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75-1> "74년만에 풀린 한…아버지 이제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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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75-1> "74년만에 풀린 한…아버지 이제 편히 쉬시길"
■ 여순사건 공식 희생자 유족 권종국씨||집단학살…국가 첫 희생자 결정 ||빨갱이 낙인 속 억울한 죽음 알려 ||"모든 희생자 명예회복 이뤄지길"
  • 입력 : 2022. 10.16(일) 17:50
  • 김진영 기자

여수·순천 10·19사건 피해자로 결정된 권성옥 씨의 아들 권종국씨와 어머니. 어머니는 아버지의 명예회복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올해 세상을 떠났다. 권종국 씨 제공

"여순사건은 가해자가 없어요. 아버지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군인들도, 살기 위해 죄 없는 사람을 강제로 지목해야만 했던 양민들도 모두 무고한 피해자들입니다. 그저 모든 피해자가 과거의 아픔을 딛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지난 14일 만난 권종국(74) 씨. 태어날 때부터 '반란'이란 오명 아래 손가락질받아온 74년의 세월이지만,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의 아버지는 여순사건 당시 '빨갱이'로 몰려 처형당했다. 1948년 11월, 권종국 씨가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였다. 당시 29살이었던 그의 아버진 권성옥 씨는 여순사건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반란군과 진압군이 번갈아 가며 마을을 점령했을 당시 군인들의 총부리가 두려워 식량을 조금 나눠줬다는 이유였다. 마을주민 7명과 함께 순천월전중학교로 끌려간 그의 아버지는 인근 계곡에서 재판도 없이 집단 학살당했다.

그날로부터 무려 74년이 지나, 정부가 처음으로 권성옥 씨를 포함한 여순 사건 사망자 45명을 '희생자'로 결정했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평생을 살아야 했던 권종국 씨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데 평생을 헌신해왔다. 74년 전 갓난아이는 이제 돌아가실 적 아버지 나이보다 45살이나 많은 노인이 됐다.

권종국 씨는 "가슴 속 맺힌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간단한 일을 가지고 지금까지 싸웠다고 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는 좀 떳떳하게 남들과 같이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아버지의 기일에도 올해는 떳떳하게 전할 수 있는 말이 생겼다.

그는 "죄인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자식으로서 한을 조금이나마 풀었다는 것이 참 뜻깊다"며 "오는 11월이면 아버지의 기일인데 묘에 가서 '좋은 데로 가시라' '이제는 편이 쉬시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쪽으로는 너무나도 늦은 결정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크다. 권씨와 함께 평생 가슴속 한을 품은 채 살아온 그의 어머니는 끝내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보지 못한 채 올해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유족 역시 마찬가지 신세다.

권 씨는 "이번에 희생자로 결정된 이들 역시 45명에 불과해 수많은 유족이 여전히 가슴속 한 맺힌 응어리를 풀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라며 "하루빨리 더 늦기 전에 억울한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종국 씨가 바라는 것은 모든 희생자가 아픔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는 "여순사건은 비단 민간인 피해자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그는 "반란군과 진압군이 번갈아 가며 마을을 점령했을 당시 아버지가 식량을 나눠줬다고 밀고한 이들 역시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희생자들을 지목했다"며 "아버지에게 식량을 강탈한 반란군이든, 살기 위해 이웃 사람을 희생자로 지목해야 했던 주민들이든, 명령에 따라 총을 쏜 진압군이든 모두가 시대의 희생자다. 중요한 것은 진상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권 씨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첫 번째는 모든 희생자가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여순사건 희생자에 대한 명예 회복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국가 기념일 지정, 집단 암매장 발굴 등 실질적 명예 회복을 위한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74년 만에 여수·순천 10·19사건 피해자로 결정된 권성옥 씨. 권종국씨 제공

김진영 기자 jinyo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