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다움 ' 정체성 고민에 성장 가능성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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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광주다움 ' 정체성 고민에 성장 가능성 발견했다
◇홍익대 나건 교수가 진단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관람객들 "고생했겠다" 반응… 공감에 성공한 것||'주먹밥 찬합'…친환경 이슈와 지역 역사 결합 ‘호평’||광주다움, 도발적이나 완벽하게 어우러진 ‘삼합’ 비유
  • 입력 : 2019. 10.27(일) 18:29
  • 박상지 기자
27일 나건 홍익대 교수가 광주디자인센터에서 전남일보와 제8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흔히 디자인과 예술은 같은 의미로 여긴다. 디자인이 예술에서 시작된 까닭이다. 하지만 '디자인=예술'이라는 공식에 모두가 공감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대표적으로 '디자이너'들이 그렇다. 예술이 철저하게 작가중심이라면, 디자인은 최종적으로 누구를 위해 쓰여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디자이너들은 주창한다. 즉, 디자인이란 인간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슈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오는 31일 폐막하는 제8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던진 화두는 '인간다움'이었다. 지난 2005년 첫 행사 때부터 줄곧 '인간'을 바탕으로 개최된 국제행사는 8회 째를 맞는 올해 행사에서 비로소 행사 취지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수이자 디자이너로서 제1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줄곧 관람해왔던 나건(61)홍익대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문가로서 제8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부대행사로 치러진 토크 버스킹의 패널로 참여한 나 교수를 27일 광주 광산구 광주디자인센터에서 만났다.

"결국 디자인은 대중, 사람을 위한 것이에요. 이런 의미에서 올해 '휴머니티'를 주제로 연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지금까지 행사의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어요. 관람객들의 반응을 보면 알죠. 1회 행사 때 관람객들이 "이게 뭐지?"라는 말을 많이 했었는데, 올해엔 "고생했겠다"라고 하더라고요. 대중이 공감한거죠. 주최 측의 의도가 감성을 건드렸다는 거예요. 공감하는 순간 이건 성공이라고 봐야 합니다."

올해 행사가 특히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휴먼(Human·인간)과 커뮤니티(Community·지역사회)의 매개자로서 디자인의 역할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나 교수는 휴먼과 커뮤니티, 디자인의 관계를 삼합과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이라고 빗대어 설명했다.

"삼합이란 홍어, 돼지고기, 묵은지죠. 예술장르로서 디자인이 고려해야 할 3요소는 디자인과 사람과, 공간이에요. 이번 디자인비엔날레가 디자인의 3요소로 소통의 공간이 됐다는 것. '소맥문화'는 곧 소통의 문화죠. 그래서 소통을 '소맥'이라고 생각해봤습니다."

무엇보다 올해 디자인비엔날레가 여느 행사에 비해 의미가 깊었던 것은 5개 주제관 중 하나였던 '광주다움'에 있었다. 광주에서 개최되는 행사인만큼 주최 측이 광주의 정체성, 즉 '광주다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했기 때문이다. 올해로 8회, 햇수로는 14년째 접어드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인간으로 치면 청소년기에 해당된다. 청소년기의 특징이 한 마디로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라고 봤을 때, 청소년기에 접어든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풀이하는 것이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곧 성장가능성의 의미한다.

"전 세계의 공통된 고민이 바로 'OO다움'이에요. 뿌리를 좇다보면 결국 민족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죠. 광주에서 광주다움에 대해 고민했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전엔 정체성이 없었다가, 사춘기 들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다시 말해, 디자인에 대해 해법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보기 시작했다는 거죠. 광주다움을 만들 수 있는 고민에 대한 메시지는 지역과 국가를 막론하고 '정체성 마라톤'의 시작이 될 겁니다."

특히 5주제관이었던 '광주다움, 광주사람들의 생각'에서 선보였던 디자인 제안 중 가장 돋보였던 종이로 만든 '주먹밥 찬합'에 대해 나 교수는 호평했다. 친환경이라는 지속가능한 이슈를 지역의 역사와 결합시켰다는 점이 나 교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호남은 오염되지 않은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해요. 이런 의미에서 미래 제안으로 친환경재료를 이용한 도시락을 보여주었다는 건 광주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기둥이 되죠.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광주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는 점이죠.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 친환경이지, 그걸 위해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건 위험한 발상이에요."

지금까지 광주에 100여차례 방문했다는 나 교수에게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서울 토박이가 바라본 '광주다움'은 무엇일까.

"삼합이요."

10여년 전 목포에서 '전라도의 맛'을 제대로 봤다고 한다. "교수님도 하쇼?"라는 지역민의 물음을 잘 이해하지 못해 "합니다"라고 했더니 "강하게 하요, 약하게 하요"라고 재차 질문하더란다. 자존심에 "강하게요"라고 해서 맛본 것이 제대로 익은 홍어 삼합이었다.

"냄새와 식감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돼지고기 한점이 들어가자 맛과 냄새가 중화가 되고, 묵은지가 또 들어가자 특유의 맛이 다시한번 미각을 자극하고요. 여기에 탁주 한모금을 마셨는데, 어쩜 이래요? 충격적이었던 식감과 냄새가 갑자기 기분 좋음으로 바뀌는데 그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부정적인 느낌에서 극적인 반전을 준거죠. 굉장히 도발적이면서 어우러지고 완벽한 형태를 이루는 것. 저는 이게 광주다움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광주다움'이 묻어있다고 평가하는 것도 삼합이 준 도발과 반전에 비유했다.

"보통 디자인 관련 행사는 단순히 제품을 늘여놓는 수준이었어요. 철학과 담론을 제기하는 디자인 행사는 대부분 서울에서 이루어졌고요. 그런데 광주에서 10년 이상 한가지 주제로 담론을 이어가는 행사가 열리는것 자체가 충격이었죠. 그런데 횟수를 거듭할수록 광주의 문화와 역사 뿐만 아니라 타 지역의 요소까지 가져다 국제적 이슈를 풀어가고 있잖아요. 국내외적으로 위상도 높아지고 있고요. 첫 해 행사를 치렀을때, 지금의 모습을 누가 기대했겠어요. '광주다움'의 저력이죠."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