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鐵)로 담아낸 대한민국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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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철(鐵)로 담아낸 대한민국 자화상
뿌리산업에 예술 접목한 방우송 작가||부친, 철 가공물 회사 운영…친숙한 ‘철’이 소재 ||서초동·광화문에 모인 군중들 '벌떼'로 형상화
  • 입력 : 2020. 01.30(목) 17:44
  • 박상지 기자

30일 광주 동구 제봉로 주안미술관 전시실에서 방우송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있다.

광주 동구 주안미술관의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미디어 영상이 먼저 관람객을 맞았다. '피넛맨'의 여정이 담겨있는 영상 속에는 장면마다 다양한 형태의 미술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뉴욕에서 '피넛가이'로 주목받으며 조각, 회화, 미디어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 온 방우송(51) 작가가 지난 30여년간 작업했던 작품들이다. 다양한 재료로 구현된 실험적인 작업들에서 30여년간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고 백남준 작가와의 전시 콜라보에 한국 최연소 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방 작가가 10년 만에 광주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방 작가는 다작을 하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전공이었던 조각뿐 아니라 미디어 아트, 회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는 종이, 왁스, 나무, 포장지, 돌, 소금, 고무, 신문, 폐품 등 거리에 널려있는 모든 것이 그의 작품 속 재료가 됐다.

10년만의 개인전에서 그는 수십가지가 넘는 재료 가운데 철을 집어들었다.

"수십가지의 재료를 다뤄봤지만, 가장 익숙한 것은 철이더라고요. 어릴적 집에있는 망치가 장난감이었어요. 집 앞 철 무더기 위에 기어올라가 놀았죠. 아버지가 용접하는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곤 했어요. 빨간색에서 까만색으로 변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철의 변화가 신기했죠."

망치가 장난감이고, 철 무더기가 놀이터가 됐던 데에는 벽난로, 바비큐 그릴 등 철 가공물을 제조하는 회사가 가업으로 이어진 덕분이다. 마법을 부리듯 아버지와 기술자들의 손을 통해 프라이팬이나 그릴 등으로 탄생하는 철의 변화가 흥미로웠지만 아버지가 물려주는 자리 대신 미술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저희 집은 항상 손님들로 북적거렸어요. 본의 아니게 손님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가 있었어요. 순천에서 살았는데, 광양, 광주, 목포 등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뉴스들을 생생하게 들으면서 자랐어요. 작가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어린 시절 귀동냥으로 들었던 이야기들을 소재로 스토리텔링을 했죠. 어찌 보면 그게 채집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10년만에 선보인 개인전의 주제가 '채집'이 된 배경이다. 방 작가의 '채집'은 주로 정치·사회·종교적 이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평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14년 목격한 세월호 사건과 2016년 촛불혁명, 지난해 조국사태 등을 작업으로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모인 군중들의 모습은 33마리의 벌떼로 형상화했고, 조국사태를 다룬 신문을 파쇄해 유리병에 담아 밀폐했다. 세월호에 관한 가슴 아픈 뉴스는 성경책과 나비로 형상화했다.

당분간 채집에 관한 주제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30일 주안미술관에서 전시를 마친 그의 작품들은 광주 남구 양림동 515갤러리와 경기도 용인에 있는 근현대사미술관에서도 선보일 계획이다. 특히 근현대사미술관에서는 33마리였던 벌떼들을 1000마리로 늘리는 등 대규모의 전시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방 작가는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미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뉴욕시립대학교 졸업 당시 방 작가는 최고의 작품을 만든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파브리 어워드(Fabri Award)를 수상해 화제가 됐다. 또 뉴욕에서 가장 권위있는 화랑 중 하나인 엑시트 아트/ 더 퍼스트 월드(Exit Art /The First World)에서 그룹전을 진행했으며, 21세기를 이끌어갈 재미 한국 최연소 작가로 선정돼 고 백남준 작가와 스페이스 월드 갤러리(Space World Gallery)에서 전시를 열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글·사진=박상지 기자

광화문의 모인 군중을 상징하는 벌떼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