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분청사기에 담겨있는 현대미술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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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무안 분청사기에 담겨있는 현대미술의 정수
분청사기로 현대미술 구현… 도예가 김문호씨||3일까지 광주 무등 갤러리서 광주 첫 전시||재료 등 지역성 담아 궁극의 현대미술 구현
  • 입력 : 2021. 01.31(일) 16:03
  • 박상지 기자
광주 무등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흙에 바람을 담다'전에서 김문호 작가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해안선을 중심으로 전체면적의 70%이상이 황토로 덮혀있는 무안군의 다른 말은 '황토골'이다. 특히 무안 황토에는 붉은색의 철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도자기를 만들땐 반드시 분장이 필요했다. '마치 도자기에 분으로 화장을 한다'라는 의미의 분장은 분청사기의 기법이다. 강진이 청자, 장흥이 백자로 유명하다면, 무안은 분청사기의 본향이다.

14세기 말 분청사기는 고려 말의 상감청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15세기 후반 명나라에서 질 좋은 백자와 청화백자가 들어오면서 왕실에서는 분청사기의 선호도가 떨어졌다. 다소 칙칙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이때부터 분청사기는 지방의 민요가 담당하게 됐다.

광주 동구 무등갤러리에서 현재 진행중인 김문호 개인전 '흙에 바람을 담다'는 소박하고 자유분방한 조선시대 분청사기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미시마'라는 일본식 이름대신 '분청사기'의 명칭을 지은 고유섭 미술사학자를 1대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던 2대 최순우 미술사학자, 3대 윤광조 도예가를 이어 김문호 도예가가 4대째 전통 분청사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문호 도예가의 분청사기 작품은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유럽과 일본, 중국에서 인지도가 높아 개인전의 대부분을 유럽과 중국, 일본에서 줄곧 열어왔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예정돼 있었던 해외전시가 취소되자 운좋게 광주에 전시기회가 돌아왔다.

달항아리를 비롯한 한옥, 탑 등 조형물에서부터 다완, 다관 등 생활자기에 이르기까지 130여 점의 작품에는 41년 외길만을 걸어 온 김 도예가의 예술혼이 집약돼 있다. 소박하고 담백한 멋을 잔잔히 발산하는 그의 작품은 같은 용도일지라도 어느것 하나 같은 모양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좌우대칭이 되지않고, 비스듬히 기울어있는 것 같기도 어떤 작품들은 'B급'이라 칭하기엔 질리지 않는 매력을 발산한다.

"겉이 중요한게 아니에요. 공간이 중요하지요. 대부분의 도예가들은 좋지않은 모양은 깨버리는데, 나는 깨지 않아요. 도자기는 인간의 손에서 완성이 되는게 아니에요. 불에서 완성되지요. 그러니 불의 의도를 존중해야죠. 좀 찌그러지면 어때요, 물만 새지 않으면 되죠."

목포 출신인 그는 목포 사람답게 무안의 흙으로 작품을 빚는다. 굵은 돌이 많이 섞여있는 무안흙은 도자기를 빚기엔 어려움이 많다. 입자가 굵어 잘 뭉쳐지지 않고 자주 갈라진다.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달까지, 입자가 고운 다른 토양보다 오랜 숙성기간을 갖는 이유다. 직접 제조하는 천연유약은 물론 가마의 온도를 올려주는 장작까지, 완전한 문호요가 탄생하기까지 '무안산' 재료가 아닌 것이 없다. 더 고운 입자의 흙과 시중에서 판매하는 유약 등 전화 한통이면 작업이 훨씬 수월할 법도 하지만 '무안산'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전통기법은 누구나 다 재현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정신이죠. 작품의 본향이 어디인지를 잊지않아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도 중요하지만, 지역성을 녹여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문호요가 국내 다른 지역과 네덜란드, 일본, 중국에서 발생한 분청사기와 차별화를 갖는 이유다. 재료를 통해 지역성을 강조했다면 토우, 타례, 탄상, 틀, 물레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선 궁극의 현대미술을 보여주고 있다.

"분청사기는 대담한 과장, 대담한 생략, 대담한 왜곡이 특징입니다. 이것은 현대미술의 세계와 상통하지요. 분청사기의 멋은 무한한 해석이 가능한 추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기술보다는 천진한 본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미학의 소산이기도 하고요. 현대미술이 발달한 서양 여러국가에서 무안 분청사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것은 문호요에서 현대미술의 극치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죠. 지역적인 것이 가장 현대적이고 세계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