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창사특집>88년생 광주 청년 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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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전남일보]창사특집>88년생 광주 청년 예술인
  • 입력 : 2023. 07.18(화) 17:35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광주뮤지컬단 다락의 소속 단원인 성우림씨. 도선인 기자
올해 서른다섯 살이 된 전남일보처럼 서른다섯의 해를 보내고 있는 광주의 청년 예술인들이 있다. 나이의 문턱에서 어느새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화가 성혜림 씨와 뮤지컬 배우 성우람 씨가 그 주인공이다. 광주의 예향을 이끌어갈 청년 예술인으로서 이들의 삶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지역 떠나 무대에 오를 수 있어 감사”

광주뮤지컬단 다락 소속 단원

성우지망의 서울 고시생에서

연고 없는 광주 내려와 정착해

최근 5·18 창작극 ‘망월’ 무대

성우람(35)씨는 광주에서 보기 드문 뮤지컬 배우다. 최근 국립5·18민주묘지를 배경으로 민주화 열사들의 우여곡절을 담은 광주뮤지컬단 다락의 창작 뮤지컬 ‘망월’ 무대에 올랐다. 그가 맡은 배역은 ‘신남동’. 지난 41년 동안 신원 확인이 안 돼 5·18묘지에 ‘무명 열사’로 잠들어 있었던 실존 인물 신동남 열사가 모티브가 된 캐릭터다. 배역과 작별을 잘 끝마쳤다는 그의 표정이 유쾌하다.

“이번 작품은 장면도 많고 배역도 많은 워낙 대작이어서 준비하면서 정말 진이 빠졌죠. 이번만큼은 여운보다는 홀가분한 맘이 커요. 잘 가요! 신남동 아저씨!”

광주 출생이 아닌 성씨에게 5·18민주화운동은 역사책에서나 보던 일. 이번 작품이 쉽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실제 성격과 정반대인 외향적인 성격의 배역을 맡게 돼 감정의 긴장감이 어느 때보다 컸다.

“망월이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보니, 마음가짐이 달랐던 것 같아요. 실제 신동남 열사 묘역에 몇 차례 가서 인사도 드렸죠. 이번 작품 잘 부탁드린다고요. 작품을 하면서 5·18민주화운동을 겪었던 광주의 희생에도 감사함을 느꼈어요.”

성씨가 연고도 없는 광주에 내려온 때는 2018년. 성우 지망의 서울 고시생이었던 그는 좁은 취업 문턱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다. 대중에서 자신만의 목소리 연기를 선보이고 싶었지만, 언제까지 불확실한 미래에 배팅할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준비했던 꿈을 접고 일자리를 찾아 먼 광주까지 오게 됐다. 어쩌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고운 목소리 덕에 고객센터 상담직으로 일자리를 얻어 광주에 정착했다. 그래도 좋아하는 연기에 대한 갈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광주에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우연히 광주뮤지컬단 다락의 단원 모집 소식을 접했고 고민 없이 지원했다.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던 터라 퇴근 후 취미 겸 시작한 활동이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크고 작은 작품 10여개를 했다.

아무래도 지역에서 뮤지컬 배우로만 생활하기에는 수입이 일정치 않으니, 지금은 뮤지컬을 하기 위해 본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작품이 없을 때는 일주일에 세 번 퇴근 후 다락 활동을 한다. 작품을 앞두고서는 주말도 없이 연습에 매진한다. 평소에 단원들과 함께 연기세미나를 열어 연기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지역을 떠나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연기와 노래로 무대에 설 수 있어 감사해요. 다락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연기나 노래 코치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죠.”

광주의 ‘예향’이라는 별칭이 부끄럽게도 광주에서 창작 작품을 다루면서 소속 밴드까지 갖춘 뮤지컬 단체는 몇 안 된다. 그중 하나가 ‘다락’이다. 부족한 공연 인프라에 성씨도 내심 아쉬움을 내비친다. 다락 활동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는 이유다. 공연 특화 지원 프로그램의 필요성도 절실히 느낀다.

“다락에 소속 밴드팀까지 해서 50여명의 단원들이 있는데, 어느새 제가 딱 중간연차가 됐더라고요. 공연 인프라는 많이 부족한 만큼 우리가 물꼬를 잘 터야겠다고 생각하죠.”

앞으로 목표는 광주시민들에 광주 배우로서 당당히 서는 것이다. 광주에 이런 배우가 있었지, 저 배우가 이런 배역을 맡았었지, 이렇게 기억만 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물론 서울에 가면 더 많은 뮤지컬 단체가 있고, 더 많은 뮤지컬 관계자들이 있겠지만, 전 광주에서 계속 무대에 서고 싶어요. 절 기억해 주는 사람 수는 더 적더라도 광주시민 한 명 한 명에게 감동을 주고 싶습니다.”



●“도시 전체가 ‘움직이는 미술관’ 되길”

1988년생 광주 청년작가 성혜림

어린아이 그림 통해 자아 탐구

올해 ‘아트 원더우먼’ 등 단체전

광주 ‘아트 시내버스’ 참여 주목

“아트페어 시장 활성화 필요해”

광주의 1988년생 대표 작가 성혜림씨. 도선인 기자
광주에서 여성 작가로서, 청년작가로서, 때로는 두 아이의 엄마 작가로서…. 현대인의 내면에 깃든 어린 소년·소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온 성혜림(35) 작가의 한해가 어느 때보다 다채롭다. 올해 4월 유·스퀘어 금호갤러리에서 진행한 단체전시 ‘아트 원더우먼’에 이어 6월 조선대학교미술관의 특별기획전에 참여하는 등 알찬 상반기를 보냈다. 조금 일찍 시작됐던 그의 화가 경력엔 ‘안식년’이란 없다.

“두 아이의 엄마기도 합니다. 육아해야 하다 보니 작업에 몰두하긴 어렵지만, 붓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임신했을 때도 작업을 했고요. 약속한 전시도 진행했지요.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남들보다는 조금 예술적인 것 같아요(웃음).”

성혜림 작가의 남편 역시 화가다. 일상의 심리적 풍경을 그려 일찍이 화단에서 주목 받은 이인성 작가다. 덕분에 누구보다 작가로서 삶에 지지를 받아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특히 지난 4월 진행한 전시 ‘아트 원더우먼’에는 성 작가와 처지가 비슷한 엄마 작가들이 함께 참여해 힘을 얻었다.

사실 성 작가는 청년작가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정도로 이십대 초반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2011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자마자 광주시립미술관이 운영하는 레지던스 사업에 참여 작가로 선정되면서 화가의 길을 걸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전업 작가로서 준비가 안 된 것 같은 조바심도 들었다.

성 작가는 “운 좋게 청년작가 지원사업을 통해 광주시립미술관의 작업 및 거주공간을 얻게 됐다. 또래와 비교했을 때 일찍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다. 운이 좋았다”면서도 “당시에는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했다. 대중을 통해 작가라고 불려도 될까 고민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사회생활에 나 자신이 더욱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성 작가의 어설픈 시작은 오히려 그의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 나이가 몇이던 누구나 현대인의 마음속에 내재된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직업복을 입고 사회에 스며든 뾰로통한 표정의 어린아이가 꼭 자신과 같아 보였다. 작품 속 아이는 자화상을 넘어 관람객들의 공감을 사기 시작했다. 성 작가는 어느새 어린아이를 그리는 광주 대표 작가로 성장했다.

성 작가는 “나로 시작된 작품이었지만, 여러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의 공감을 얻음으로써 나만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며 “많은 분이 나 자신 같기도 하고, 내 딸 같기도 하고 손주 같기도 하다며 ‘공감’의 평을 주로 해줬다. 그림은 내면의 자화상이면서 현대인의 또 다른 모습이 된다”고 말했다.

청년작가로 일찍 주목받은 만큼 화가의 길을 걷고자 한 후배들을 응원하는 맘이 크다. 특히 예향 광주라는 타이틀에 비해 아트페어(예술 작품의 판매를 목적으로 한 미술 시장)가 활성화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그림은 비싼 금액을 주고 사는 것 또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사는 것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신인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두는 것이 광주 미술계 발전에 있어서 꼭 필요한 분위기라고 말한다.

그래도 여전히 광주의 예술을 사랑한다. 2016년 광주의 명물 ‘아트시내버스’ 참여작가로 선정되면서 애향심이 커졌다.

“지인들이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사진을 찍어 보내주곤 했어요. 내가 예향 광주 이미지에 일조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죠. 앞으로도 광주가 ‘움직이는 미술관’로서 그 임무를 충실히 해내길 바라요.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