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로 휴머니스트' 고 임춘평 박사의 소장전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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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금남로 휴머니스트' 고 임춘평 박사의 소장전 '눈길'
전남대병원갤러리, 4월5일까지 '봄 그리고 여름...'전||양수아, 김준호, 황순칠 등 지역작가 작품 14점 전시
  • 입력 : 2020. 03.02(월) 17:30
  • 박상지 기자

황순칠 작가의 '장미'(왼쪽)와 최영훈 작가의 '장미'

1980년대 광주 동구 금남로에 괴짜의사가 있었다. 피부과를 운영했던 그는 진료가 끝나면 늘 충장로, 금남로 골목골목 후미진 식당에서 미술인들을 벗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원로가 된 술벗들은 병원장이라는 그의 직함 대신 사계절 입고 다녔던 '줄무늬 남방과 잠바'를 떠올렸다. 자신에겐 한없이 인색했지만 남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했던 까닭이다. 자신의 이름 석자보다 '금남로 휴머니스트' '선한 사마리아인' '광주사람'으로 유명했던 그는 고 임춘평 박사다.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임춘평 피부과의원'을 운영했던 임 박사가 1990년 심근경색으로 작고하기 전까지 수집했던 지역 미술인들의 작품은 200여점이 넘는다. 시와 그림을 사랑했던 그의 취향은 작품을 구입하는데 그치지 않고 예술인에 대한, 나아가 예술 작업의 근원이 되는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 발현됐다.

사채를 얻어 고학생에게 등록금을 마련해주기도 했지만, 지역 미술인들에게 특히 관대했다. 중견, 원로작가들 중 적게라도 그의 도움을 거치지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우제길 화가는 "'이 그림은 재산 가치가 있으니 꼭 가지고 있어라'고 말했지만 (임 박사는)결국 남들에게 나눠주곤 했다"며 "돈을 받지 않고 치료해준 가난한 사람이 더 많아 정작 자신은 달랑 집 한채 남기고 떠났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황영성, 우제길, 이강하, 양수아, 최쌍중, 강연균, 홍성담, 김영태 등 욕심나는 원로, 중견 작가의 작품이 많지만, 자녀들은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유산에 손을 대지 않았다. 집 한쪽에 쌓여있었던 그림들은 임 박사 유고 20년이었던 지난 2010년 무등현대미술관을 통해 지역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고 임춘평 박사의 휴머니즘이 담긴 작품을 통해 진정한 인간존중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되새겨보는 자리가 전남대병원갤러리에 마련된다. 오는 4월5일까지 '봄 그리고 여름'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난 2013년 11월 '가을 그리고 겨울'에 이은 두번째 전시다.

전시에는 임 박사의 소장작 중 봄과 여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작품 14점이 공개된다. 서정성이 돋보이는 최종섭 작가의 '무등산'과 김준호 작가의 '투우', 양수아 작가의 '풍경화'를 비롯해 문복철 작가의 '한지 추상화', 김암기 작가의 '피리부는 소녀'를 감상할 수 있다. 화사하고 감각적인 색채가 인상적인 최영훈 작가의 '장미'와 똑같은 구도의 황순칠 작가의 '장미'도 나란히 전시돼 두 작가의 '장미'를 비교감상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그림 외에도 임춘평 박사의 시와 여기에 최종섭 작가가 그림을 그려넣은 시화작품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미망인 박영자씨는 "소리없이 이웃을 도왔던 남편의 손때묻은 소장품을 통해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종섭 작 '무등산'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