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1-1>신문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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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1-1>신문을 다시 본다
▶‘전남일보 레거시+비전’ 기자가 묻고 기자가 답하다||1988년 입사 박상수 주필- “창간 전남일보 상처받은 시·도민 위로 광주·전남 역사 기록자 자부심 가져야”||2018년 입사 최황지 기자- “독자들에게 매일 색다른 시선 제시할 것 새 콘텐츠 실험이 일상화 되도록 뛰겠다”
  • 입력 : 2020. 08.31(월) 18:40
  • 박성원 기자 swpark@jnilbo.com
32년차 기자 박상수 주필과 2년차 최황지 기자가 전남일보 스튜디오에서 좌담을 나누고 있다. 김양배 기자
전남일보가 1일부터 판형 변경을 단행했다. '보기 편한' 베를리너 판형(32.3×47㎝)으로 탈바꿈한 것. 기존 신문에 비해 크기가 작은 베를리너 판형은 휴대와 읽기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전남일보의 판형 변경은 단순한 신문 크기 변경에 그치지 않는다. 신문 제작과정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제대로 된 뉴스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의지가 오롯이 담겼다. '사실을 전달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전통 저널리즘에서 더 나아가 강한 비판정신과 예리한 시각을 갖춘 읽을거리, 지역 현안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과 대안 제시, 지역 문화와 관광, 먹거리 등 소소한 소식 전달 등 전남일보만의 독자적이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전남일보는 새로운 신문 판형 변경을 맞아 '전남일보의 레거시(유산)+비전-기자가 묻고 기자가 답하다'를 싣는다. 대담에는 1988년 창사 멤버로 입사해 올해로 32년째 근무하고 있는 '베테랑 기자' 박상수 주필과 2018년 입사해 전남일보의 미래를 이끌어갈 최황지 전남취재본부 기자가 참여했다.

정확히 30년의 근무경력 차이가 나는 두 기자지만, 전남일보의 자랑스런 유산을 계승하고 '작지만 큰 신문'으로 32년간 성원해 준 독자에 보답하고 더 큰 신뢰와 사랑을 받는 신문을 만들겠다는 각오는 한결 같았다.

-박상수 주필(이하 박)=오랜만에 후배기자와 신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니 설레이네요. 최 기자가 맡아왔던 취재 분야는 어디였나요.

-최황지 기자(이하 최)=2018년 1월에 입사해서 사회부에서 수습기간을 거친 후 스포츠를 담당했습니다. 프로야구, 프로축구를 취재하면서 '현장에 있는 기자가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문화부에서 공연을 맡았고 현재는 전남취재본부에서 농업, 어업, 축산업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박=기자 선배한테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최=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서 여전히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가끔 하는 말이 있는데 '눈 감고도 기사를 쓰실 수 있는 지' 궁금합니다.(웃음)

-박=글쎄요. 눈을 감으면 글 쓰는 것 자체가 어렵겠죠.(웃음) 선배들이 잘난 척 하려고 그런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후배들이 좀 더 빨리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요. '너희들도 열심히 하다보면 선배들처럼 기사 아이템 선정이나 취재, 기사 작성에 노하우가 생기고 좋은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일종의 격려인 셈이죠. 다만 경력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자의 열정이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박=전남일보 입사 전과 후 기자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있나요.

-최=처음엔 기자는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기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여겼죠, 그러나 그것보다는 '감수성이 있는 기자'가 좋은 기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화려한 수사로 글을 쓰는 기자보다는 사회의 구석구석을 돌며 자기 일처럼 취재하는 선배들을 닮고 싶습니다.

-박=기자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가 있으면 소개해주시죠.

-최=사회부에서 수습교육을 받을 때 일주일간 5·18민주묘역에서 하루종일 대기하며 취재했던 게 가장 생각납니다. 이른바 '뻗치기'라고 하죠.(웃음) 수습기자라 관련 기사로 기명을 실진 못했지만 그 경험이 꽤 오래 남습니다. '광주의 오월'이 지역 기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준 일주일이던 같습니다. 유가족 앞에서 수습기자가 쭈뼛쭈뼛 녹음 버튼을 누르는게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슬픔을 보니 기자는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야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최=제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창사 멤버로서 전남일보의 산 증인인데, 창간 당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박=전남일보는 1980년대 후반 우리 사회의 민주화 열망에 힘입어 태어났습니다. 1980년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신군부는 지방신문의 경우 '1도1사' 정책을 폈습니다. '1도1사' 정책은 일제 강점기의 정책을 본받은 것으로, 지방 언론을 통제해 여론을 장악하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사회 각 분야의 민주화와 함께 언론 민주화도 이뤄져 신문 경쟁 체제가 됩니다. 특히 전남일보는 진보적인 색채를 띠면서 지역민들의 호응을 얻어 창간과 동시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최=전남일보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나요.

-박=전남일보가 상처받은 광주시민, 전남도민들을 위로하며 지역민과 함께 해온 것이 성공의 비결이 아닌가 나름대로 생각을 해봅니다.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학살 후 지역민들이 실의에 차 있을 때 승승장구한 해태 타이거즈 야구가 위안을 주었듯이, 전남일보는 창간 후 지역민들을 위로하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기존 신문과는 확실하게 다른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차별화했거든요.

1988년 직선제를 통해 노태우 정부가 들어섰지만, 신군부의 일원으로 5·18에 책임이 있는 그의 정통성을 지역에서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광주 시내에는 온통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창간 당시의 전남일보의 확실한 논조는 광주·전남 시·도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고 위안이었습니다.

전남일보는 창간 이후 5·18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5·18 묘지 성역화를 앞두고 '세계 민주 성지를 가다' 기획시리즈를 통해 방향성을 제시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우리 신문이 주도적으로 아젠다를 제시해 서해안고속도로 착공도 이끌어냈습니다.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인 농민들의 권익에도 앞장섰습니다.

창간 초기 일화를 한 가지 얘기하자면 신문 창간호에 노태우 대통령이 축하 휘호를 보내 왔는데 기자들이 농성을 하면서 게재를 막았습니다. 그만큼 초창기 기자들은 강단졌습니다.

-박=전남일보가 '신문다운 신문'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최=조간신문을 읽는 이유는 '지적 충만'을 이루고자 하는 독자들의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단순히 뉴스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독자들에게 매일 색다른 시선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슈 중심에서 오피니언, 사설란을 풍부하게 해 독자들이 매일 아침 전남일보를 읽은 뒤 하루의 대화를 충만하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선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전남일보는 앞으로 어떤 신문을 지향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박=호주의 미래학자 로스 도슨은 지난 2010년 세계 각국의 종이신문 소멸 시기를 추정해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2017년, 한국은 2026년, 일본은 2031년 사라지고 2040년이 되면 세계 모든 종이 신문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러면서 '종이신문은 예상대로 사라지겠지만 뉴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미디어 산업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20년인 지금까지 미국의 종이신문이 사라지지 않은 걸 보면 그의 예측이 일단 빗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고급 권위지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가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하는 등 많은 신문이 온라인으로 전환했고, 뉴욕타임즈도 종이신문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지만 모바일 등 디지털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디지털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2030년대가 되면 종이신문이 사라질 걸로 보입니다. 60대에 접어든 나도 이젠 종이신문 보는 것보다 모바일이나 컴퓨터로 기사를 읽는 것이 더 편합니다. 젊은 사람들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언론의 온라인화를 앞당길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우리 전남일보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야 합니다. 종이신문이 온라인으로 바뀌면 한국이 펄프 수입을 덜해도 되고, 지구상의 나무가 그만큼 훼손되지 않아 환경 측면에서도 좋은 일입니다. 전남일보가 머지않아 선도적으로 종이신문을 뛰어넘어 디지털로 전환해 지역 언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으면 합니다.

-최=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박=우선 전남일보 기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광주·전남의 역사를 기록하는 기록자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넓게 보고 균형적인 시각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언젠가 돌아가신 이훈동 창업주 명예회장님이 우리 기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무등산은 광주에서 볼 때 모습이 다르고, 화순에서 담양에서 볼 때 모습이 다르다. 광주에서 보는 것만이 무등산의 참모습이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요즘 언론들이 극단적으로 편향된 보도 행태로 비난을 받는 것을 보면서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젊은 기자들이 또한 빠지기 쉬운 함정이, 기사를 쓰면서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기사 비중이 커지거든요. 나도 그런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쓴 기사가 크게 보도되길 바라고 속보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정확하게 팩트 위주로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문은 속보 면에서는 인터넷과 방송을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후배 기자들이 속보나 특종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정확한 기사, 심층적인 분석 기사를 써서 전남일보 지면을 빛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후배의 시각에서 새로운 전남일보에선 무엇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최=지금까지 전남일보는 '지속가능 시리즈', '광주사람들'을 통해 나와 이웃들의 공생을 꾀하는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이 같은 방식은 세대를 논의하고 나아가 신문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시도였습니다. 이런 실험적인 방식이 더욱 주목받을 수 있도록 가독성을 높이고 '읽히는 신문'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다양하고 심층적인 콘텐츠와 텍스트, 사진, 디자인 등 가독성을 높이는 다양한 시도로 독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으면 합니다.

-박=새로운 베를리너판 신문에 임하는 후배의 각오와 다짐을 듣고 싶습니다.

-최=신문의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한편으론 위기에서 변화를 찾으며 기회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계속 뉴스를 봅니다. 오히려 인터넷 등지에서 뉴스를 소비하며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절제된 이성 비판이 가능한 신문은 분명 없어지진 않을 겁니다. '서적만큼 밀도가 높지만 매일매일 달라지는 콘텐츠로 채운 지면'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문에 매일매일 새로운 콘텐츠를 채우기 위해 더 발로 뛰고 경험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박성원 기자 swpark@jnilbo.com sungwo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