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제5공화국 청문회에서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전직 대통령, 재벌 회장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질의하는 모습이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이른바 청문회 스타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고 노무현 대통령의 초선의원 시절 소개글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패기와 열정 넘치는 의정활동을 통해 정치적 존재감을 강렬하게 각인시켰고 이후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 자리에 올라섰다. 제22대 국회가 오는 30일 임기에 들어간다. 18명의 광...
2024.05.20 18:49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93년 ‘열반’에 든 성철 스님은 한국불교 근현대를 대표하는 선승이다. 1968년 여름, 해인사 백련암 법당. 수백명의 남녀 대학생들이 땀이 범벅이 돼 절하고 있었다. 스님을 만나려면 누구나 불전(佛前)에 3천 배를 해야한다. 그런데 학생들의 옷이 땀에 달라붙어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이를 본 법정 스님은 숫자 채우기에 급급해 절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러자 다른 젊은 스님들이 발끈해 법정 스님 방의 물건을 치워버렸다. 논란이 커지자 법정은 서울로 수행처를 옮겼다. 1982년, ...
2024.05.19 18:17지난 2001년 개봉된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는 서로 도우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거라는 한 소년의 믿음이 사회를 바꾼다는 내용이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찾아보자는 선생님의 숙제를 받은 11살 트레버. 다른 학생들은 숙제에 무관심했지만 트레버는 한 사람이 3명에게 도움을 베풀고, 도움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3명에게 무언가를 나누면 세상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누구도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를 향한 도움의 손길은 미국 전역으로 번져 나갔고, 기적과 같은 ...
2024.05.16 17:09다시 또 오월이다. 어쩌자고 오월이 다시 왔다. 지난해도 똑같이 말했다. ‘다시 또 오월이다’라고. 우리는 지난 1년간 무엇을 했는가.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이 수록 됐는가? 오월의 전국화는 얼마나 진행됐는가. 때만 되면 오월을 입에 걸던 정치인들은 올해 5·18 앞에서 떳떳한가? 사적지는 보존됐는가. 억울함은 풀렸는가. 묘지의 풀 꽃은 봄이라고 고개를 내미는데, 왜 광주의 오월은 오월이어서 봄을 맞음에도 이리 처연하게 하는가. 44년이다. 한 아이가 태어나서 중년이 될 기간이다. 총알이 빗발치던 때 ...
2024.05.15 22:08순창에서 사는 지인에게 호박 모종을 얻어오면서 녹두도 조금 가져왔다. 녹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니 5월말이나 6월초 아무 데나 뿌려놓으라며 한 움큼 봉지에 담아줬다. 작고 단단한 진녹색 알을 보니, 백 가지 독을 다 풀어준다는 녹두의 효능과 함께, 어릴 적 의미도 모른 채 불렀던 민요가 생각났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민요는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민중가요였으며, 죽은 자를 애도하는 구슬픈 만가(輓歌)였다. 만가는 상여...
2024.05.13 17:08‘보이콧(Boycott)’은 정치·경제·사회·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행위에 맞서 집단이나 조직적으로 벌이는 각종 거부운동을 말한다. 얼핏 보면 영어 합성어쯤으로 짐작될 수 있지만, 보이콧의 어원은 실존 인물이었던 찰스 커닝엄 보이콧(1832~1897)으로부터 나왔다.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찰스 보이콧은 군 장교로 임관하면서 아일랜드로 가게 된다. 그는 제대 후에도 아일랜드 지역의 한 경작지 지배인으로 토지 관리에 대한 경험을 쌓다가 메이요(Mayo) 주에서 토지 대리인으로 활동하며 생활을 꾸려나가게 된다. ...
2024.05.12 18:26“바다 속 해조류는 바다의 숲이다. 지구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탄소 흡수와 산소를 생산하는 육지의 숲보다 더 중요하다.” 지난 2017년 BBC가 방영한 ‘블루 플래닛 2’는 바다 속, 화려한 영상미가 압도적인 다큐멘터리다. 생동감 있는 산호정원과 신비하고 화려한 해조류 군락, 온갖 해양생물이 모여 사는 바다 숲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심해에서 발견된 미지의 생명체, 밀물과 썰물이 이어지는 해안가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해조류의 끈질긴 생명력도 경이로웠다. “해조류를 비롯한 모든 해양 생명체를 보호하는 것은 곧 지구를 지키는 ...
2024.05.09 16:57옛날 중국의 용흥사라는 절에 진존숙이라는 명승이 있었다. 어느 날 용흥사에 낯선 스님이 찾아왔다. 진존숙은 그와 선문답을 하게 되었는데, 첫마디를 건네자마자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진존숙은 속으로 ‘도가 깊은 스님이신가’하고 다시 말을 건네니, 또다시 버럭 역정을 냈다. 진존숙이 그에게 말했다. “겉보기에는 용의 머리를 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뱀의 꼬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얼굴을 붉히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용두사미(龍頭蛇尾)라며 그 스님을 비웃었다. 송나라 불교 서적 벽암록에...
2024.05.08 18:06인류가 우주로 나간지 63년이 지났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의 산물인 ‘우주경쟁’은 이젠 희귀광물, 우주여행 등 우주산업 형태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매년 2000개 이상의 우주 발사체들이 우주로 보내지고, 현재 지구 주변을 돌고 있는 위성은 1만개가 넘는다. 그 중 여전히 활동 중인 위성은 약 8800개라고 한다. 문제는 기능을 잃고 떠도는 위성들이다. 일명 ‘우주쓰레기’인 이들 위성조각들이 이미 100조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물체로 인공위성이 꼽히게 되면서 천문연구에도 방해가 된다...
2024.05.07 18:27박 열매를 반으로 갈라 속을 비우고 남은 껍질을 말려 만든 그릇인 바가지는 ‘바가지를 긁다’, ‘바가지 씌우다’ 등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표현으로 사용된다. 과거 괴질이 유행할 때 병 귀신을 쫓으려 바가지를 득득 긁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던 풍속이 있었는데, 가족의 잔소리가 귀신도 도망가는 바가지 소리만큼이나 듣기 껄끄럽다는 데서 ‘바가지를 긁다’란 표현이 나왔다. 쌀이 없는 쌀뒤주 바닥을 바가지로 벅벅 긁으며 남편의 경제적 무능함, 빈곤함을 간접적으로 항의했다는 설도 있다. ‘바가지를 쓰다’ 또는 ‘바가지를 씌우다’는 조...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2024.05.06 17:19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 주 펀스턴 기지에서 많은 환자가 발생했다. 초기에는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던 이 질병은 사람들이 방심한 사이 부대 전체로 퍼졌고, 6개월도 안돼 전 세계로 확산됐다. 20세기 인류의 가장 큰 비극으로 손꼽히는 스페인 독감이었다. 시신을 담을 관이 부족하고, 무덤을 팔 시간이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잔인했던 이 질병에 감염된 사람만 5억여 명, 사망자도 최고 1억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역사와 지도를 바꾼 역사상 최악의 의학적 홀로코스트였다. 하지만 정작 비극의...
2024.05.02 17:14‘친구’, ‘아침이슬’, ‘상록수’...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로 민중을 위로했던 천재 뮤지션 김민기의 자작곡들이다. 1970년대 유신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그의 노래는 해방가였고 애국가였다.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민주화 투사가 됐다. 용기를 내 독재에 항거했고 모두 하나가 됐다. 민주화와 노동 운동은 김민기의 숙명이 됐다. 요즘 SBS에서 방영중인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가 인기다. 김민기와 학전에 관한 최초의 다큐멘터리라는 입소문을 타고 2주 연속 동시간대 지상파 1위 자리를 수성했다고 한다. 김민기는 1991년 서울...
2024.05.01 18:17프랑스 루이 14세는 1712년 스페인의 식민지인 칠레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아메데 프랑수아 프레지어 중령을 스파이로 파견한다. 프레지어는 칠레의 토종 딸기를 연구하는 식물학자로 위장했다. 프레지어는 식물학자처럼 풀과 나무를 조사했다. 조사내용은 수첩에 기록됐는데 물론 칠레 지역의 정치, 군사적 정보에 대한 암호들이었다.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으나 덕분에 이것 저것 배우게 됐고, 몇몇 인상깊은 것들은 메모하고 종자를 채집했다. 루이 14세는 프레지어가 보낸 정보를 보고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1714년 프레지어는 임무를...
2024.04.30 14:33광주의 제조기업들이 미래를 위한 투자를 포기하고 있다. 고금리·고물가에 중동 정세 불안, 내수 악화 등 다중복합 경제위기 상황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투자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광주상공회의소가 광주 제조업체 12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투자계획 조사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지역 제조업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3월 기준으로 기업의 투자 활동이 올해 상반기 계획 대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조사했는데, 응답 업체들의 95%(114개사)가 “상반기 계획보다 투자를 축소했거나 보수적 입장을 ...
2024.04.29 14:51오는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 정상회의에서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의 지정학적 안정이 핵심 의제로 다뤄진다는 소식이다. 글로벌 사우스는 ‘서방 선진국’이란 말과는 대비되는 용어로, 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있는 국가들을 지칭한다. 전통적으로 과거 식민지 혹은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로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오세아니아 등지 120여 개국이 포함된다. 북반구에 몰려 있는 선진국을 일컫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
2024.04.28 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