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의 시간 40년… 어느덧 그들은 별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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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속죄의 시간 40년… 어느덧 그들은 별이되었다
518 시민군 김근태 화백 옛 전남도청서 첫 개인전||40년만의 현장으로 회귀… 작품 속에 5월영령 혼 담아
  • 입력 : 2020. 05.17(일) 16:06
  • 박상지 기자

지난 11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5관에서 김근태 화백이 전시준비를 하고 있다.

"희생된 이들을 도청 안에서 염을 했어요. 부패하면 새 나무를 받쳐주고 흐물거리는 살점들을 물수건을 닦았죠. 30년간 중증 지적장애아들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아왔는데 어느순간부터 그들의 모습 속에 희생된 이들의 모습이 겹쳐보이더라고요. 마치 작품 속에서 부활하는 것 처럼요."

일그러진 표정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 같았던 김근태(63)화백의 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진다. 중증 지적 장애아를 그리기 시작했던 초창기의 작품은 그의 아내조차 무서워서 볼 수 없을만큼 사실적이었지만 지금은 형태는 사라지고 삼원색의 밝은 빛만 남아있다. 형태가 사라지게 된 이유는 두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5·18 트라우마로 기능을 상실한 눈과 귀의 장애가 점점 심해진 까닭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둘러싼 상처가 작업을 통해 예술로 승화됐기 때문이다.

40년 전이었던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그는 시민군이자, 518사태수습위원으로 옛 전남도청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희생자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관을 지키는 일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름조차 확인할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염을 할때마다 분노와 설움의 울음이 터져나왔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지 못했다. 5월26일 새벽, 계엄군이 도청을 진압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듣고 그는 결국 총을 놓고 도청 담을 넘었다. 광주 동구 계림동 자신의 화실에 숨어있는 동안 숱한 이들의 신음소리와 "도와달라"는 여성의 간절한 애원, 계엄군들의 발소리를 들어야했다. 그 소리들은 비겁했던 자신의 모습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후 그는 자괴감으로 수차례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고, 사회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다. 술에 의지하다 청각을 잃었고, 교통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마저 잃게됐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목포 앞바다의 작은 섬 고하도를 찾았다. 중증의 지적장애아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시작하면서 그는 인권 화가로 다시 시작했다. 가장 낮은자의 모습을 예술로 남기는것, 5·18 희생자들에게 구하는 간곡한 용서였다.

40년 전 옛 전남도청을 떠났던 시민군은 인권화가가 돼 그 자리로 돌아왔다. 오는 6월 21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5관에서는 5·18민주화운동 제40주년 특별전 '오월, 별이 된 들꽃'이 전시중이다. 전시에는 지난 30년간 김 화백이 그려온 지적 장애아들의 모습이 점차 빛으로 변하는 과정을 77점의 작품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화폭 안에는 지적장애아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지만, 이 모습은 오월영령들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김 화백은 "이름없이 살다가는 중증장애아들의 모습 속에서 이름없이 죽어간 오월영령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작업을 하면서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 기억속에 각인돼 있었던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어느순간부터 밝은 빛이 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김 화백이 지난 2012년 3년에 걸쳐 작업한 총 길이 100m에 이르는 대작도 감상할 수 있다. 당시 이 작품은 장애인에 대한 열정과 작품성으로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또 항쟁 참여자와 사상자, 행불자, 살아남은 자의 모습을 빚은 토우 1천인과 밤하늘의 별이 된 오월영령을 상징하는 한지로 만든 1천인도 함께 전시됐으며, 세계 장애아동 120명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김 화백은 "40주년을 맞아 5·18이 다시 정립될 필요가 있다"면서 "상처보다는 치유자로서 예술가가 나서야 할때"라고 밝혔다. 이어 "5월에 상처받은 이들이 치유받는 공간이 되길 바라고, 내가 나의 비겁함을 고백한 것처럼,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는 진실들을 누군가가 나서 고백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김근태 화백은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 서양화가 최초로 UN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베를린장벽 전시, 브라질 페럴림픽 전시, 파리 OECD 전시, 유네스코, 제네바 UN 전시, 평창 페럴림픽 기념전시 등을 개최하기도 했다.

김근태 작 '빛 속으로'연작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