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만에 돌아본 작업에 대한 열정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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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45년만에 돌아본 작업에 대한 열정과 꿈
한희원 작가 안식년 귀국전… 11일부터 김냇과||아크릴, 콩테로 조지아 인물, 풍경담은 작품 360점 전시||시 45편 담은 시화집도 생애 처음으로 출판
  • 입력 : 2020. 06.09(화) 16:34
  • 박상지 기자

한희원 작가가 조지아공화국 트빌리시에서 보낸 10개월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한희원 작가가 안식년을 보낼 장소로 조지아공화국을 주저없이 선택한 것은 고도 트빌리시의 고즈넉한 풍경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한 작가에게 트빌리시는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4년 전 처음 방문했을때부터 낯섦보단 고향같은 친근함이 들었다. 1500년의 신화가 간직된 고도의 낡은 건물들은 따스했고, 수많은 역사적 부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 중 하나인 조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고 있다. 두 대륙의 경계에 걸쳐있는 까닭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그리스, 로마, 몽골, 오스만터키, 페르시아 등 강대국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끊이질 않았고, 독일 나치의 홀러코스트와 쌍벽을 이루는 대학살로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여행객이 아닌 작가로서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간 트빌리시에서 보낸 시간은 어땠을까.

"지독하게 외로웠어요. 영어 한마디 하지 못해 사람을 사귈수도 없었죠. 덕분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처절한 고독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죠."

화가로서 치열하지 못했던 자기반성에서 계획된 여정이었다. 오롯이 그림에만 몰두하기 위해 트빌리시로 향했으니,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물감이 튀지 않도록 천과 비닐을 바른 숙소에서 잠자고 밥을 먹는 시간 외엔 작업에 몰두했다. 하루에 2점의 작품을 완성하고도, 깊은 외로움이 가시지 않을때면 시를 썼다. 10개월간 트빌리시에서 작업한 작품만 360점. 시는 70여편에 이른다.

미술이 발달하지 않은 국가라는 녹록지않은 환경은 한 작가에게 새로운 재료에 대한 탐색과 기법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생활물가는 저렴했지만, 미술재료는 비싼데다가 구하기도 어려웠어요. 평생 유화만 그려왔었는데 재료도 없고, 유화물감 특성상 건조도 어려워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죠. 조형적 실험도 다양하게 했습니다. 붓으로만 그리지 않고 빗으로 긁어보기도, 물감을 뿌려보기도 했어요."

바이올린, 기타, 색소폰, 아코디언 등 다양한 악기로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을 그의 화폭으로 데려왔다. 꽃다발을 쥔 채 담배에 불을 붙이는 남성, 텅 빈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노인, 밤하늘 아래에서 별을 그리는 화가 등 트빌리시 주민 한명한명이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이 됐다.

철저하게 작품에만 매달렸던 지난 10개월은 한 작가에게 잊지못할 경험과 도전의 시간이었다. 인간의 내면, 사회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현대적 조형언어로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원없이 고민할 수 있었다.

"작업에 터닝포인트가 됐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광주의 예술애호가들 덕분입니다. 작가의 예술적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주는 것이 한국에선 흔한일이 아니에요. 제가 받은 이 기회는 국내 미술계에 고무적인 일입니다. 트빌리시에서의 경험을 되살려 좋은 방향으로 작업에 변화를 줄 생각입니다."

한 작가의 지난 10개월간의 시간이 담긴 작업은 11일부터 7월7일까지 광주 동구 복합문화공간 김냇과에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번 귀국전에서는 트빌리시에서 쓴 시 86편과 회화 70여점이 수록된 시화집'한희원의 이방인의 소묘'도 함께 선보인다.

시화집은 한 작가가 창작을 펼친지 35년만에 처음으로 출간한 시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한 작가는 순천에서 미술교사로 교편생활을 하던 1985년 '순천문학' 창작동인으로 참여해 활동한 바 있다.

전시는 개막식 없이 프리오픈으로 진행되지만, 의미있는 행사들이 함께 마련될 예정이다. 음유시인 한보리씨가 한 작가의 시에 음을 단 곡들이 7월3일 오후7시 김냇과에서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행사에는 한보리씨를 비롯해 진진, 오영묵, 나무 등이 출연할 계획이다.

한희원 작 '트빌리시 사람'

한희원 작 '아코디언 켜는 트빌리시 노인'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