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기고, 끊기고, 무너지고 …물에 잠긴 광주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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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잠기고, 끊기고, 무너지고 …물에 잠긴 광주전남
  • 입력 : 2020. 08.09(일) 17:00
  • 뉴시스

잠기고, 끊기고, 무너지고…. '역대급' 물폭탄이 광주와 전남을 덮쳤다. 위험천만한 순간도 부지기수였고, 사설납골당이 빗물에 잠겨 안장 유해 피해도 있었다.

광주 북구 모 추모관 지하 1층 유해 안장·보관시설이 물이 잠겨 유가족이 9일 오전 유골함을 직접 옮기고 있다.

○…기록적인 폭우가 이틀째 이어졌던 지난 8일 오후 7시50분께 북구의 한 납골당 지하1층 시설이 침수되기 시작했다.

물이 들어찬 지하 1층은 유해를 안장·보관하는 추모관이며, 규모는 1800여구의 유골함까지 수용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안장된 유해 일부도 침수 피해를 입었다.

비가 그친 9일 침수 소식을 들은 유가족들은 추모관으로 달려왔다. 일부 유가족들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김모(32·여)씨는 "유골함이 잘 보관돼 있는지 상황이 궁금하다. 살아생전에도 돌아가셔도 잘 모시지 못한 마음에 고인께 죄송스럽기만 하다. 괜히 지하 1층에 모셨나 후회가 된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60대 여성 유가족은 "폭우는 어쩔 수 없지만, 추모관 관계자들이 안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거나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쉬쉬하고 있다. 추모관 내 남편(유골함)이 어떻게 됐는지만 알고 싶다"며 가슴을 쳤다.

기록적인 폭우가 이틀째 이어진 8일 오후 전남 나주시 안창동 한 노인요양원 일대에서 소방 구조대원들이 보트를 타고 고립됐던 입소환자·종사자들을 구조하고 있다. (독자 제공)

○…나주의 한 요양원에서는 '목숨을 건 구조 작전'이 펼쳐졌다. 나주시 안창동에 있는 한 노인요양병원이다.

지난 8일 오후 1시무렵 이 요양원에 비상이 걸렸다. 전날부터 예사롭지 않게 내리던 장대비가 시간당 64㎜의 물폭탄으로 바뀌면서부터다.

70대 이상 고령의 입소 환자 20명과 요양보호사 등 종사자 10명은 발만 동동 굴렀다. 순식간에 빗물이 불어나면서 마을 일대가 온통 물바다로 변했다. 종사자들은 부지런히 휠체어와 이동 침대 등을 이용해 환자 20명을 2층으로 옮긴 뒤 곧바로 소방당국에 다급히 구조를 요청했다.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은 구급차 등 장비 4대와 구조대원 20명을 현장으로 급파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종사자와 환자들이 1차로 구조됐다. 요양원서 구급차까지는 평소라면 도보로 5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지만 보트를 통한 이동은 쉽지 않았다.

방해물이 없는 곳에서는 동력을 활용했지만 부유물이 많은 곳에선 보트 각 모서리에 자리잡은 구조대원들이 일일이 노를 저어야 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수위는 점점 높아져 병원 1층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구조대원들은 요트를 타고 1~2층을 잇는 계단까지 접근해 구조 작업을 벌였다.

건강 상태가 양호한 구조자들은 3~4명씩 앉은 채 보트에 태워 빠르게 뭍으로 옮겼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10명의 환자들은 들 것에 실어 1~2명씩 옮겨야 했고, 공간이 비좁아지는 만큼 구조대원도 4명에서 2명으로 줄여 보트에 탔다.

구조가 막바지에 이르며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실어 나르는 사이 수위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4m 높이의 통로 시설물인 '암거'를 통과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구조대원들은 암거 진입 직후 천장을 손으로 짚어가며 보트의 부력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야 했다. 동력장치 시동을 끄고 노를 저어가야 했으며, 보트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환자 1명을 요양원에서 구해내 구급차로 이송하기까지 20여 분이 넘게 걸렸다. 결국 신고접수 5시간 넘는 필사적인 구조 끝에 입소 환자 20명을 비롯한 30명이 모두 안전하게 구조됐다.

기록적인 폭우가 이틀째 이어진 8일 오후 전남 구례군 문척면 한 사찰 입구 앞에 인근 침수 축사서 탈출한 소떼가 머무르고 있다. 주인은 사찰 관계자의 연락을 받고 소떼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독자제공)

○…축대 붕괴에 놀라 축사를 탈출했던 소떼가 사찰을 찾았다가 1시간여 만에 주인 품에 안기기도 했다.

지난 8일 오후 1시께 조계종 화엄사 말사인 구례 사성암에 소 20여 마리가 모여들었다. 새끼와 암·숫소떼는 사성암 인근 축사를 탈출해 해발 531m 높이에 위치한 사성암까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1㎞ 가량을 올라왔다. 이 소들은 구례지역에 내린 집중 호우로 축대가 무너지자 놀라 축사를 뛰쳐나온 뒤 도로를 타고 절에 다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로이 풀을 뜯던 소들은 오후 2시께 사찰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소 주인이 나타나면서 주인 손에 이끌려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다.

○…광주와 곡성에 사업장을 둔 금호타이어가 폭우로 조업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집중호우가 이어졌던 지난 8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과 곡성 공장은 조업을 일시 중단했다. 누전 등에 따른 피해 예방 차원에서다. 황룡강과 인접한 광주공장에서는 강물 수위가 높아지면서 공장 내부로 흙탕물이 밀려들었으나 누전·설비파손 등 추가 피해는 없었다.

○…철로와 하늘길도 끊겼다.

지난 8일 오전 6시17분께 월곡천교 침수로 철길이 끊기면서 광주역을 오가던 열차운행이 중단됐다. 다행이 9일 배수작업이 끊나 열차는 정상 운행됐다. 곡성∼압록 간 교량수위 상승 등으로 운행 중단 또는 노선 축소됐던 전라선 모든 열차(KTX·새마을·무궁화호)는 이날 첫 열차부터 정상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하늘길도 끊겼다. 광주공항 활주로 양쪽 끝 부분 일부가 침수되면서 모든 항공편(제주 9편·김포 2편·양양 1편)이 결항됐다. 다행히 신속한 복구작업을 통해 9일 오후부터 정상 운항됐다.

뉴시스 newsis@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