 친구로 생산돼 팔린다. 물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그 혜택을 누리는 건 아니다. 재력이나 계급이 그에 미치지 못하거나, 혹은 시스템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따로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과학기술의 혜택에서 제외돼 있다. 작품이 발표되고 난 뒤, 서구의 유수 언론 매체들은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타자(他者)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나를 보내지 마'와 '파묻힌 거인'과 한데 묶어 3부작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섯 살 때 영국으로 이주하여 평생을 살아온 작가는 '이방인' 혹은 '타자'가 된다는 점에 깊이 천착해 왔고, 현재까지 발표된 그의 작품에는 이처럼 양면적이고 위태로운 타자의 시선을 통해 당연한 듯 존재해온 세상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용한 질문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동화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생각에서 탄생했다.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장난감이 자신을 데려갈 어린 소녀를 기다리는 이야기를 떠올린 이시구로는 자신의 딸인 나오미 이시구로에게 이야기의 얼개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평상시 아버지 소설의 편집자 역할을 해 온 딸의 대답은 객관적이고 단호했다. 어린이에게 들려주었다가는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딸의 조언에 따라 이시구로는 이 이야기를 동화책이 아닌,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장편소설로 집필하기 시작해 팬데믹이 세상을 뒤덮기 시작한 시점에 마쳤다. 완성된 소설 '클라라와 태양'은 원 모티프의 형상을 그대로 간직한 우화적 SF다. 이야기는 간결하고, 늘 그랬듯이 잔잔한 지문과 대사 사이에 깊은 행간이 있으며, 그 '사이'를 읽어내다 보면 가슴 깊이 파고드는 슬픔과 여운이 찾아온다. 세상에서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두 연약한 존재가 우연히 만나는 그 순간부터 아픔은 예약돼 있고, 읽는 이들은 그 슬픈 예감이 운명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에 이끌려 마지막 페이지까지 차마 눈을 뗄 수 없다. 이는 우화의 힘이자, 그 강력한 힘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거장의 솜씨다. 인간이 아닌 존재인 클라라의 인간에 대한 한결 같은 헌신이 실현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과연 '인간됨'이란 무엇인지, 무엇이 인간 개개인을 고유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고찰하고 생각하게 된다. 전 세계가 질병과 차별과 갈등으로 고통 받는 시기, 이제 그 질문과 마주할 때가 됐다.
장벽의 운명으로 읽는 국제 정세
장벽의 시간 안석호 | 크레타 | 1만7000원 건설 동기가 무엇이든 결국 장벽의 존재 이유는 특정 지역의 사람과 물자 등 교류를 단절하는 데 있다. 누군가 잠재적 위협 세력을 규정하고 자신과 이들을 분리하려고 장벽을 만든다. 자연스럽지 않은 장애물, 장벽이 생길 때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기 힘들다. 장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 장벽을 세운 자는 이를 자신이 만든 질서와 경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장벽은 더 높게, 더 튼튼하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장벽을 넘으려는 의지도 쉽게 꺾이지는 않는다.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장벽을 넘으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기묘하고 과감한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고 애끊는 사연도 이어진다. 그러는 동안 장벽 주변엔 사람이 모이고 독특한 문화와 경제가 형성된다. 특수 산업과 도시가 발달하기도 한다. 장벽은 주민들의 생활과 경제를 바꾸고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만든다. 신간 '장벽의 역사'는 20세기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장벽에 관한 이야기다.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분리장벽, 미국의 멕시코 국경 장벽,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만들어진 철책과 장벽,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장벽'인 무역 장벽이다. 이들 장벽은 건설 주체는 서로 다르지만 만들어진 배경에는 미국과 소련, 영국, 독일, 중국 등 강대국의 이해와 역학 관계가 복잡하게 작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미국과 소련의 냉전 등 유럽과 아시아, 중동,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가장 굵직한 사건들과도 연관돼 있다. 위기와 갈등의 순간 탄생한 이들 장벽은 때론 갈등 확산을 막고 충돌을 막았지만 또 다른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20세기에 건설된 다섯 개의 장벽, 그 되풀이되는 장벽의 시간을 통해 누가 현명했고 누가 어리석었는지, 또 그들은 우리 삶의 궤적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살펴본다. 2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해온 저자는 국제 분쟁 전문기자로서 많은 분쟁지역을 방문하고 취재했다. 분쟁이 있는 곳에는 그가 있었고, 그곳에서 그는 분쟁지역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장벽들을 만났다. 그는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세력과 세력 간의 분쟁과 위기 상황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바로 장벽이라고 말한다. 한쪽은 장벽을 쌓고 다른 한쪽은 장벽을 넘어가거나 없애려 한다. 이 장벽은 누가 만들고 누가 넘어가는 걸까. 저자는 거대한 장벽들의 벽돌 하나, 철조망 한 가닥마다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수많은 갈등과 분쟁의 역사, 주민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한미동맹은 어떻게 불가침의 성역이 됐을까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김준형 | 창비 | 2만4000원 한·미의 첫 만남 이후 미국의 존재감은 우리 사회에서 점차 커져왔다. 특히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한미군사동맹이 형성되면서 견고한 협력체계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동맹으로서의 협력과 자국의 이익이 충돌하는 기로에 섰을 때 미국이 어느 쪽을 택해왔는지 속속 드러난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로 미국과 수교한 조선은 일본의 공격적인 개입을 미국이 견제해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밀약으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하고 간접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1945년 해방 직후 북위 38도선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분할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은 급박한 상황에서 내린 최선의 임기응변이라는 미국의 설명과 다르게 동아시아에서의 봉쇄정책의 일부로 신중히 고려된 정황이 이후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과정도 마찬가지다. 식민지배 당사자와의 때 이른 국교 회복과 오늘날까지 불씨를 남긴 청구권 협정은 샌프란시스코조약(1951)과 한미상호방위조약(1953)으로 형성된 한·미·일 삼각동맹의 완성을 위해 미국이 한국 정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대표적인 한·미관계 전문가로 활동해온 국립외교원 김준형 원장의 역작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새로 읽는 한미관계사'가 출간됐다. 한·미관계 150년 역사를 촘촘하게 살펴보는 동시에, 우리 대외정책의 핵심 상수이자 견고한 신화로 자리 잡은 한미군사동맹의 과거와 현재를 점검한다. 특히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최근 상황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사드 배치, 미·중 전략경쟁,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남·북·미 대화 등을 충실하게 논평하고 있어 토론거리가 풍성하다.
평화는 처음이라
평화는 처음이라 이용석 | 빨간소금 | 1만2000원 신간 '평화는 처음이라'는 평화활동가가 쓴 평화 교과서이다. 나도 모르게 평화보다 전쟁을 더 많이 공부한 사람, 스스로 평화주의자를 자처하지만 평화에 대한 공부는 처음인 사람에게 추천한다. 평화에 관한 이론보다 '평화의 렌즈로 세상을 다시 읽는 방법'을 여러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는 데 집중했다. 우리가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적은 평화의 사전적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평화로운 곳으로, 폭력과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기 때문이다.
웅크린 감정
웅크린 감정 멜리사 달 | 생각이음 | 1만7000원 너무 어색해'라는 말은 매일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의미하는 말일 수 있다. 또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대개는 움츠러들고 어디론가 숨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재밌고, 에세이 형식으로, 쉽게 읽힌다. 다수의 심리학 이론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경험과 함께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거의 모든 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민망함과 어색함에 관한 이야기지만, 결국 내 삶과 행동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10대 놀라운 뇌 불안한 뇌 아픈 뇌
10대 놀라운 뇌 불안한 뇌 아픈 뇌 김붕년 | 코리아닷컴 | 1만5800원 평생을 결정하는 10대의 뇌 발달기, 폭풍 같은 시간을 어떻게 지나야 할까. 부모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서울대병원 김붕년 교수는 이 책을 통해 10대의 뇌는 어떤 변화를 통해 발달하는지, 뇌의 건강한 발달을 위해 부모가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인지, 정신건강 문제의 시발이 되는 위기의 시간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등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짚어준다. 내 아이의 10대가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되도록 도와주고 싶은 부모들의 필독서다.
사소한 그늘
사소한 그늘 이혜경 | 민음사 | 1만4000원 이혜경의 네 번째 장편소설 '사소한 그늘'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1970년대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 자란 세 자매의 이야기다. 다정하고 정밀한 시선으로 삶을 슬픔을 껴안는 소설가 이혜경은 신간에서 차분한 서술과 유려한 이미지로 세 자매의 일상 속 희로애락을 그려 낸다. 경선, 영선, 지선 세 자매는 성격도 취향도 제각각이지만, 그 시절의 많은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결혼이라는 같은 선택지에 다다른다. 세 자매의 삶에 드리운 그늘은, 오랫동안 사소하게 여겨졌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미디어 읽고 쓰기
미디어 읽고 쓰기 이승화 | 시간여행 | 1만5000원 팬데믹 시기, 사람들은 집 안에서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미디어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디어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인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의 개념은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신간 '미디어 읽고 쓰기'는 리터러시의 의미를 '읽기'와 '쓰기'로 순화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해 심리적 거리감을 좁혔다. 그리고 디지털 소외, 조작방송, 악플, 가짜뉴스, 미디어 중독과 같은 최신 이슈를 포함해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A부터 Z까지, 체계적으로 담고 있다.
작가 한승원의 순간과 영원을 담은 한 권의 우주
산돌 키우기 한승원 | 문학동네 | 2만2000원 남은 생을 오롯이 문학에 헌신하기 위해, 한승원 작가는 고향인 장흥으로 되돌아가 '해산토굴'에 자신을 가두어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 시시포스와도 같은 구도자적 삶을 살며, 작가는 이번 책을 "(고려장 전설 속) 아들의 등에 업혀 가는 어머니가 자기를 버리고 귀가할 아들이 길을 잃을까봐 돌아갈 길 굽이굽이에 솔잎을 따서 뿌리듯 이 글을 쓴다"라고 밝힌다. 한국문학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는 한승원 작가는 실제로 두 작가(한강, 한규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러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후세이자 후배에게 남기는 이 글은 감히 '인류의 유산'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이채롭고, 새롭고, 깊은 통찰력이 스며 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 인물이 굴곡진 역사 속에서 야만에서 문명으로 옮겨가는 눈부신 순간이, 한 인간이 태어나고 떠나고 다시금 태어난 자리로 되돌아가는 경이로운 순환의 궤적이, 한 작가가 문학청년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대가로 발돋움하는 갈피갈피가 신간 '산돌 키우기' 속에 반짝이는 빛을 숨긴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자서전 '산돌 키우기'는 한승원 작가의 태몽으로 시작한다. '하늘복숭아같이 탐스러운 유자'를 주워 치마폭에 담는 어머니의 꿈이다. 어머니는 그에게 여느 유자보다 크고 탐스러웠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말해주고, 작가는 이를 여느 사람과는 다른 특출한 삶을 살게 될 것이란 예언처럼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묻어나는 곰살궂은 태몽을 작가는 허투루 흘려듣지 않고, 그것을 마치 신탁이자 의지로 삼아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다. 엄혹한 일제 식민지 시절을 유년기로 보낸 그는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삶의 긴박감, 생과 사의 무자비함, 폭력과 야만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놓는다. 해방이 되고도 한반도의 남쪽 끝까지, 아이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침투한 이념의 대립을 몸소 겪어내며 시대의 아픔을 몸과 종이에 새긴다. 그러나 긴장을 늦출 새 없는 팍팍한 시절에도 그를 견디게 하고, 위로하고, 멀게는 '작가 한승원'으로 키워내는 할아버지가 존재한다. 작가는 "할아버지는 내 속에 하늘을 심어주려 했다" 는 말로 그에 대한 회상을 시작한다. 작가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난 이야기꾼이자 글(천자문)을 알려주는 할아버지와의 운명적인 일화를 통해 평생에 걸쳐 자신을 지배하고 또 구제하는 이야기의 힘을 다시금 복기한다. '산돌 키우기'를 읽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자서전이자 또하나의 '소설'이며, 때로는 가장 인간적인 '신화'로 읽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일은 인간 한승원의 발자취를 오롯하게 따라 걷는 일이자 작가 한승원의 '창작 노트', 작품의 '후기', 창작의 비밀을 누설하는 '비서'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이제, 먼 우주로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도리어 우리를 먼 우주로 데려다놓는다. 비로소-이렇게, 우리는 '한승원'이라는 한 권의 책을, 한 권의 우주를 만난다.
퇴계의 마지막 귀향길 짚어간 14일간의 기록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이광호 | 푸른역사 | 1만7000원 퇴계 이황은 '동방의 주자'라고 불리던 조선시대 대 유학자다. 성호 이익은 퇴계를 공자, 맹자에 견주어 '이자(李子)'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퇴계는 일반인들에게 고루하고 현학적인 인물로 각인돼 있다. 신간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를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책은 도산서원의 참공부모임 회원들이 2019년 봄, 퇴계의 마지막 귀향길을 그 옛날 일정대로 도보로 답사한 기록이다. 서울에서 안동까지 243㎞(나머지 30여 ㎞는 배를 이용했다)를 열흘 남짓 걸었는데 이를 13인의 학자가 구간별로 나눠썼다. 일종의 여행기라 하겠는데 이것이 기가 막히다. 주변의 풍광, 역사는 물론이고 퇴계의 가르침과 인간적 면모를 단아한 문장에 담아내어 탁월한 '인문학 여행서'가 탄생했다. 퇴계의 유학세계를 보통사람이 이해하기는 힘들다. 이 책의 으뜸 미덕은 퇴계의 생애를 짚으며 퇴계 사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퇴계가 추구했던 것은 높은 벼슬과 그에 따른 명예나 이록이 아니었고, 내면으로 침잠해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찾고 회복하는 군자의 길이었다. 그것을 퇴계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했고"(127쪽) "경敬은 귀부인이 주인이나 임금을 만나러 가기 전에 몸단장하는 모습을 그린 글자로, 그 의미는 '공경'이 본질이다.… 본뜻보다는 하늘 공경의 의미로 널리 쓰이다가 주나라 중엽부터 다시 인간 공경의 의미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139쪽) 같은 대목이 그렇다. 퇴계에 관한 이야기이니 자연스레 옛 이야기도 풍성하게 실렸다. 여주 흔바위나루의 유래를 설명하는 128쪽이 지나는 곳에 얽힌 고사라면, 천 원권 지폐에 담긴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퇴계가 고향 계상에서 '주자서절요'를 집필하는 모습을 상상해 그린 것이란 숨은 일화도 전한다(104쪽). 그런가하면 조선왕실의 골칫거리였던 '종계변무' 문제가 고려 말 명나라로 망명한 윤이와 이초의 농간 탓이었다는 뜻밖의 사실(161쪽)도 접할 수 있다. 책에는 "필하무완인筆下無完人"이란 구절이 나온다(149쪽). '붓 끝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는 뜻인데 이 책에서 만나는 퇴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지 싶다. 고매하면서도 유현한 퇴계의 삶이 "뛰면서 보는 풍경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며 보는 풍경은 휙 돌아서는 풍경이다. 걸으며 보는 풍경은 서서히 다가와서 멈추는, 그래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그런 풍경이다" 같은 구절과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모처럼 만난, 읽는 재미에 뜻깊은 의미를 담은 책이다.
유년 시절이 그리운 이에게 건네는 소박한 위로
막내의 뜰 강맑실 | 사계절 | 1만6000원 '막내의 뜰'은 출판인 강맑실이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동화 형식으로 풀어낸 에세이다. 그는 "누가 머리 위에다 한 짓이 뭔지 알고 싶어 하는 작은 두더지로부터"라는 다소 길고 어려운 제목의 독일 그림책을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라는 제목으로 바꿔, 한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사랑받는 작품으로 자리 잡게 한 편집자 출신의 출판인이다. 편집자이자 출판사 대표로 살면서 다양한 독자층을 위한 책을 끊임없이 만들었지만, 본인의 책을 쓴 것은 처음이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게 신기해, 어릴 적 살았던 집의 평면도를 그리고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유년은 모두에게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 그리운 시절을 담백한 문장과 수채화로 표현해 '막내의 뜰'로 엮었다. 저자는 일곱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학교 선생님인 아버지와 어머니, 여섯 명의 언니오빠들 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낸 저자는 그 시절의 '막내'가 되어 아이의 눈으로 본 풍경을 편안한 어조로 써 내려갔다. 막내가 태어날 때부터 커가며 살았던 일곱 채의 집 구조와 추억을 되살리는 데는 언니오빠들의 도움도 컸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일곱 채 집의 평면도를 직접 그렸다. 이외에도 막내의 기억 속에 있는 마당, 골목, 함께 놀던 동물들, 자연의 풍경 등을 그림으로 그려, 글 읽는 맛을 더했다. 같은 시대에 유년 시절을 보내지 않은 독자들도 글과 그림을 함께 봄으로써 막내의 눈에 담겼던 평화롭고 따뜻한, 가끔은 아찔하기도 했던 그 시절의 풍경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 명의 언니오빠가 있는 대가족에서 태어나 귀염 받는 막내로 자랐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형제들 속에서 일찍이 다양한 관계를 배워야만 했다. 막내의 '뜰'은 가족으로부터 받았던 사랑뿐만 아니라, 그 시절 느꼈던 외로움, 낯선 기분, 슬픔이 모두 깃들어 있는 상징적인 장소이자 한 사람의 유년 시절을, 한 가족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막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유년 시절은 있다. 하지만 그 유년 시절이 모두 같을 리 없다. 어떤 유년은 찬란하기도, 어떤 유년은 쓸쓸하기도 했을 것이다. '막내의 뜰'을 읽으며 모든 독자가 자신만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고, 위로 받고, 손을 맞잡게 되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우리 함께 호오포노포노
우리 함께 호오포노포노 요시모토 바나나 | 판미동 | 1만3800원 '호오포노포노'는 '잘못을 고친다.'는 뜻의 하와이 말로, 불균형을 바로잡아 원래의 완벽한 균형을 되찾는, 하와이에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셀프 치유법이다. 긴 시간 동안 호오포노포노를 실천해 온 저자들이 일, 감정, 꿈, 관계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구체적인 장면들에서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법을 짚어 준다. 내면아이를 형상화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단편소설과 다채로운 대담이 담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삶의 답답한 면들을 정돈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