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김강> 씬시티와 절대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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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향기·김강> 씬시티와 절대권력
김강 호남대 영어학과 교수
  • 입력 : 2022. 08.02(화) 13:16
  • 편집에디터
김강 교수
2005년 개봉된 '씬시티'(Sin City)는 부패와 범죄로 얼룩진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진 세 건의 참혹한 범죄사건에 관한 영화이다. 원작자이자 공동감독인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소설 '씬시티' 시리즈 세 편의 줄거리를 압축해 구성했다. The Hard Goodbye(힘든 이별), That Yellow Bastard(노란 녀석), The Big Fat Kill(엄청난 살인), 영화적 플롯이 전혀 다른 이 세 개의 에피소드는 서로 어긋나고 교차하지만 결국 하나의 주제로 귀결된다. 기승전결이 매우 개연적인 할리우드 무비의 전형적인 내러티브를 용감하게 거스른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씬시티'의 세상에는 절대 권력자들이 존재한다. 사회의 법과 질서를 규정짓는 자들이다. 그 누구도 그들을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의 상위층을 지배하지만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썩은 사회의 핵심 요인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부패한 로크 가문 일족, 타락한 성직자와 그가 그토록 아끼는 냉혹한 식인 킬러 케빈, 상원의원 동생과 사이코패스 유괴범인 그 아들, 이들은 도시를 죄악의 공포로 몰아넣는다. 끔찍한 범죄의 배후에는 절대적 권력과 다층적 부패가 미로처럼 얽혀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절대권력이 아닌 아웃사이더들, 소위 뒷골목의 '루저'들이다. 살인 누명을 쓴 흉측한 모습의 스트리트 파이터, 고독한 사진작가와 그 주위를 맴도는 매춘부 여인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양심적 고집불통 외골수 형사가 바로 그들이다. 정상을 뒤집은 역전의 히어로다.

기존의 성역과 권위가 붕괴되는 현상은 거스를 수 없는 21세기 조류 중 하나다.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이 일찍이 지목한 '성역과 금기 파괴를 통한 다원사회로의 이동'과 '우상 파괴'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패러디와 풍자 등 우상 해체 풍조가 오락산업의 선두 콘텐츠가 되어왔다.

'씬시티'는 그러한 흐름을 제대로 반영한 신종 패러독스라 할 수 있다. 식인 킬러 케빈 역의 엘리야 우드가 대표적 샘플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더없이 순박한 주인공 프로도를 연기했던 그는 이 영화에서 절대 선을 가장한 악의 대부 종교 지도자에 의해 키워진 살인마로 등장한다. 프로도처럼 순진하기 그지없는 모범생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상대가 보는 앞에서 당사자의 살을 뜯어먹는 엽기적인 악마다. 잔학성의 완전체다.

밀러 감독이 영화 속 프로도를 보면서 오래전부터 구상했다는 캐릭터라고 전해진다. 말만 들어도 구역질 나올 정도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화다. 영화화된 '씬시티'도 만화의 맵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래서 '씬시티'가 보여주는 '전복적 상상력'은 더욱 매력이 있다. 루저 아웃사이더들은 영화 속에서 권력자들을 잔인하게 응징한다.

범죄조직의 중간보스쯤 되는 성당 신부는 고해성사실에서 총에 맞는다. 경찰은 창부들과 거래를 맺고, 법 집행은 그녀들이 직접 한다. 정치인의 아들은 변태적인 이상 성욕자이자 얼굴이 '노란' 괴물이다. 검사 또한 진실에 상관없이 유리한 자백을 강요하는 협박범이다.

여자에게 함부로 했다간 신체의 어디가 잘려나갈지 모르며, 남성적 상징이 시시때때로 거세되는 세상이 '씬시티'다. 사회적, 성적 지배 관계가 파괴되고 뒤집힌 이 만화적 도시는 이런 식으로 금기의 벽을 두드리며 관객들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재미는 절대권력의 부패라는 인간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비틀고 꼬집는 데서 터져 나온다.

우리 현실에서는 정치가 가장 그러하다. 외부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여전히 가능한 듯 서슴없이 벌어지는 가장 폐쇄적 공간이다. 이성과 상식보다는 뱃지와 훈장이 우선시되는 세상이라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존경할 만한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을 온전히 고즈넉이 담을 만한 모범이 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존경하고 따를만한 리더마저도 그 자취가 없다. 정치, 기업, 공직은 물론이거니와 교육의 품새도 바르지 않다.

모두가 권력과 금력에 취해 있다. 서로 먼저 바둥대며 기어오르다 거대한 무덤을 만드는 꼴이다. 어떤 자는 낙오되고 다른 자는 또다시 그 행렬에 끼어든다. 이처럼 혼돈하니 미래의 기둥이라는 젊은이들 상당수도 온통 재물과 허영에 앞다툼이다.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제각기 물길대로 흐르지 않고 유유상종, 한데 고여 자칫 절대 악으로 변질된다.

정약용 선생의 말씀대로 권력은 가진 자들의 만족과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가지지 못한 자,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 이제 옛 선조들의 가르침도 아득한 몽상에 그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지는 않은지.

권력은 자신을 위한 '절대적 파워'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절대적 필요'가 되어야 한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