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11-3> 코로나시대,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이주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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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11-3> 코로나시대,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이주 노동자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가보니||코로나19로 고향 방문 어려워||미등록자 양산하는 고용허가제||"원하는 사업장 옮길 수 있길"
  • 입력 : 2020. 11.08(일) 18:09
  • 양가람 기자
지난 6일 광주 광산구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만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 왼쪽부터 나야나, 임세미 쉼터 팀장, 말린다, 산지와.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쉼터를 찾는 국제이주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당장 하늘길이 막혀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데다 자칫 미등록 외국인 신세가 될까 두려워 고향 방문을 주저하는 탓이다. 의료 사각지대, 고용허가제 등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찾은 광주 광산구 외국인노동자센터.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세 명이 센터에 모여 점심을 지어먹었다. 둥글게 모여앉은 이들은 제일 먼저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했다.

한국에 온 지 20년이 넘은 나야나(53·여)씨는 "스리랑카의 코로나19 확산세가 무척 심각해 집 앞 가게를 가는 일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갈 수 없다'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리랑카 공동체에서 매달 조금씩 모은 돈으로 몇 개 가정에 쌀과 반찬 등을 지원해주려 한다. 직접 방문하지 못해도 이렇게나마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스리랑카행 비행기는 두세달에 한 번 이륙한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수는 훨씬 적다. 어렵게 스리랑카에 도착하더라도 2주 간 격리조치 되다보니 3달 안에 귀국하려면 일정이 무척 빠듯하다.

몸이 아파 고향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포기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한국에 온 지 2년5개월 째라는 말린다(26)씨는 "E-9 어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양식장에서 오래 근무했다. 지금은 허리가 아파 잠시 일을 쉬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치료를 받고 싶지만, 3개월보다 하루라도 더 늦게 귀국하면 미등록외국인이 된다는 불안감에 (고향 방문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한국에서 치료를 받지만, 보험이 없어 번 돈 대부분을 치료비로 충당하기도 한다.

산지와(30)씨는 "위장이 너무 아파 병원에 갔다. 보험이 없어 CT 찍고 약 처방받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코로나19와 홍수 등 재난 상황을 겪으며 한국 생활의 외로움을 사무치게 느낀다고 토로했다.

나야나씨의 한 동료는 수년에 걸쳐 고향에 보낼 중고 핸드폰, 노트북 등을 여러 개 모았다. 그에겐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아껴가며 한 푼 두 푼 모은 살림이었다. 하지만 기록적인 홍수에 살던 집이 잠기면서 모아둔 물건들이 모두 떠내려갔다.

임세미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쉼터팀장은 "홍수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살 집과 살림을 잃었지만, 어떠한 지원도 없었다. 이주노동자들도 내국인과 똑같이 일하고 세금을 내지만,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난 상황에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한국 사회 시선이 이 정도에 머물러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정일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사무국장은 "고용허가제는 미등록 양산법"이라면서 "미등록 외국인이 되는 건 그야말로 간단하다. '작업장 변경은 3개월 안에 해야한다'라는 규정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작업장을 바꿀 때 고용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허락 없이 작업장을 변경하면 고용주가 5일 간 이탈 신고를 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영락없이 미등록 외국인 신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9비자로 입국한 외국인들은 원칙적으로 최초 고용허가를 받은 사업장에서 계속 취업해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사업장의 휴업, 폐업 등 정상적인 노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경우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업장 변경에도 제약이 따른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 횟수를 3년간 3회, 변경 기간은 3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사업장을 이동하는 이주노동자는 3개월이 단 하루라도 초과되면 새로운 곳에서 일할 수 없다. 사업주의 귀책 사유일 경우엔 횟수에 상관없지만, 역시 3개월 이내에 근무처를 변경해야 한다.

지난 2012년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직장 이동 권리 제한이 인종차별이라며, 고용허가제에 대해 개정 권고를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도록 바뀐 건 없다.

이주노동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직장 선택 권리 제한이다. 고용센터에서 연결해 준 일자리로만 취업해야 해서 원하는 일자리가 생겨도 갈 수 없다. 고용센터를 통해 취업한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3개월 이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참고 일하는 경우도 많다.

말린다씨는 "고용센터에서 일자리를 소개해 줄 때까지 기다리다 미등록외국인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여기저기 일자리는 많고, 친구들 통해 괜찮은 작업장을 소개받기도 한다. 본인이 원하는 일자리로 옮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E-9비자로 입국한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는 광주에 956명, 전남에 1799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어업비자(E-9 2)로 입국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