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어수선한 시절, 공명의 울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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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어수선한 시절, 공명의 울림이 필요하다”
도자기장구
우리 음악을 굳이 ‘울린다’고 표현하는 이면에는 이 공명의 알고리즘이 전제되어 있다. 유사한 주장을 수십 번 반복해오는 이유는 이 악기의 울림이 공명의 마음을 일으키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 입력 : 2023. 03.02(목) 15:59
진도 명량해협에서 인양된 요고 파편.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진도 명량해협에서 인양된 청자모란넝쿨문장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진도 오류리 출토 요고를 고증 복원한 이복수 광주시지정 악기장 문화재.
일반적으로 사장구(沙器로 만든 장구), 와고(瓦鼓, 기와장구), 청자장구 등으로 부른다. 활방구, 물방구, 못방구 등이 북(鼓)의 불교적 차용인 법고(法鼓)에서 왔다는 점 지난 칼럼을 통해 밝혀두었다. 장구 또한 맥락이 비슷하다. 긴북이라는 뜻에서 장고(長鼓)라 한다. 장구의 원말이다. 장고(杖鼓)와 장고(長鼓)를 병행해 쓰다가 어느 시기 장고(長鼓)와 우리말 ‘장구’로 정착되었다. 그렇다고 노루(獐)와 개(狗)가죽으로 장구를 설명하는 것은 견강부회다. 따로 시간을 내 설명하겠다. 도자기장구는 울림통을 흙으로 구워 만든 장구다. 진도 오류리(명량해협 아랫바다) 출토 고대 유물 중에서도 청자로 구워 만든 장구통이 등장한다. <악학궤범>에도 관련 내용이 실려있다. 부산민속박물관에 기와흙으로 구워 몸통을 만든 장구가 있다. 장독대 뚜껑을 활용한 생활 장구다. 2000년대 들어서는 도자기 장구를 제작하여 사용하는 예가 늘어나고 있다. 장구나 요고에 한정하면 그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자기장구는 언제부터 만들었을까?



울림통을 흙으로 구워 만든 장구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발표된 진도군 오류리 출토 보물급 유물 500여 점 속에도 흙으로 구워 만든 여러 개의 장구통과 요고(腰鼓)가 등장한다. 요고는 허리처럼(腰) 잘록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허리에 차고 연주를 한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 시대를 관통하는 유물들이기 때문에 그 역사 또한 유구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009년 충남 태안군 마도 해역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요고 3점이 발굴되었으나 용처를 밝히지 못했다. 관련 고고학자들에 의해 제사 용기로 추정되기도 하였기 때문에 일단 이형도기(異形陶器)로 분류된 바 있다. 하지만 진도 오류리 발굴 발표에서는 광주시 무형문화재 악기장 이준수에 의해 악기라는 점이 고증되었다. 왜 악기로 구분할 수 있었는지, 본 지면에 담양의 대나무장구를 소개할 때 언급해둔 바 있다. <악학궤범>에 “큰 장구는 질그릇으로, 작은 장구는 나무로 만든다”는 내용이 나온다. 요고(腰鼓)로 한정해 말한다면 그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구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요고(腰鼓)이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고려기>, <서량기>, <구차기> 등에 등장한다.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집안 17호분 등 다양한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례 화엄사의 사사자삼층석탑이나 평창의 화엄사, 상원사 범종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청자로 만든 사(沙)장구는 13세기 유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수록되어있는 노무편(老巫篇)에 와고(瓦鼓)라는 이름이 나온다. 기와흙으로 구워서 만든 장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요고의 역사가 고대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울둘목 바다에서 출토된 이형도기(異形陶器)가 요고(腰鼓)로 고증되는 등, 흙으로 구워 만든 울림통을 가진 장구의 역사가 장구(長久)하다. 2000년 이후에는 청자로 울림통을 제작하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호기심이나 기호라기보다는 타악기 장구의 내력을 고대로부터의 질그릇이나 청자 등을 통해 규명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울둘목에서 발굴된 도자기장구, 명량세요고(鳴梁細腰鼓)



이태 전 국립국악원 저널 <국악누리>, 1년간 국악원 70주년 기념 연재를 하면서 내가 밝혀둔 내용이기도 하다. 그 중심된 내용을 다시 짧게 인용해둔다. 당초에 제사 용구로 오해되었던 작은 도자기 유물이 악기로 판명되었다. 누가 따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명량세요고라고 작명한 이유가 있다. 명량해협을 우리말로 ‘울둘목’ 혹은 ‘울돌목’이라 한다. 모가지의 울대처럼 긴 수로(水路)에서 마치 목청 높여 소리 지르거나 노래하는 것처럼 바닷물이 운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해남 우수영과 진도 녹진 나루를 가로지르는 해협의 급류는 익히 알려져 있다. 명량이나 울둘목이라는 개념은 진도 해남 해협뿐 아니라 지금의 신안 해제 등 서해안의 좁은 물목에 붙이던 보통명사다. 한자말 명(鳴)은 곤충이나 새가 울거나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휘몰아치는 급류를 파도의 울음 혹은 파도의 노래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모두 모가지의 ‘울’ 곧, ‘울대’에서 비롯된 말이다. 울대는 후두(喉頭)의 중앙부에 있는 소리를 내는 기관이다. 앞 끝은 방패 연골의 내면에, 뒤 끝은 피열(披列) 연골에 부착된 탄력 있는 두 개의 인대다. 자유롭게 늘어나고 줄어들어 공기의 통로 폭을 조절한다.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를 울대가 진동하는 것이 소리요 성음이다. 쉬운 말로 성대(聲帶)다. 곤충이나 새 따위의 울대도 마찬가지다. 매미는 가슴과 배 사이에, 새는 기관이나 기관지로 나뉘는 부분에 있다. 명관(鳴管)이라 한다. 노래와 울림의 행간이 여기에 있다. 울둘목에서 발굴한 요고는 이 울대와 닮았다. 울둘목 거친 파도의 울음들을 연상하게 하고 한반도 삼면의 파도가 창조하는 노래를 상상하게 한다. 공명(共鳴)이다. 이를 우리말로 울림이라 하고 좌우 혹은 안팎을 조화하는 것을 어울림이라 한다. 우리 음악을 굳이 ‘울린다’고 표현하는 이면에는 이 공명의 알고리즘이 전제되어 있다. 유사한 주장을 수십 번 반복해오는 이유는 이 악기의 울림이 공명의 마음을 일으키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소리(sound)를 울려 음악(music)을 만들고 이를 인간과 공동체, 사회와 자연, 우주의 신령들을 불러내어 더불어 노래하는 것 말이다. 시대와 공명하고 천지자연과 공명하며 더불어 핍박받던 우리네 이웃과 공명하던 것이 우리 음악의 본질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북과 장구 울리는 공명이 그러할진대 이것이 나무통이라고 다르고 도자기라고 다르겠는가. <악학궤범>의 설명처럼 큰북은 도자기로 만들고 작은북은 나무통으로 만드는 것이니, 도자기 장구야말로 오히려 큰 공명을 도모했던 악기였을 것이다. 시절이 어수선할수록 공명을 자아내던 악기의 울림이 필요하다.



남도인문학팁

명량세요고(鳴梁細腰鼓)의 비밀

진도 오류리 출토 이형도기(異形陶器)를 광주시무형문화재 악기장 이복수가 악기로 고증한 이유가 세 가지이다. 첫째는 공명통 즉 울림통의 유무를 따지는 일이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모두 마찬가지다. 울둘목의 명량해협이 그러하듯 좁은 물목 같은 울림통이 없으면 더불어 울림 곧 공명을 자아내지 못한다. 두 번째는 공명의 음양을 맞추는 일이다. 이를 자웅성(雌雄性, 수컷과 암컷이라는 뜻)이라 한다. 장구를 예로 들면 궁편과 채편의 원지름 크기가 달라야 한다. 우리 음악의 리듬 패턴인 장단(長短)을 설명하면서 언급해두었다. 크고 작은 것을 ‘같음’으로 여기는 ‘비대칭의 대칭’이다. 마치 여성과 남성이 크기나 쓰임새가 다름에도 호혜 상생의 동반인 것과 같다. 마지막 하나는 울림턱이다. 공명통 안에서 진동된 소리가 이 울림턱을 넘어야 회전하여 다시 흐를 수 있다. 소리가 그러할진대 사람들의 사회라고 어찌 다르겠는가. 울림턱도 마련하지 않은 채 무작정 한쪽의 북면을 타고하면 불협화음만 일어날 뿐이다. 이준수 명인이 이 세 가지를 고증하여 용처 불명의 고대 유물을 요고로 밝혔는데, 내가 <국악누리> 칼럼을 통하여 명량세요고(鳴梁細腰鼓)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 가지 울림의 요건처럼 서로 다른 것들의 공명을 상고하여 이 시대 더불어 울림을 끌어내자는 뜻이었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