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땅에서 같은 싸움을 벌이는 자매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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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땅에서 같은 싸움을 벌이는 자매들에게
  • 입력 : 2020. 10.29(목) 13:22
  • 박상지 기자
불태워라

릴리 댄시거 (엮음) | 돌베개 | 1만5000원



분노하는 여성은 매력적이지 않다, 분노하는 여성은 비이성적이다, 분노하는 여성은 주변 공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분노하는 여성은 다루기 어렵다. 남성의 분노에 지나친 대의명분과 피치 못할 사연을 부여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분노는 제자리를 착각한 불청객처럼 내몰린다.

여성의 고통과 질병은 곧잘 엄살이나 히스테리로 치부된다. 충분히 저항하지 않으면 소극적 동의로 간주한다. 내 몸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면 처벌받는다. 그러나 분노를 표출하면 더 큰 위험, 더 큰 폭력과 배척으로 여성을 응징한다. 마치 여성의 분노라는 반사회적 행위가 화를 자초했다는 듯이. 많은 여성이 오랜 경험에 근거해, 때로는 선험적으로 분노를 죄책감과 슬픔으로 위장해 왔다. 분노가 위협으로 보이지 않도록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더 작게 웅크려 왔다.

혐오와 폭력이 극에 달한 때에 산발적으로 터져 나온,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외침에 "나도 그래"라고 응답하며 여성들은 억눌러 온 분노로 유례없는 연대를 이끌어 냈다. 그 거대한 물결 속에서 탄생한 '불태워라'는 여성 작가 22인의 분노에 관한 에세이를 통해 더 많은 여성의 분노가 목소리를 찾고 공간을 차지할 수 있도록 분노의 불길을 부추긴다.

책을 엮은 릴리 댄시거는 서문에서 "여성들이 엄청난 분노를 더 이상 억누르지도, 꺼 버리지도 않고, 이 책의 책장들을 활활 태워 연기를 피워 올리기를 바랐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시든지, 물러서"라는 도발적인 인사를 건넨다.

인종, 젠더, 성적 지향, 나이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작가들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분노가 어디에서 기인해 어떤 형태로 자라 왔는지, 분노가 삶을 어떻게 빚어냈으며 이제 분노를 어떻게 표출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다. '불태워라'는 분노로 타 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느껴 본 적 있는, 그리고 이제 이 분노를 표현할 권리를 요구할 준비가 된 여성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우리의 권리를 빼앗아 가고 우리가 기여한 바를 폄하하고 우리에게 권위를 주길 거부하는 세계에서 더 이상 경직된 미소 뒤에 숨어 조용히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태워 없앨 준비가 됐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