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법, 단순 '분리'에 그치지 않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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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제시카법, 단순 '분리'에 그치지 않아야
강주비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3. 02.16(목) 13:25
강주비 기자
지난해 김근식, 박병화 등 아동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성범죄자들이 잇따라 출소하자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의정부와 화성 등 주민과 정치권 인사들은 법무부에 ‘성범죄자 거주 반대 건의문’을 내고, 일대에 ‘성범죄자 퇴거 촉구’ 플래카드를 내거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조두순이 출소했던 지난 2020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조씨는 주민들의 항의에도 기존 거주지인 안산에 돌아왔고, 되레 같은 지역에 거주했던 피해자가 짐을 싸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조씨와 피해자의 집은 불과 1㎞ 거리였다.

흉악 성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같은 논란이 반복되자 최근 법무부는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을 발표했다. 미국 ‘제시카법’에서 착안한 제도로,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학교 등 아동·교육 시설 500m 이내에 살지 못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성범죄자와 아동을 분리함으로써 재범률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이 제도가 성범죄자를 ‘대도시로부터 소도시로 옮기는’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제도를 적용하면 광주·전남 성범죄자 263명 가운데 36명이 거주지를 옮겨야 한다. 19세 이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로 대상을 넓히면 광주 52%·전남 33%가량이 법에 저촉된다. 또 피해자 연령을 구분하지 않고 거주지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광주 95%·전남 64%가량이 해당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상대적으로 인구 밀집도가 낮고 아동·교육 시설이 적은 전남에 광주나 타 대도시의 성범죄자가 옮겨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상 ‘한국형 제시카법’은 범죄 예방보다는 불안감 해소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일부 시민들의 환심을 살 수는 있어도 성범죄 근절까지 가닿긴 어렵다는 뜻이다. 제도 시행·사후 관리를 위한 행정력이나 예산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범죄자를 다시 교도소에 넣지 않는 이상 보호 대상과 접촉을 원천 차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해소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본래 의도와 달리 불안정한 거주지로 인한 재범률 증가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까지 대비해야 한다.

성범죄 문제를 ‘성범죄자 분리’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성범죄를 개인의 일탈로 바라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박다현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성범죄는 개인 일탈이 아닌 구조적 성차별과 왜곡된 성 인지로 인해 발생한다”고 말했다. 성범죄자가 내 옆집에 사는 걸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는 없다. 하지만 이를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과연 ‘성범죄자 분리’가 ‘범죄로부터의 분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