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위기에도 놓지 않은 붓… 화폭에 그린 무한한 세상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미술
실명 위기에도 놓지 않은 붓… 화폭에 그린 무한한 세상
광주 출신 소영일 전 연세대 교수, 금호갤러리 개인전||녹내장 시력 저하로 교수직 그만두고 화업에만 몰두||세계 명소 추상 표현으로 아름다움·외로움 함께 담아
  • 입력 : 2020. 01.01(수) 16:28
  • 최황지 기자

소영일 작가 '아름다운 리우데자네이루와 구세주 상'. 유·스퀘어 문화관 제공

약 30여 년 동안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로 강단에 선 소영일(69) 작가에게 정년을 3년 앞둔 어느날 뜻밖의 불행이 찾아온다. 갑자기 강의실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후 그는 병원에서 녹내장 판정을 받았다. 지속적으로 감퇴하는 시력에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교직도 그만둬야 했고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녹내장으로 실명 위기에 빠진 소 작가에게 유일한 삶의 의미가 된 건 어린 시절 취미로 즐겼던 '그림'이었다.

실명 위기의 불행이 엄습해왔지만 그는 그림으로 인생 전환점을 맞게 된다. 15분 동안 돋보기를 쓰고 화업에 몰두한 뒤 2시간여 동안 지속되는 눈의 통증을 참았다. 육체적 고난 속에서도 소 작가는 붓을 놓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 꽃 피어난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이 가득 담겼다. 그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본 명소가 주요 소재가 됐다.

소 작가의 작품 '아름다운 리우데자네이루와 구세주 상'에선 나폴리, 시드니와 함께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손꼽히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 그리스도상과 주변 풍경이 담겼다. 그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상을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하는 대신 상 뒤편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리우의 빈민가인 '파벨라'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또 다른 작품 '아비뇽의 다리'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론강에 걸린 끊어진 다리가 소재가 됐다. 아비뇽의 다리를 걷는 사람은 행운을 얻는다는 속설로 젊은 연인들은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다리 위에서 서로 만났고, 상인들도 사업 성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 다리를 건너며 행운을 빌었다. 소 작가는 초록색 강물 위에 걸린 아름다운 아비뇽 다리와, 사랑의 완성을 빌며 이 다리 위를 걷고 있는 두 젊은 남녀를 그려 넣었다.

이 외에도 중국 사천성 구채구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오화해(五花海),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로 선정된 포르투갈의 마린해 해변의 '하트 바다 아치(Heart Sea Arch)' 등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밝은 색채를 통해 표현했다. 소 작가는 자연을 주소재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컨버스에 담아내고자 한다.

흐릿한 시력으로 세밀한 작업은 할 수 없었지만 나이프 끝으로 물감을 덧 바르는 형식으로 세상을 그려내는 등 소 작가만의 시각이 담긴 새로운 화풍을 창조했다. 이같은 '추상화법'은 관람객들에게 자연의 풍광 이면에 외로움, 이별, 가난, 위태함 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내가 느끼는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소 작가의 제 6회 개인전이 3일부터 9일까지 광주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 개막식은 3일 오후 2시다.

한편 소 작가는 광주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와 대학원, 서울대 대학원 및 미국 아브라함 링컨대학을 졸업했다.  

최황지 기자

최황지 기자 orchi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