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도깨비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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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도깨비의 고향
  • 입력 : 2019. 11.20(수) 13:38
  • 편집에디터

곡성 섬진강변에 있는 도깨비마을과 숲

장면 하나. 도깨비와 씨름을 했다. 도깨비의 키는 장대보다 더 높았다. 밤새 씨름을 하다가 마침 꾀가 생각났다. 도깨비는 왼다리가 약하다고 하더라. 냅다 왼다리를 발로 찼다. 그랬더니 실제로 도깨비의 키가 쑥쑥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람 키 정도로 작아졌을 때 안짱다리를 걸어 자빠트렸다. 이겼다. 마침 나무숲에 있는 큰 소나무가 눈에 띄었다. 도깨비를 나무에 묶고 옆에 있는 칡 줄로 칭칭 동여매두었다. 마을로 돌아왔다. 아침이 되니 어젯밤 씨름하던 도깨비가 궁금했다. 동구 밖을 지나 씨름하던 마을숲가로 가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키 큰 소나무에 칡 줄로 칭칭 묶여있는 건 빗자루 아닌가. 그것도 다 닳아져서 버린 몽당 빗자루 말이다. 이른바 빗자루 도깨비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수집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듣는 감초격의 이야기다. 몽당 빗자루 외에 부지깽이도 나타난다. 집안에서 사용하던 물품들이 주류다. 함정이 있다. 어르신이 실제 도깨비와 씨름을 하신건가요? 대답이 돌아온다. 고개를 설레설레, 아니, 할아버지들한테 들은 얘기지. 몽당 빗자루나 부지깽이가 주류인 것은 또 무슨 까닭이죠? 옆에서 할머니들이 대꾸해주신다. 쓰다가 버린 물건들이 도깨비가 된다고요. 그렇다면 가까이서 쓰던 물건들이 도깨비가 되는 모양일까.

몽당빗자루 도깨비, 김서방 도깨비

장면 하나 더. 서남해 해안지역, 마을에서 가장 큰 제사인 당제(堂祭)를 지낼 자정 무렵이다. 이른바 상당제(上堂祭)와 하당제(下堂祭)를 지내고 난 마지막 의례다. 짚으로 얼기설기 만든 거적때기에 소뼈를 부위별로 동여서 담고 개펄로 나간다. 소뼈는 소 한 마리를 의미한다. '대신맥이'다. 무속의례에서 무엇인가를 대신해서 바치는 것을 말한다. 대개 고사를 지낼 때 닭 한 마리나 돼지 머리, 경우에 따라 소머리 등을 바치는 사례들이 남아 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을 바치는 인신공희(人身供犧)까지 나온다. 심청 이야기가 대표적인 희생제의 사례다. 제방이 무너져 처녀를 같이 묻었다거나 마을을 해하는 뱀이 있어 처녀를 바쳤다는 등 다양한 버전들이 있다. 주로 혼인하지 않은 처녀가 희생물로 등장하는 일련의 형태들을 나는 가임(可姙)과 출산 즉, 탄생과 거듭남의 의미로 읽어내고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주제를 다룰 때 언급하기로 한다. 어쨌든 '거렁지'로 불리는 거적때기를 들쳐 맨 사람이 앞장을 서고 당산에 제사를 지냈던 제관들과 마을의 풍물잽이들이 그 뒤를 따른다. 개펄의 목표 지점에 이르면 큰 소리로 외친다. "물아래 김서방! 물아래 김서방!" 도깨비를 부르는 소리다. 이어 마을의 안녕과 축복을 빌고 되돌아온다. 이런 유형의 제사를 도깨비고사라고 한다. 전통적인 개펄어업을 하는 지역뿐만 아니라 근대기 이후 확산된 김양식이나 굴양식을 하는 지역도 포함된다. 남도 전역, 서해와 남해를 관통하는 연안의 제사 유형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도깨비가 김서방이라니. 김씨의 조상들이 모두 도깨비란 말인가?

물아래 김서방 혹은 물아래 진서방의 비밀

더 이상한 것은 도깨비고사에서 이구동성으로 '물 아래 김서방'을 외치는데도 김씨들이 화를 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왜일까? 웃고 넘어가기에는 마을의 중심 제사라는 비중이 높다. 비록 뼈일지라도 소 한 마리를 도깨비에게 바친다는 공력 또한 크다. 개화된 현재까지도 도깨비고사를 지내는 마을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그 신앙심 혹은 관념들이 매우 깊다. 단서를 찾아본다. 김해 김씨든 경주 김씨든 성씨를 부르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대체로 현장에서 자세히 들어보면 물 아래 김서방인지 물 아래 진서방인지 헷갈린다. 나는 이렇게 풀이해왔다. '물 아래 김서방'은 '물 아래 진서방'의 와음이다. 구개음화 현상의 하나다. 예컨대 길을 '질'로 '기름'을 '지름'으로 '길~다'를 '질~다'로 발음하는 용례들과 같다. 구개음(口蓋音)이 아닌 자음이, 뒤에 오는 'ㅣ' 등의 영향을 받아 구개음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표준말에 가깝게 '김서방'으로 호명한 듯하나, 사실은 '진서방'의 호명이라는 것이 내 주장이다. 따라서 성씨로서의 '김'이 아니라 '진~서방' 즉 '긴(길다는 뜻)~서방'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내가 세운 이론이니 얼마든지 반론을 환영한다. 그렇다면 진서방(김서방)은 뭐가 '질~다'는 즉 '길~다'는 뜻일까? 바로 남근(男根)이다. 남근 메타포(은유)는 마을 어귀의 입석(立石)이나 미륵돌, 도깨비가 들고 다니는 방망이 등 다양한 형태로 치환된다. 표상의 환경이나 방식이 다를 뿐 음양의 교접에 의한 풍요와 다산, 풍어 등을 기원하는 일종의 기호라는 점 동일하다. 예를 들어 본다. 마을의 입석이 왜 남근의 은유일까? 대부분의 마을에서 정초에 줄다리기를 한다. 놀이인 듯싶지만 줄다리기 또한 의례다. 이 의식은 대부분 줄을 입석에 감아두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정초 한 해를 음과 양의 교접으로 시작하는 의미다. 일본을 통해서 들어오긴 했지만 동남아시아의 혹부리 영감 이야기의 혹 마저도 나는 남근 메타포로 읽고 있다. 도깨비가 뿔을 달고 방망이를 든 이유, 여성격이 강한 귀신에 비해 주로 남성격으로 독해되는 도깨비에 대한 내 해석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들 도깨비들의 고향이다.

왜 나무숲과 개펄, 늪이 도깨비의 출몰지인가?

몽당빗자루 도깨비는 나무숲에서 산다. 물아래 진서방 도깨비는 개펄이나 늪에서 산다. 왜 그럴까? 정격(正格)의 신성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성을 획득한 신격(神格)은 그에 합당한 규격이나 격식을 갖추고 있다. 집을 지킨다는 성주신이나 조왕신, 바다와 물을 지킨다는 용왕신 등 무수한 신격들은 사람들이 부여한 일정한 권위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도깨비는 완성되거나 완비된 구성물이 아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한 잡된 귀신의 하나"라고 풀이해두고 있다. 동물을 형상하기도 하고 사람을 형상하기도 하니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리란 점 짐작할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비상한 힘과 재주를 가지고 있어 사람을 홀리기도 하고 짓궂은 장난이나 심술궂은 짓을 많이 하는 존재"로 풀이한다. 관용구 중 "도깨비 같은 소리"라고 하면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허황된 소리"를 이르는 말이다. "도깨비 살림"이라고 하면 "있다가도 별안간 없어지는 불안정한 살림살이"를 말한다. "도깨비에 홀린 것 같다"라고 하면 "일의 내막을 알 수 없어 무슨 영문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용례가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다. 민담으로 전승된 도깨비들을 보면 주로 불도깨비가 많다. 형상을 특정하지 않은 무형의 존재로 인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도깨비는 방망이로 떼고 귀신은 경(經)으로 뗀다"는 속담이 있다. 귀신은 격식을 갖추어 대하고 도깨비는 아무렇게나 대한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도깨비는 몽둥이로 조져야한다"는 말도 있다. 신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사람도 아닌 것이 중간지대에 머물러 있으면서 신격으로 모셔지기도 하고, 사람보다 천한 우스꽝스런 존재로 비하되기도 한다. 내가 문제 삼는 것은 이들 도깨비들이 거처를 잃고 방황한다는 점이다. 마치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처럼.

전이지대를 잃은 시대, 도깨비의 출현을 기다리며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 도깨비가 살까? 깊은 산 속에서 도깨비가 출현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럼 깊은 산속에서는 누가 사나? 정격의 신성을 갖춘 신격이 산다. 산신 따위가 대표적이다. 깊은 바다에 나가도 마찬가지다. 정격의 신성을 갖춘 신 용왕 따위가 살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사람들의 거처 즉 마을 가까운 나무숲에서 주로 산다. 조수간만의 유동이 현저한 개펄에서 주로 산다. 먼 바다까지 나가지 못한다. 깊은 숲으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이유가 뭘까? 나는 도깨비가 사는 공간을 인간과 신의 교집합 혹은 교섭지로 해석해왔다. 이른바 점이지대(漸移地帶) 혹은 전이지대(轉移地帶)다. 지리적으로 보면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두 지역 사이에서 중간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지역 예컨대 산록지역 따위다. 그림으로 치면 도깨비는 마치 여백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다. 글로 치면 마치 행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교섭하는 공간이므로 원한의 표상인 귀신이나 깊은 숲속의 산신보다 친화적이다. 정격의 신성을 획득하지 못했으므로 어딘가 모자라고 어색하다. 사람을 놀리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며 자잘한 욕망들을 해소해주기도 한다. 방망이 하나로 재화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금전 보따리를 주고도 금방 잊어버리기도 한다. 격식을 갖춘 신격이라면 이리 허술할 수 없다. 도깨비의 출현이 잦은 우실 등의 마을숲이나 마을주변의 늪지, 개펄 등은 생태적으로도 교섭공간이자 점이지대다. 개펄이나 늪의 기능이 그렇고 거주공간과 산림공간의 교집합인 마을숲의 기능이 그러하다. 하지만 근대기 이후 숲과 거주 공간들이 비교적 명확해지는 반면, 점이지대들이 사라지고 있다. 어디 공간뿐이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점차 점이지대를 잃어가고 있다. 자잘한 욕망들을 투사해 각양의 형태로 창조했던 도깨비들을 몰아내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마을 숲을 없애고 개펄을 없애버린 것처럼 말이다. 내가 수차에 걸쳐 도깨비 이야기를 해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 힘들고 괴롭고 외로울 때 황당하지만 그저 익살스럽게, 엉뚱하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도깨비를 기다린다. 마을숲과 늪, 개펄의 점이지대, 우리 마음의 중간지대를 살려가야겠다.

남도인문학팁

중국의 도깨비의 세계

일본 오니(鬼)나 갓파, 나마하게 등은 이미 소개하였으므로 중국의 도깨비를 간략하게 정리해둔다. 우리 도깨비와 일치하는 개념의 중국 도깨비는 없다. 북경 소재 중국사회과학연구원 탄지아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공부자료로 삼는다. 중국의 도깨비라 함은 통상 '일상과 다른 것들' 정도로 인식된다. 본래는 우주 기화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만 점차 정괴(精怪)쪽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다가 '반물즉요'설과 합류하여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쫓아내야 하는 위험한 요소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신(神), 선(仙), 마(魔), 요(妖), 귀(鬼), 신수(神獸), 페어리(精靈) 등이 모두 관련된다. 탄지아는 도깨비의 존재 자체가 신성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상대적 개념이라고 해석한다. 협의의 도깨비와 광의의 도깨비로 분류하기도 한다. 예컨대 신선과 귀신을 도깨비 개념으로 포섭한다. 본래 그런 기능을 했다는 의미다. 모순(茅盾), 노신(魯迅), 원가(袁珂) 등 신화거장들을 도깨비 관련하여 거론하는 것이 놀랍다. 오늘날 유행하는 판타지 중심의 신화와 이미지들도 도깨비의 범주로 포착한다. 마치 우리의 드라마 '도깨비'를 연상케 해준다. 물론 산해경(山海經), 좌전(左傳), 국어(國語) 등의 고서나 석조각, 청동기, 건축, 벽화 등 고고학적 유물을 전거 삼는다.

순천만 교량마을습지

일본 아카쿠라 산에 있는 신당(정면의 오니상)과 숲 복사

전북 고창군 화산마을숲(산림청)

해남군 송지면 갈산당 우실 마을숲

해남군 현산면 고현리 우실 마을숲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